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I Help you?
안암동에서 자취 하고 있을 때였다.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나를 언니가 급하게 깨웠다.
"재진아, 아무래도 너 미국 가야겠어!"
"왜, 갑자기..."
"너, 방금 전에 영어로 잠꼬대했어!
"뭐라고 했는데?"
"너, 또 지하철에서 외국인 만났는데 네가 먼저 다가가 말 걸었니?"
"언니가 내 꿈에 들어왔어? 어떻게 그걸 알았데?"
"May I help you?라고 네가 방금 전에 영어로 잠꼬대하더라..."
고등학교 때 일찌감치 포기한 과목이 영어였는데, 막상 유학 가려고 하니, 내 발목을 잡는 것 또한 영어였다. 이를 어찌해야 하나. 내가 아는 나는 자고로 벼락치기형은 아니다. 언니와 똑같이 밤 새워 시험공부 해도 언니는 전 과목 올백을 받느냐를 두고 고심하는데, 난 너무나도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언니는 시험 전날 평소에 공부했던 것을 마무리하느라 밤 새웠고, 나는 시험 전날 훑어보는 모든 내용들이 새로웠다!
그렇다면 장기전에 돌입하는 수밖에. 새벽예배 마치고, 6시 50분에 시작하는 Time 지 영문독해 수업, AFKN 영어 청취 수업, 회화수업 듣고, 대학교 가서 수업 들은 뒤에, 곧바로 사당동부터, 산본, 일산, 잠실 두루 거쳐 아이들을 가르치러 다닌다.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학원비와 집세를 냈다.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언니와 내가 자취 하면서 부모님께 등록금까지는 힘들겠지만, 생활비와 책값 등의 일체 우리가 벌어서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경제적으로 묶여 있는 상황에선 정신적, 정서적으로 독립할 수 없다는 당찬 발언과 함께!
그 말 지키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고, 세상에서 적어도 사람 상대로 사기 치지 않는 공부가 가장 쉬었다는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될 정도였다.
그렇게 새벽반 수업 6년 듣고, 나는 크신 그분의 "은혜"로 희망하는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회화반에서도 장기 출석하는 학생들은 회화 급수를 어지간하면 다 올려줘서 나는 가장 높은 수준의 고급반을 오랫동안 다녔다. 그래서, 내 회화 실력도 고급 수준인 줄 알았다.
하루는 회화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러서, 다른 학생들은 한 두 달 하고 마는데, 나만 오래 계속 자기 반에 있으니까, 매달 새로운 교재 준비하는 것이 만만치 않으니 우리 학원 말고 맞은편에 있는 더 큰 학원으로 가라고 종용하기까지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실력이 출중하니까, 자기 수준에서 더 가르칠 것이 없으니 "하산"해도 된다는 말로 들렸다.
그런데, 왠 걸!
태어나서 처음 타보는 비행기로 열 시간 넘게 날아온 미국 땅에서의 내 영어는 "호러블 Horrible (끔찍한)" 그 자체였다.
왜 이리 말을 빨리 하지? 그날 당장 회화 선생님한테 이메일을 했다. 왜 말을 이렇게 천천히 했느냐고, 여기 오니, 너무 말 빨리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고, 입도 뻥끗하기 어렵다고 투정을 부렸다.
유학 나오기 전까지 학업계획서를 비롯해 영어회화까지 두루두루 도움을 주었던 회화 선생님 Richard와 입학허가서를 들고 2000년도에 종로 시사영어학원 로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미국 가기 전에 좁은 이마를 넓혀보고자, 지인의 조언을 따라 족집게로 이마 주변의 잔머리를 다 뽑았습니다. 그런 다음 뜨거운 물로 지지면 됫박처럼 좁은 이마가 넓혀진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형성된 현대판 “오성과 한음" 버전의 인위적인 제 이마선이 인상적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