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자정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집에 들어와 할 일을 하고 나면 1시 반 씻고 누우면 2시경이 되는 생활이 계속되었더니 몸이 좀 안 좋아지는 것을 내가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새벽기도회를 빠질 수는 없는 일이니 6시 반에 시작하는 새벽예배를 나가려면 최소한 5시 40분이나 50분에는 일어나야 한다.
'내가 이러다 쓰러지지, 쓰러져... 하지만, 서재진, 한 번도 쓰러져본 적 없잖아... 그건 그렇지... 또 모르지, 이렇게 몸뚱이를 막 혹사시키면, 쉬어서 기름 안 넣고 가는 차 마냥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간에 서 버릴지도...'
항상 그렇듯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도서관에 가니 저녁 6시 반이다. 9시가 넘는다. 몸에서 삐걱삐걱한 소리가 난다.
'안 되겠다, 오늘은 일찍 집에 가서 누워야지... 하지만, 해야 할 공부가 이렇게 태산 같은데, 너 이거 다 알아? 아니...'
하루에도 몇 번씩 갈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결국엔 다시 자정에 도서관을 나온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고생을 사서하나...'
언니랑 안암동에서 같이 자취할 때, 내가 사당동 과외를 마치고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집 옆에 있는 고려대 과학도서관에 들르곤 했다. 언니랑 내가 같이 공부하는 고정석(내가 새벽 6시에 영어학원 가기 전에 청소 아줌마가 도서관 청소하실 때 가서 맡았던 명당자리~)에 과외 마치고 가면 밤 10 시 30분경, 조금 앉아서 언니랑 같이 공부하다가 도서관 문 닫는 시간이면 아리랑 민요와 고려대 교가가 흘러나온다. 언니랑 같이 흥얼흥얼 따라 부르면서 집으로 오곤 했다. 내가 언니한테 묻는다.
"언니, 뭐 하려고 이렇게 우리가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는 거지?"
"왜긴, 왜겠어, 다 훌륭한 사람 되려고 이러는 거지..."
초등학교 교과서 같은 천편일률적인 답이었지만,
"아, 그렇구나~"
하고 맞장구를 치고는 그 말을 되뇌고 또 돼 내었다.
"소"라는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이중섭 씨가 미국 뉴욕에서 낮에는 화장실 청소를 하며 돈을 벌고 밤에는 자는 시간을 쪼개가며 그림 공부를 할 때였다. 한국에서 이중섭을 만나기 위해 온 친구가 이중섭의 비참하리만큼 처절하고 힘든 생활을 보고는 가슴이 아파서 이렇게 말했단다.
"중섭아, 한국으로 가자. 네가 한국에 가면 이런 고생 사서하지 않아도 되고 기름진 음식에 배부르게 먹고 대접받으면서 그림공부 더 잘할 수 있어... 도저히 안쓰러워서 못 봐주겠다. 우리 같이 한국으로 들어가자..."
이중섭이 한마디로 거절했단다. 이렇게 말하면서...
"싫어, 나 안 들어가. 나는 지금의 내 눈빛을 잃고 싶지 않아"
다시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도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몸이 부서져라 공부하는데, 도대체 왜 이토록 피곤한데도 아침에 그 난리를 치며 일어나 새벽예배에 가는데..., 도대체 뭐 때문에..'
나도 작가 이중섭 씨처럼 눈빛을 잃고 싶지 않으니까. 피곤으로 다소 핏발이 서있는 눈이긴 하지만, 뭔가 살아있잖아. 피곤으로 움푹 들어간 그 눈 속에 열정이 담겨있고, 주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담겨있잖아. 그러면 된 거야..., 지금은 이렇게 힘들어도 내가 승리하고 있는 것이야.
내가 오늘 내게 건네며 위로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