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가졌는데 왜 공허할까?

쇼펜하우어의 '권태'와 번아웃의 상관관계

by 안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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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을 찾는 이들 중에는 소위 '사회적 성공'을 이룬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직장, 안정된 가정, 적당한 자산까지 갖췄음에도 그들은 말합니다. "선생님, 다 이룬 것 같은데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 같아요.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고, 그냥 모든 게 번아웃된 기분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목표 상실'이나 '우울'로 진단하곤 하지만, 저는 이 증상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다시금 쇼펜하우어를 떠올립니다. 그는 인간의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고통'이 오고, 그것이 너무 완벽하게 충족되면 곧바로 '권태'가 찾아온다고 경고했습니다.


욕망의 충족이 가져온 역설, 번아웃

현대인의 번아웃은 어쩌면 열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설정한 단기적 목표들이 너무 빨리 소진되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쇼펜하우어의 관점에서 보면, 권태는 단순한 지루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의 의지가 갈 곳을 잃고 공허 속에 표류할 때 발생하는 '존재론적 통증'입니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번아웃의 실체는 대부분 이 '권태'와 맞닿아 있습니다.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와 목표점에 도달했지만, 그곳에 우리가 기대했던 영원한 행복은 없었습니다. 욕망은 또 다른 갈증을 낳거나, 혹은 갈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무미건조한 공허로 변질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공적인 삶'을 살고도 우울해지는 철학적 이유입니다.


권태를 견디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그렇다면 이 권태로운 공허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쇼펜하우어는 예술과 명상, 그리고 타인에 대한 '동정심(Mitleid)'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저 또한 15년의 상담 현장에서 내담자들에게 권하는 솔루션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나만을 향해 있던 욕망의 시선을 잠시 거두고, '나를 넘어서는 가치'에 시선을 두는 것입니다.

내가 이룬 성공이 누군가에게 기여가 되고, 나의 아픔이 다른 이의 상처를 이해하는 도구가 될 때, 권태라는 늪은 의미라는 단단한 땅으로 바뀝니다. 권태는 우리에게 "지금 당신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때가 되었다"고 알려주는 영혼의 신호입니다.


다시, 생의 의지를 회복하는 길

상담실은 고통을 없애는 곳이기도 하지만, 권태를 의미로 치환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1편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고통이 삶의 기본값이라면, 그 고통과 권태 사이에서 나만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치유의 시작입니다.

당신의 오늘이 이유 없이 공허하다면, 그것은 당신이 잘못 살아서가 아닙니다. 단지 쇼펜하우어가 말한 '권태의 구간'을 지나는 중일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공허를 무엇으로 채울지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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