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편 3] 신혼여행 중 MBA Waitlist 3개

기다림도 실력이라면

by 묵직한 다람쥐

결과는 항상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온다.


R1 결과 발표일.

나는 스페인 발렌시아에 있었다.


12월 초 결혼식을 마치고 떠난 신혼여행 중이었다.

포털에 접속했다.

MIT, Duke, Tuck. 세 학교 모두 같은 상태였다.


Waitlist.


불합격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합격도 아니었다.




신혼여행지에서 확인한 포털


새벽에 혼자 확인하고,

아침에 일어난 아내에게 말했다.


"세 군데 다 WL이래."


다행히 그날도 발렌시아에서 볼 게 많았다.

여행 중이라 그런지 타격이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한국에서 받았다면 더 무거웠을 것 같다.


그래도 속으로는 계속 되뇌었다.


'DING은 아니니까. 아직 가능성은 있으니까.'



화면 캡처 2026-03-22 154124.png [Dartmouth Tuck] Waitlist 통보

WL이 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웨이팅리스트를 처음 받으면 희망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WL은 탈락이 아니다.

학교 입장에서 WL은 철저히 전략적인 도구다.


합격 통보를 받은 학생들이 실제로 등록할지 학교는 미리 알 수 없다.


그래서 등록률(Yield)을 관리하기 위해 일정 수의 지원자를 대기 명단에 올려둔다.

자리가 비면 채우는 방식이다.


쉽게 말하면, "괜찮긴한데, 일단 기다려봐"다.


문제는 인터내셔널 지원자에게 배정되는 slot이 많지 않다는 것.


WL에서 실제로 합격으로 전환되는 비율은 학교마다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한 자릿수 퍼센트대다.


희망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낙관하기도 어렵다.


두 번째 통보는 달랐다


R2에서도 같은 학교들의 WL 유지 통보가 왔다.

MIT는 아예 Reject으로 전환됐다.


처음엔 '아직 기회가 있다'는 생각이 컸다.

두 번째는 달랐다.


R2까지 유지라는 건, 학교가 나를 진심으로 원해서 붙잡아두는 게 아니라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Yield management를 위해 명단에 올려둔 것뿐이구나.


R2에서 넣은 다른 학교들 결과도 아직 안 나온 상황이었다.

불안이 겹쳤다.


WL을 위해 최소한의 업데이트는 했다.

GMAT 점수 업데이트, 이직 후 이력서 정리, R1 때 미처 못 넣었던 내용들.


솔직히 캠퍼스 방문, 네트워킹, 추가 추천서 같은 적극적인 행동은 하지 못했다.


R2 지원만으로도 버거웠고, 신혼 초반이기도 했다.


WL 상태 유지에 할 말은 없었다.




Tuck이 준 피드백, 그리고 다시 꺼낸 고민


WL 학교 중 Tuck은 조금 특별했다.

공식적으로 지원자에게 피드백을 주는 드문 학교다.


피드백의 요지는 하나였다.

점수가 경쟁력이 좀 떨어진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당시 GMAT은 이미 rolling 12개월 안에 허용된 5번을 다 소진한 상태였다.


더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학교에 답했다.


점수는 당장 올릴 수 없는 상황이지만,

최근 이직을 통해 이런 부분이 보완됐다고.


할 수 있는 업데이트는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지금, 그 12개월 제한이 슬슬 풀려오고 있다.


R2에서 기다리는 M7 세 학교마저 WL이 된다면, 그때 내가 줄 수 있는 업데이트는 사실상 하나뿐이다.


네트워킹 이벤트 참가야 할 수 있겠지만, 가장 객관적인 지표는 결국 숫자다.


다시 책상에 앉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image.png "Clear Admit에서 들려오는 합격 소식들"

Clear Admit 창을 닫지 못하는 밤


일부러 생각을 안 하려고 한다.


'내 일이 아니다, 결과 나오면 그때 생각하자.'


근데 잘 안 된다.


괜히 Clear Admit 웹사이트를 열어보거나,

Reddit을 뒤지거나,

지인의 합격 소식이 들려오는 순간에 불안이 치고 올라온다.


지인이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기뻐야 하는데, 온전히 기쁘지가 않다.


충분히 자격이 되는 사람이 붙은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왜 아직인가 싶은 마음이 먼저 든다.


질투라기보다는, 초조함에 가깝다.


다들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에 서 있는 느낌.



3일 뒤


Round 2에 면접을 볼 기회가 있었던 M7 세 학교의 결과가 3일 뒤 나온다.


어디든 붙으면 고민 없이 갈 학교들이다.


그리고 셋 다 안 되면, 지금 손에 쥔 한 장의 카드로 미국행을 결정해야 한다.


불안하냐고 물으면, 솔직히 불안하다.


그래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비행기 위에서 에세이를 썼고,

신혼여행지에서 포털을 확인했고,

새벽 4시에 제출 버튼을 눌렀다.


기다림도 실력이라면, 지금 이 시간도 그 과정의 일부일 것이다.


결과는 3일 뒤에 나온다.


다시 시계를 과거로 되돌린다.


R2 원서를 넣기 전, 나는 먼저 면접 준비를 해야 했다.


내 이야기를 글이 아닌 말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본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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