버티는 대신, 북유럽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나를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희망퇴직을 접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나를 쉬게 할 시간을 떠올렸다.


마침, 입사 20주년 리프레시 휴가를 낼 수 있었고

나는 내 인생의 다음 장면을 어디에서 그릴지 생각했다.

오래 디자인을 해온 사람답게, 선택지는 자연스럽게 북유럽으로 향했다.


그간 해외 출장과 여행 중에 북유럽과의 인연은 없었기에 늘 동경해 오던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본고장을 가본다는 건, 고민의 여지가 없었고 더 없을 힐링이 될거라 기대했다.


쉬기 위해 떠났지만,

결국, 그 곳의 공간들은 나를 더 오래 바라보게 만들었다.

머무는 방식부터, 움직임의 속도까지

나는 다시, 디자이너의 감각으로 서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여행은 쉬는 시간이 아니라, 다시 나를 번역하는 시간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노르웨이의 첫 장면은 미술관에서 열렸다.


10월 중순의 오슬로는 잔득 흐리고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했고, 흐리고 차가운 공기 속에

비요르비카 해안가의 오슬로 오페라 극장과 나란히 웅장하게 자리한

'뭉크 뮤지엄(Munch Museet)' 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오며 다시 한번 느낀 것이지만, 뭉크의 작품이 왜 그렇게 어둡고 우울해 질 수 밖에 없었는지.. 길고 긴 오슬로의 겨울이 찾아오고 있던 그 날의 분위기와 차갑고 어두운 오슬로의 공기와 뭉크의 작품은 꼭 닮아 있었다.


뮤지엄으로 걸어가는 길에

엄청난 크기의 살짝 공포감 마저 드는 하얀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서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피해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고,

그 넘어 해안가 맞은 편에서는 정박한 사우나 보트에서 나와 얼음장 같은 바다로 뛰어드는 젊은이들의 비명과 풍덩하는 소리가 그 날의 우울하고 흐린 공기를 뚫고 짜릿하고 경쾌함을 선사했다.


실은 사우나를 너무 좋아하는 내겐, 이 바다 사우나도 위시 리스트 중에 하나였지만, 출발 직전 허리 디스크 통증이 재발하는 바람에 여행을 겨우 이어가는 중이여서...

바다 수영은 빠른 포기가 가능했다. 그저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며 미술관으로 향했다.


차갑고 건조하고 흐렸지만, 오슬로를 걷고 있다는 것 만으로 행복 했다.


매스컴이나, 디자인 서적을 통해 단일 작가를 위해 헌신된 미술관 중 세계적으로 가장 큰 규모 중 하나라는 것과 뭉크의 <절규>를 보기 위해 엄청난 줄을 서야한다는 것 정도는익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마주하고서야 단순히 그림을 걸어두는 공간을 넘어 에드바르 뭉크의 삶과 예술적 영혼을 풀어낸 건축의 정수 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건축 대지가 다소 협소한 이유여서 인지, 꽤 높은 13층 높이로 설계된 뮤지엄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층마다 다른 테마를 만나는 수직적 여정을 제공하고 있었고,

방문했을 땐 이미 늦은 오후여서 몇 개 전시실을 보다가, 더 늦기 전에 뭉크의 <절규>가 있는 4층으로 이동했다.


미로 같은 어둠, 낮은 조도와 어두운 벽면.. 작품 보호를 위한 장치 일 수도 있지만

뭉크가 다루었던 고독, 공포, 사랑,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공간은 넓은 홀을 중심으로 작은 방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데, 특히 <절규(The Scream)>가 위치한 별도의 독립된 구역은 관람객의 동선이 자연스럽게 모이도록 설계되어 있어 긴장감을 서서히 고조시키고 있었다.


건물의 외관은 차갑고 현대적인 타공 알루미늄 패널로 개방감을 확보하지만, 4층 내부는 매우 정적이고 폐쇄적인 느낌을 주어 외부 세계와 단절된 듯한 인상을 주고 있었고, 이는 오롯이 작품에만 집중할 수 밖는 뭉크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듯 했다.


뭉크는 여러 버전의 <절규>를 남겼는데, 유화, 파스텔, 판화 3작품 모두 빛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동시에 전시되지 않고, 벽면에 설치된 세 개의 커다란 목재 상자 중 하나씩 문이 열려 작품을 공개하고 , 나머지는 닫혀 있게 된다고 했다.

