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의 진짜 의미

사르트르의 '시선'과 관계의 피로감

by 안태희

상담실을 찾는 내담자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어려움은 결국 '관계'로 귀결됩니다. 직장 상사의 평가, 배우자의 기대, 친구들의 시선... 수많은 관계 속에서 에너지가 고갈된 그들은 종종 이렇게 한탄합니다.

"선생님, 그냥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가서 혼자 살고 싶어요. 사람이 너무 피곤합니다."

관계에 지쳐 나가떨어진 이들의 절규를 들을 때마다, 저는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의 저 유명하고도 섬뜩한 문장을 떠올립니다.

"타인은 지옥이다 (L'enfer, c'est les autres).

- 희곡 <출구 없는 방> 중에서 -


많은 이들이 이 문장을 "내 주변 사람들이 나쁜 놈들이라 내 삶이 지옥 같다"는 식의 혐오 표현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15년간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본 제가 이해하는 사르트르의 통찰은 훨씬 더 본질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에 있습니다.


지옥의 정체: 나를 '사물'로 만드는 타인의 시선

사르트르가 말한 '지옥'의 핵심은 타인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le regard)'에 있습니다.

나는 나만의 세계에서 자유로운 주체(Subject)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는 순간, 나는 그 사람의 세계 속에서 평가되고 판단되는 '객체(Object)', 즉 하나의 '사물'로 전락합니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가진 분들이 느끼는 지옥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내 감정과 욕구보다는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늘 우선입니다. 타인의 눈에 비친 '괜찮은 나'를 연기하기 위해, 정작 '진짜 나'의 자유는 철저히 억압됩니다.

내 삶의 주도권이 타인의 시선으로 넘어가는 순간, 관계는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니라 끊임없이 눈치를 봐야 하는 피곤한 무대가 됩니다. 이것이 사르트르가 말한 지옥의 실체입니다.


우리는 왜 스스로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가

흥미로운 점은,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많은 내담자가 이 지옥문을 스스로 열고 들어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그 자유를 감당하기 버거워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타인의 확신에 찬 시선에 의존하려 합니다. "부장님이 인정해 주니까", "남들이 부러워하는 결혼이니까"라며 타인의 평가를 내 존재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에 나를 맡기는 대가는 혹독합니다. 나의 가치가 타인의 기분이나 평가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기 때문입니다. 내 삶의 평가 기준을 외부에 외주(outsourcing) 준 대가, 그것은 만성적인 관계의 피로감과 불안입니다.


지옥에서 탈출하는 법: 시선을 되돌려주기

그렇다면 이 지옥 같은 관계의 피로감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인도'로 도망치는 것뿐일까요? 사르트르의 해법은 다소 냉정하지만 강력합니다.

"당신을 바라보는 그 타인 역시, 당신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또 다른 불안한 주체임을 깨닫는 것."

상담실에서 저는 내담자들에게 이렇게 조언하곤 합니다. "당신을 평가하는 그 사람도, 사실은 당신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자각할 때,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절대적인 심판이 아닌, 하나의 '관점'으로 격하시킬 수 있습니다.

타인은 지옥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지옥을 만드는 재료는 '타인의 시선'에 압도되어 스스로 자유를 반납해버린 나의 두려움입니다.

이제 그만 타인의 무대에서 내려오십시오. 당신을 객체로 만드는 시선에 맞서, 당신 역시 주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비로소 관계의 지옥문은 열리고 진짜 자유가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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