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마일을 달려 도착한 아이오와는 평화로웠다. 끝없는 바다처럼 드넓게 펼쳐진 평원. 길가에 드리워진 옥수수 밭. 들판을 한가롭게 거니는 소떼들. 보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되는 곳이었다. 2009년 7월 1일 아이오와 대학 박사과정 최종 합격증을 받고, 한 달 만에 타주 이사를 강행했다. 렌트할 집을 직접 보지도 못한 채 전화로 계약했다.
부동산 중개업자는 통화 중, 여러 번 “Are you sure? (정말이십니까)” 하며 되물었다.
짐을 풀고, 미국 식당 Applebee’s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백인 청년이 서빙을 하는 모습을 보신 시어머님께서 한 말씀하셨다.
“이곳이 진정한 미국이다!”
타주 이사로 부친 짐은 도착하지 않아서, 이민 가방 위에 김과 오징어 젓을 반찬 삼아, 방금 지은 흰쌀밥과 먹는데 꿀맛이다. 장거리 여행 중에도 차 안에 보물단지처럼 들고 다닌 밥통은 기름진 양식으로 느끼한 속을 구수한 누룽지로, 보슬보슬한 흰쌀밥으로 달래주었다. 어떤 날은 아이오와의 상징 옥수수를 아침으로 밥통에 쪄서 먹고 가기도 했다. 시어머님께서는 캘리포니아 주 엘에이로 돌아가시고, 엘에이 총각이었던 남편과 나만의 단출한 신혼이 시작되었다.
2004년도에 떠난 캠퍼스를, 태평양과 미대륙을 횡단하여 2009년 중부 아이오와 대학에서 다시 밟게 되었다.
2004년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에 떨어졌을 때 세상이 다 무너지는 것 같았다. 2004년부터 2006년 8월까지 전공과는 무관한 영어를 사설 학원에서 가르치면서도 박사 지원은 해마다 했었다.
“언니, 블랙리스트에 있나 봐. 보지도 않고 떨어뜨리는 것 아냐?”
하며 우스개 소리도 했다.
이민 가방 두 개 들고 태평양을 건넜던 유학생이 이민자의 아내가 되어 중부 아이오와에까지 왔다. 마치, 내 인생의 주인 되시는 분이 진공청소기로 쭉 뽑아 동부, 서부, 중부에 떨궈주시는 것 같다. 분명 내 계획에 없던 길인데, 가보니 훨씬 더 낫다.
굴곡 있는 인생은 짜릿해서 좋다.
서른여섯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든든한 내 편, 영원한 나의 기사, 나의 발이 되어주는 남편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