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 6번째 시험마저 낙방하고, 정신 건강을 위해 운전면허 시험 없는 자체 안식년을 갖기로 했다. 유학생 때, 잘 못했지만 따라가야 할 산더미 같은 과제와 공부가 있어 삶을 뒤돌아 볼 여유가 없었다. 막상 결혼해서 L.A. 에서 살다 보니 삶은 녹록지 않았다. 내 가족 아닌 다른 가족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한국에 계신 친정 부모님께 잘 말하지 않았다. 속상한 일 있으면, 나처럼 일상이 고주파~ 하이 피치, 하이퍼 (High Pitch, Hyper) 성격은 전화받는 첫마디부터 티가 많이 나 일부러 전화를 피한다. 하지만, 그날은 너무 속상해 한국 친정엄마한테 푸념 아닌 푸념을 했다. 이래저래 속상하고,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어떻게 일이 이렇게 될 수 있는지 따지 듯 엄마에게 물었다. 그러자,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엄마가 답했다.
“그런 거여~!”
“엄마, ‘그런 거여’가 뭐여!”
“아녀, 그런 거여. 살다 보면 그보다 더한 일도 오는데, 네가 겪는 건 아무것도 아니여. 진짜는 환갑 넘어서 오지 왜.”
그러면서 찬찬히 말씀을 이어 가셨다.
“아가, 네가 유학 간다고 했을 때 엄마랑 아빠는 너 공항에 데려다주고 갓길에 차 세우고 엉엉 울었다. 이번에 연고지도 없이 혼자 떠날 때 꿈이 있어서 가는 거니까 믿어주자 했지. 그런 네가 대륙을 가로질러 막내아들 같은 사위를 만나 행복하게 살게 된 거야. 이제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 주변 신경 쓰지 말고.”
“엄마, 어떻게 내가 신경을 안쓸 수가 있어. 장손 맏며느리인데”
종갓집 맏며느리 선배인 엄마가 계속 다독이며 말씀을 하셨다.
“네가 승훈이 만나서 행복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시 미국 갈 때 했던 결심대로 하고 싶은 거 혀. 공부한다고 간 거 잔여. 사람은, 내 할 일이 없을 때 주변이 거슬리는가. 힘들 땐 맛있는 거 사 먹고 정신 차리는 게 더 중요혀.”
듣고 보니 조목조목 다 맞는 말씀이다. 내가 언제부터 다른 사람을 신경 썼단 말인가.
무소의 뿔처럼 나아가리라. 나는 소띠니까~!
나의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결심만 하고 공부를 안 한다는 것이다. 이제 태어날 때부터 공부 좋아하는 남편 서 승훈의 힘을 빌려야 할 때다.
“여보, 이왕 공부하는 김에 우리 둘이 박사과정 지원하는 건 어때?”
화들짝 놀란 남편이 화답한다.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