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엑셀을 시켰지만, 나는 내 인생을 풀기로 했다
밤 10시.
12시간 넘게 고객사 회의실에서 일하고 돌아와, 기진맥진한 상태로 노트북을 켠다.
낮에 채웠던 엑셀은 회사 서버 어딘가에 저장됐다. 지금부터 풀 문제 하나는 내 서버에 쌓인다.
신기하게도, 그 생각이 드는 순간 피로가 걷혔다. 남의 일을 하다가 내 일을 시작하는 기분.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3개월간 학원을 다녔다.
남들은 보통 GMAT을 3~6개월 내에 끝낸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 3개월의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첫 번째 시험. 긴장이 발목을 잡았다. '긴장 탓이겠지'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두 번째 시험도 기대에 못 미쳤다. 이번엔 변명이 없었다.
문제는 긴장이 아니라 방법이었다.
바쁜 업무 사이에 간신히 수업을 듣고, 숙제를 해내기 급급한 공부. 나는 강사가 칠판에 적어주는 논리를 구경만 하고 있었다.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이 전혀 안 된 채로 시험장에 들어간 것이다.
두 번째 시험 결과를 받아들고 방법을 바꿨다.
해외 후기들을 뒤졌다. 무료 트라이얼도 해봤다. 그리고 내가 뭐가 부족한지 냉정하게 들여다봤다.
TTP(Target Test Prep). 이게 내 수험 생활의 터닝 포인트였다.
학원에서는 "이 문제는 이렇게 풉니다" 하고 넘어갔다. TTP는 스스로 깨치게 했다. 모든 학생이 같은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내가 부족한 부분만 집중적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나는 쉬운 문제를 실수로 틀리는 타입이었다. TTP는 그걸 귀신같이 찾아내서 비슷한 유형을 30개씩 반복시켰다. 지루한 반복이 어느 순간 확신으로 바뀌었다.
처음으로 공식 모의고사에서 목표 점수대가 나왔다. 학원 다닐 때는 한 번도 경험 못 했던 숫자였다. 이 시험을 내가 컨트롤하고 있다는 감각이 처음으로 왔다.
아직 한국어로 된 후기는 따로 보지는 못한 것 같은데, 혹시 GMAT을 준비하는 분이 계신다면 TTP 무료 Trial도 테스트 해보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시험 당일엔 항상 같은 동선을 밟았다.
시청역 피어슨 센터 바로 앞 맥도날드. 맥모닝 하나. 가는 길엔 항상 같은 노래를 들었다. "Born for This." 제목부터가 주문 같았다. 이어폰을 꽂고 걸으면 조금은 덜 떨렸다.
평일 루틴도 생겼다.
동료들이 퇴근하고 나면 나는 빈 회의실로 향했다. 손에는 샐러드와 아이패드. 저녁 8시부터 12시까지, 그 공간이 내 독서실이었다.
주말엔 텅 빈 회사로 향했다.
평일엔 전화벨 소리와 사람들로 북적이던 공간이 고요해진다. 내가 지나가는 길마다 천장 센서 등이 툭, 툭 켜졌다. 그 불빛이 묘하게 위로가 됐다.
남의 일을 하는 공간에서 내 공부를 한다는, 그 비밀스러운 해방감.
루틴이 생기자 감각이 붙기 시작했다. 3차 시험을 신청했다.
3차 시험 날, 실수를 했다.
더 편하게 가겠다고 차를 끌고 갔다. 하필 시청 근처에 대규모 시위가 있었고, 도로가 막혔다. 시험에 늦을 뻔했다. 식은땀을 흘리며 겨우 입실했다.
결과는 645. 내 마음속 커트라인에 조금 못 미쳤다.
그 이후로는 무조건 지하철이었다.
실망할 겨를도 없이, 싱가포르 출장이 잡혔다.
고객사 덕분에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5성급 호텔 방이었다. 창밖에 마리나베이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 눈앞에 있는 건 차가운 노트북 스크린과 TTP 화면이었다.
비행기 좁은 테이블에서든, 호텔 로비에서든 하루 한 문제 원칙을 사수했다. 감을 잃지 않는 것. 출장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였다.
화려한 야경을 뒤로하고 노트북을 펼칠 때,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더 선명해졌다.
네 번째 시험 날.
맥모닝을 먹고, 이어폰을 꽂았다. 익숙한 루틴. 익숙한 긴장.
종료 버튼을 누르는 찰나, 결과가 화면에 떴다.
R1 지원을 위한 내 개인적 마지노선을 넘었다.
1층 스타벅스에서 기다리던 여자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꽉 안아줬다.
그날 우리는 시험지 대신 메뉴판을 봤다. 미뤄뒀던 서울 데이트. 맥주 첫 모금의 전율, 을지로 평양냉면 육수의 감칠맛.
스무 살 이후 처음으로 다시 느껴본, 고생의 맛이었다.
다섯 번째 시험에서 점수가 드라마틱하게 오르진 않았다. R2 학교들 지원엔 그 점수를 썼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미련은 없었다. 야근과 세 번의 해외 출장 속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이제 숫자보다 더 막막한 영역이 남아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를, 글로 써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