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당신에게

융의 ‘페르소나’와 잃어버린 얼굴

by 안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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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에 앉아 있는 내담자의 모습은 대개 두 겹입니다. 하나는 세상에 비치는 사회적인 직함과 역할이라는 겉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그 아래에서 숨죽여 울고 있는 본연의 모습입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멀쩡한 척 웃고 있는데, 혼자 있으면 무너져 내려요." 이 고백은 15년의 세월 동안 제가 가장 많이 들은 문장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고 '괜찮은 척'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요? 분석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은 이 지점에서 '페르소나'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페르소나, 사회적 생존을 위한 필수품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들이 썼던 '가면'을 뜻합니다. 융은 우리가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입는 '외부용 인격'을 페르소나라고 불렀습니다. 회사원으로서의 나, 부모로서의 나, 혹은 15년 차 센터장으로서의 나 또한 일종의 페르소나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페르소나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복잡한 사회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타인과 매끄럽게 소통하기 위한 '심리적 의복'과 같습니다. 발가벗고 세상에 나갈 수 없듯이, 우리는 각자의 가면을 쓰고 사회적 안전을 보장받습니다.


문제는 가면이 얼굴에 달라붙을 때 시작된다

문제는 가면에 생겨난 상처가 아니라, '가면과 나를 동일시할 때' 발생합니다. 사회적 역할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가면을 벗은 뒤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상담실을 찾는 많은 이들이 겪는 '번아웃'이나 '정체성 혼란'은 사실 페르소나가 너무 단단해져서 그 아래의 진짜 자아(Self)가 숨을 쉬지 못할 때 일어나는 비명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직업이나 직함 외에 답할 수 있는 말이 사라졌다면, 당신의 페르소나는 이미 당신의 얼굴에 너무 깊이 유착되어 버린 것입니다.


가면을 잠시 내려놓는 연습

융은 건강한 삶이란 페르소나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페르소나와 자아 사이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내가 쓴 가면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필요할 때 언제든 그 가면을 벗어 걸어둘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상담은 바로 그 가면을 잠시 내려놓고, 그 아래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는 시간입니다. "센터장으로서의 안태희가 아니라, 오늘 하루가 고단했던 한 사람으로서의 나"를 마주하는 연습입니다.


당신의 진짜 얼굴은 안녕한가요?

오늘 하루, 당신은 몇 개의 가면을 썼나요? 그 가면 아래에서 당신의 진짜 얼굴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나요?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것은 비겁한 것도, 비정상적인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 가면이 당신의 전부가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가끔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가면을 벗고, 거울 속의 낯설고도 그리운 진짜 당신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진짜 얼굴은 여전히 그곳에서 당신의 다정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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