그 사이 작품에 대한 설명도 읽어보고, 옆 공간에 걸려있는 <절규>라는 감정이 어디서 기원했는지 보여주는 다른 작품들도 교차로 관람하면서, 작가의 슬픔과 상실감이 어디서 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거의 30분 간격으로 작품이 오픈 되는데, 이는 관람객에게 기다림의 미학 또한 제공하는 듯 했다.


금고 같은 묵직한 전시 벽면의 문이 열리고 <절규>가 등장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면서도 카메라를 든 손은 분주했다. 벽면의 작은 틈을 통해 작품을 마주하는 것이 마치 뭉크의 내밀한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는 듯한 심리적인 효과를 극대화 하는 전시 기법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작품을 마주 했을 때, 불안한 정신적 고통으로 보이지 않는 대상(공기의 흐름, 소리, 공포의 파동 등)을 조형적 성취로, 감정의 시각화를 통해 작품으로 승화시킨 뭉크의 모습이 보였다.

한편, 도슨트를 통해 이러한 고통의 표현이 일부 의도된 작업이었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수동적인 정신질환자가 아니라

자신의 공포를 시각적 언어로 완벽하게 번역해낸 예술적 승리자로서의 경외심 마저 들게 했다.

그로 인해 우리는 한 사람의 고통에 침몰당하지 않고, 그것을 ‘예술’로서 감상하며 공감할 수 있는 예술의 순기능 이라는 가치를 얻게 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그때 난 그 공간의 무드에 너무 몰입했는지, 그 우울한 감정이 전이된 탓인지, 내 감정 마저 소진 됨을 느끼고 제일 꼭대기 전망대 라운지에 올라가 탁 트인 오슬로의 해 질 녘 피오르드를 바라보며 살짝 가라앉은 기분과 뭉크의 <절규>를 직접 보았다는 다소 상기된 복합적인 감정을 환기 시켰다.


그러던 중 오늘의 전시 종료를 알리는 방송과 함께 미처 다 보지 못한 몇 개의 전시실을 급하게 돌아보고서야 1층 출입구로 향하는데, 뭉크의 생애와 그의 작품들과 관련된 수많은 책들이 꽂힌

뮤지엄 숍의 서가가 떠나야 하는 나의 아쉬운 발걸음을 멈춰서게 했다.


보통 전시를 보고 나면 의례히 전시 굿즈나 도록을 구입하는 편이여서 당연히 발길이 이어지는 편이긴 하지만, 다른 뮤지엄 숍에 비해서 유독 도서가 많았다.


대부분의 책 제목은 뭉크 이름이, 커버디자인엔 뭉크의 얼굴 또는 작품 절규가 주를 이루었다.

욕심나는 책들이 꽤 보였다. 이 아픈 허리로 다 짊어지고 서울에 갈 수는 없는데…

유독 한 권의 책이 자꾸 눈에 걸렸다.


제목에 뭉크가 쓰여 있지도 않았고, 뭉크의 작품도 아주 작게 커버에 들어가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미니멀한 패브릭 양장 방식의 커버 디자인과 뭔가 간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제목이 맘에 쏙 들었다.

직업병은 어디 안가나 보다!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을 참으며

여러나라 언어 중 영문판을 찾아, 슬쩍 몇 장 넘겨본 내용은 다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단순한 작품 설명이 아닌 듯 했고 제3자의 시선으로 뭉크의 작품을 대화식으로 이어가는 구성이여서 호기심이 발동했다.

시간을 더 지체할 수 없어, 집어든 이 책을 사들고 미술관을 급히 빠져나왔다.


미술관을 나서며, 나는 뭉크의 그림이 아니라

그를 책으로 다시 만나고 싶어졌던 걸까?

뭉크가 남긴 작품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써내려 간 책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행지에서의 시간과 느낌을 책으로 소장하는 것으로 일상으로 돌아온 후 그 감동을 이어가고 싶어서 일 수 도 있지만,

수 많은 책 중 난 왜 그때 이 책을 집어 들었을까?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엔 무엇을 읽을지 보다

어디에서 내가 멈춰 서 있었는지에 먼저 주목해야 하는 건 아닐까?

라고 되묻게 된다.




다음편.

『뭉크 뮤지엄에서 나는 그림이 아니라 책을 샀다』 가 이어집니다.

뭉크 뮤지엄의 <절규(The Scream)>
뭉크 뮤지엄 숍의 서가


작가의 이전글희망퇴직을 포기하던 해, 쇼펜하우어를 읽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