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데 왜 외로울까?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낭만적 사랑의 함정

by 안태희

상담실 소파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 사이에는 종종 물리적 거리보다 훨씬 아득한 심리적 협곡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해서 결혼했고,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눈동자는 각기 다른 허공을 헤맵니다.

"선생님, 차라리 혼자일 때는 이렇게 외롭지 않았어요. 옆에 누군가 있는데도 철저히 혼자라고 느껴질 때, 그 외로움은 견디기가 너무 힘듭니다."

15년 동안 수많은 커플을 상담하며 제가 목격한 가장 아픈 역설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랑을 시작하지만, 종종 그 사랑 한가운데서 생애 가장 지독한 외로움을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저는 이 오래된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사랑의 민낯을 집요하게 파고든 작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통찰을 빌려오려 합니다.


우리가 믿어온 '낭만적 사랑'이라는 신화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저서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 우리의 외로움이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낭만적 사랑(Romantic Love)'의 신화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합니다.

우리는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사랑을 배웁니다. 그 속에서 사랑은 운명처럼 시작되고, 눈빛만 봐도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며, 그 사람만 있으면 나의 모든 결핍과 외로움이 단번에 해결될 거라는 환상을 심어줍니다. 이 신화 속에서 '진정한 사랑'은 말을 하지 않아도 나의 고통을 알아채는 '독심술'을 전제로 합니다.

상담실을 찾는 많은 내담자가 배우자에게 느끼는 서운함의 뿌리에는 바로 이 신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걸 말로 해야 알아?",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나를 이렇게 외롭게 해?"라는 항변은 사실 "당신은 왜 나의 구원자가 되어주지 않느냐"는 어린아이 같은 투정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의 한 인간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외로움에서 구원해 줄 '이상적인 존재'로 투사하고 기대합니다. 그 거대한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지독한 외로움에 빠지게 됩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기술'이다

그렇다면 사랑 안에서도 외롭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랑은 저절로 주어지는 뜨거운 '감정'이 아니라, 배우고 익혀야 할 하나의 '기술(Skill)'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제각각 다른 행성에서 온 존재들입니다. 수십년을 같이 살아도 상대의 마음속 지도를 완벽하게 독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드 보통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랑은 타인이라는 난해한 텍스트를 끊임없이 해석하고, 나의 복잡한 내면을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해서 가르쳐주는 지난한 과정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는 초코파이 광고 문구일 뿐, 현실의 사랑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나의 외로움을 상대가 알아주길 기다리며 침묵의 시위를 하는 대신, 내가 지금 왜 외로운지, 어떤 위로가 필요한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교육자'가 되어야 합니다. 동시에 상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이면에 숨겨진 불안과 역사를 배우려는 '학생'이 되어야 합니다.


완벽한 이해는 없다, 그러니 노력할 뿐

상담의 목표는 두 사람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 외로움을 박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타인임을 겸허히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알랭 드 보통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영원히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고 냉정하게 말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근원적인 한계를 인정할 때, 관계의 숨통이 트입니다. 상대가 나를 완벽하게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 이상 비극이 아니라 당연한 전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데도 외로우신가요? 그것은 당신의 사랑이 실패했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그저 서로 다른 두 우주가 충돌하며 겪는 필연적인 성장통일 뿐입니다. 완벽한 이해라는 신기루를 쫓는 대신, 오늘 밤 옆에 있는 사람에게 나의 외로움을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해 보는 건 어떨까요. 사랑은 바로 그 서툰 노력들 사이에 머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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