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딸린 차를 보내 주시옵소서!

2021년 12월 17일

by 서재진

아이오와주에서 생활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기분 좋은 소문이 들려왔다. 서재진 서승훈 집사님 부부는 금슬이 좋아서 둘이 항상 같이 다닌다는~! 운전 못 하는 나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려 오는 것을 좋게 봐주신 것이었다.


차 없고, 배우자 없던 시절


“기사 딸린 차를 보내 주시옵소서!”


드린 기도를 이렇게 애절하게 응답해 주시는 것인가!


6번 실패를 딛고 일어설 만큼 안식년을 가졌으니, 한적한 아이오와에서 다시 운전면허 취득을 향해 달리기로 결심했다.


초보운전자인 내가 엘에이라는 대도시가 너무 위험하니까, 이곳으로 보내셨다는 확신까지 들었다. 그래도, 내가 LA 다운타운과 할리우드 DMV를 내 집 안방 드나들 듯하며 도사가 되신 몸인데 하며 자신만만했다.


일곱 번째 시험을 보는 날이다.


대도시와는 구별되게 아이오와 DMV는 스케줄 예약할 필요도 없이 First Comes, First Serves로 오는 순서대로 업무 처리 해줬다.


느릿한 중부 말투를 가진 시험관이 내 옆자리에 탔다. 나는 능수능란하게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운전면허 시험 칠수 차 아줌마로서 능글맞게 운전을 했다. 한 바퀴 다 돌아 다시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또 떨어졌 단다!


이유인 즉 슨, 속도 제한 25마일 구간에서 28마일로 달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What does yellow sign mean? (노란색은 무슨 뜻이지요?)”


그렇게 쉬운 질문을 내게 하시다니 콧방귀를 뀌면서 답했다.


“Go faster? (더 빨리 지나가라는 뜻이지요?)”


“No, it means you pause to stop. So, you should stop. (아니, 이건 정지하기 위해 멈춰 서라는 뜻이야)”


면목이 없었다. 순진한 남편은 내게 물었다.


“이번에는 왜 떨어졌어, 여보?”


“흥, 백인 위주의 아이오와는 아시안 학생이 운전하는 걸 선호하지 않는 것 같아!”


너무나도 당당한 나의 변명에 남편은 근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여덟 번째다.


하도 많이 떨어져서 기억도 가물가물 하다. 사 차선이 있는 로컬구간에서 좌회전을 하려고 하는데, 멀리서 차 한 대가 유유자적하게 달려왔다. 느리게 오는 차가 이곳에 도달하는 시간과 내가 좌회전을 하는 시간을 계산해 보니, 승산이 있겠다 싶어 좌회전을 했다.


그런데, 또 떨어졌 단다!


내가 좌회전을 무리하게 해서, 멀리서 거북이걸음으로 달려오던 차가 속도를 살짝 줄여야만 했고, 이는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위험 소지가 있다고 했다.


아홉 번째 시험날이다.


일곱 번째 시험 봤을 때 만났던 시험관이다. 이번엔 주차장에서 끝났다. 내가 주차장을 벗어나려고 하는 순간, 대형버스가 우회전을 하려고 하길래, 내가 양보했다. 얍삽하게 뒤따르던 차가 덩달아 우회전을 감행했다. 시험관은 운전면허 시험장으로 차를 돌려 다시 주차하라고 했다. 엄한 목소리로 내리 깔며 왜 두 차에게 양보했냐고 나를 심문했다. 먹힐지 안 먹힐지 확신은 없었지만,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간드러진 목소리로 답했다.


“Being Polite~ (바쁘신 분은 먼저 가시라고, 예의를 지켰지요!)”


“Being polite doesn’t mean being safe. (예의 바른 것과 안전 운전은 별개의 문제다)”


라며 날 떨어뜨렸다. 직진하는 차량이 우선순위가 주어지므로, 내가 먼저 갔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부연 설명해 주었다.


우와! 주차장에서 끝난 것만도 두 번째다.


나는 왜, 서부와 중부를 번갈아 가며, 운전면허 시험 주차장도 벗어나지 못한 채 이 난리를 치르고 있는 것인가? 그 길로 시험관에게 달려가, Iowa City 말고 다른 DMV 주소를 달라고 하며, 오늘 당장 다른 곳에서 시험을 치겠 노라고 어릴 쩍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따졌다. 불안해하는 남편을 옆자리에 태우고, 1시간 넘게 나 혼자 운전해서 옆 도시 Wateroo로 갔건만, 하루에 장소를 바꿔가며 두 번 실기 시험을 칠 수 없다고 해서 허탕만 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이 길로 달려가서, 오늘 시험을 칠 수 있다고 내게 말한 시험관에게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행여나, 열 번째 시험에서 또 만날까 봐 꾹 참았다.


열 번째 시험날이다.


늙은 노신사 시험관이시다. 이러다가 아이오와 작은 면허 시험장에 몇 분 안 되는 모든 시험관들과 안면을 트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에도 또 떨어졌다.


이유인 즉 슨, 평행 주차하러 들어가고 나올 때 깜빡이를 켜지 않았단다. 그것 외에는 다 괜찮다고 하셨다. 승리의 고지가 눈앞에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열 번째 떨어졌을 땐 남편에게 면목이 없었다. 누구는 이혼사유가 되는 만행을 내가 저지르고 있다고 조언했다.


“여보, 미안해! 열 번 째까지 떨어지고, 정말 나 자신이 창피하고 부끄럽다!”


라고 말하자, 착한 남편은


“여보, 이제 겨우 two digit (두 자리)이야.”


하며 날 위로했다!


역시! 다른 별에서 온 어린 왕자의 정신세계는 위기에 처한 지구에서 한층 더 빛을 발하였다.


마흔 즈음에 동안 미모 논란.jpg

추신: 동안 미모, 냉동 인간이라는 논란을 잠식시키고자 2021년 1월 31일 눈이 오는 날 찍은 사진을 올립니다.

2009년부터 즐겨 쓰는 털모자를 파카 모자 안에 쓰고, 눈 덮인 캐나다의 숲 속처럼 보이는 저희 동네 공원에서 찍은 셀카입니다.


자글거리는 눈가 주름이 저는 점점 더 좋아집니다. 지천명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긴 글 읽어주시고, 댓글도 달아주시고, 좋아요도 눌러 주시니 저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2021년 12월 17일

월, 화, 수, 목, 금, 토 연재
이전 22화굴곡 있는 인생은 짜릿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