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 뭉크 뮤지엄에서 나는 책을 샀다.

그 문장들은 뭉크가 아니라 나를 향했다.

그날 나는 그림이 아니라 책을 집어 들었다.

뭉크 뮤지엄을 빠져나오며 손에 들린 것은 엽서도 굿즈도 아닌, 책 한 권이었다.


해가 져버린 오슬로의 비요르비카 해안가는 비가 그치고 어둠 속 조명들이 바닷물에 비춰 몽안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고, 여전히 차가운 공기에 옷깃을 여몄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전시실을 나오며 뮤지엄 숍 서가에서 나는 무엇을 읽을지보다

어디에서 멈춰 서 있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었다.


ALI SMITH

『SO IN THE SPRUCE FOREST』

알리 스미스의 에세이 『가문비나무 숲 속으로 아주 깊숙이』


대부분의 책들이 뭉크의 얼굴이나 작품으로 커버 전체를 채우고 있었다면, 이 책은 하나의 오브제처럼 보였다.

매트하고 고급진 패브릭 양장본 커버에 나무가 빼곡한 어둡지만 붓 터치감의 디테일이 느껴지는 숲이 그려진 뭉크의 작품이 아주 작게 액자 속 그림처럼 음각되어 있었다.

도록이나 작품집이 아니라 작은 아트 피스 하나를 들고 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후르르 넘겨본 책 내용은 설명 대신 대화로 말을 거는 형식이, 뭔가 신선한 느낌에.. 영문 글이 그대로 다 이해되진 않았지만 호기심을 자아냈다.

그리고 작가의 서평인지.. 책 안내 문장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예술은 죽음을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잊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작가 서평中 알리 스미스가 에드바르 뭉크의 예술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


그 문장은 뭉크를 설명하고 있었지만, 또한 나를 향해 있었다.


나는 뭉크를 산 게 아니다.

나는 그 책 디자인 앞에서 발이 멈추어졌고, 상상하게 하는 그 대화의 형식과 문장 하나에

수많은 책들 속에서 손이 그 책으로 향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선택은 단순히 ‘취향‘ 이라기보다,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의 방향을 이미 말해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실은.. 그 이후로 북유럽을 여행하며 꽤나 많은 책을 사버리는 바람에 흠.. 돌아오는 길의 트렁크는 아주 묵직해져 버렸다;;;)


하지만, 그때는 그 책이 그렇게 단단한 책인지 몰랐다.

여행에서 돌아와 세 달이 지나서야 제대로 읽으며, 그곳에서 왜 멈추어섰는지! 그 선택이 어쩌면 나를 말해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자각을 불러오게 했다.

취향은 소비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결국 방향이 된다는 것을..


그 책은 한동안 펼쳐지지 못한 채 거실 소파 위에 놓여있었다. 여행의 열기와 피로가 조금은 가라앉을 때까지..

돌아온 일상이 나를 제자리로 돌려놓은 뒤에야 책을 펼칠 수 있었다.


그림을 볼 때는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이 먼저 작동한다. 하지만 그 넘어..

보이지 않는 작가의 이야기를 알았을 때의 짜릿함, 그 만족감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자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하다. 그것이 독서가 주는 즐거움이지 않을까..

(내게 있어 여행도 마찬가지지만! 무튼..)


나는 그런 탐색을 즐기는 자인 것도 같다.

그래서일까, 디자이너로 시작해 순수 작가의 길로 가기보다 기획자, 디렉터와 같은 역할로 확장되었는지도..

나는 이미지를 넘어서 이미지 뒤의 맥락을 탐색하고 싶어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날 그렇게 오슬로에서 책을 샀고

그리고, 코펜하겐에서 또 하나의 공간을 만나게 된다.



에필로그

책을 사고도 한참 뒤에 제대로 읽고서야 알았다.

이 책은 그림을 해설하는 대신, 작가의 돌아가신 어머니의 목소리를 통해 대화를 이어가는 형식이었다.

사라진 존재를 현재로 불러내 예술을 이야기하게 만든다는 것.

나는 아마 그 대담한 상상력에 반응한 것 같다.

작가 알리 스미스가 노벨문학상 후보에 여러 번 올랐다는 이력보다도, 그런 방식 자체가 나를 번쩍 깨웠다.


내가 집어든 책은 결국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

뭉크와 그를 이야기하는 그 시선까지 담은


[책 뒤표지에 실린 소개 글]

“알리 스미스의 <가문비나무 숲 속으로 아주 깊숙이(So in the Spruce Forest)>에서, 작가의 돌아가신 어머니는 끈질기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되어 돌아옵니다. 그녀는 딸에게 에드바르 뭉크가 그린, 생명력으로 가득 찬 나무와 바위들의 강렬한 묘사에 대한 통찰력을 나누고자 합니다.

상상력이 풍부한 에세이 형식을 통해, 스미스는 예리한 시각적 분석과 개인적인 이야기, 그리고 생태학과 정치에 관한 성찰을 하나로 엮어냅니다. 이를 통해 뭉크의 예술을 현재의 순간과 또 다른 현실을 모두에 연결시킵니다. “





다음 편.

『코펜하겐에서 가장 머물고 싶었던 덴마크 왕립도서관』이 이어집니다.


뭉크 뮤지엄 숍 서가의 다양한 서적들
뭉크 뮤지엄 숍 서가에서 내가 집어든 책
뭉크 뮤지엄의 야경
유리창에 비친 비 내리는 오슬로 시내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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