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박사과정 지원할 학교를 각각 선정했다. 외워야 할 단어 범위를 정해서 외우고 자기 전에 같이 시험을 봤는데, 물론 난 공부하지 않고 매번 시험만 봤다.
계획만 원대하게 세우고 실천하지 않는 나를 보면서 신기해하는 남편은 정말 열심을 다해 꾸준히 공부했고, 그 덕으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영양분 삼아 시험 준비를 근근이 할 수 있었다.
대망의 시험을 치르고, 결과를 기다리는데 줄줄이 다 불합격이다! 우린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맥을 못 추었다. 이럴 수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나를 알고 상대를 알면 백 번 싸워도 백 번 이긴다 하였거늘 우리 자신을 이렇게 몰랐다니.
말 그대로 낭패다!
서부, 중부, 동부 합해서 11곳을 지원했는데, 10곳을 다 떨어지고 중부 아이오와 대학교 한 곳만 남았다.
낙심해 있던 중 2009년 4월 1일 아이오와 대학교에서 이메일이 왔다. 오늘이 박사과정 지원 마지막 날인데, 3개의 서류가 도착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오와 대학 박사과정을 아직도 고려 중이라면 바로 스캔해서 보내라고 한다. 그리고, 정식으로 합격하면 그때 공식 자료를 보내면 된다고 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지원자를 마감일에 친절하게 알려주다니! 그날로 답장을 보냈다. 제출되지 못한 서류 중에 나의 발목을 잡는 Cornell 대학원 석사 과정 성적표가 있었다.
“여보, 내가 성적표 빼고는 멀쩡하게 보였나 봐!”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다시 이메일을 보냈다. 그럼, 내가 붙을 확률이 있는 것인가를 물었다.
그랬더니, 아직 회의를 더해야 한다고 답신이 왔다. 그리고, 몇 주 뒤에 결과 나오면 알려주기로 했다.
입이 바싹바싹 타고 마르기 시작했다. 오만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졌다. 2주 걸린다더니 5월이 되어도 연락이 없어 이메일을 했더니 5월 중순에 또 회의를 한다고 했다.
5월 22일 비공식적으로 내가 박사과정 최종 합격자로 결정을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를 뽑기 위해 입학 사정관들이 투표까지 했단다.
그러면, 나 이제 이사 갈 준비를 하면 되냐고 물었더니, 학과 조교가 아직 아니란다.
내 석사 성적이 박사과정 지원자격 미달이라서 내가 지원한 과에서 대학원에 항소를 해서 승인을 받아야 한단다.
민폐로구나 민폐!
부끄럽고 민망한 항소는 통과돼서 7월 1일에 박사과정 입학 허가증을 받고 한 달 안에 짐 정리를 해서 타주 이사를 강행해야 했다.
20년을 한 번도 캘리포니아주를 벗어나지 않았던 장손 남편이 걱정되었다. 그리고, 장남을 의지하며 사시는 어머님께도 너무 죄송했다.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보, 어떻게 하지? 나 이번에 어렵게 학교 다시 들어가게 되었는데 내 인생에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아.”
비장한 표정으로 남편이 답했다.
“난, 여보 가는데 다 따라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