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그녀, 내남편(10)

윌리엄 : 발병

by 빌리박


윌리엄 : 발병


전화가 울린 건 새벽 두 시였다.


나는 보스턴 아파트에서 잠들어 있었다. 침대 옆 탁자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 현철의 이름이 떴다.


이 시간에 전화라니. 이상했다. 현철은 새벽에 전화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여보세요?"


"윌리엄."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현철의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너무 작고, 너무 흔들리고 있었다.


"수아가..."


"수아가 뭐?"


"쓰러졌어."


잠이 확 깼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어디야?"


"케임브리지 병원. 응급실."


"지금 가."


나는 전화를 끊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옷을 대충 걸치고 차 키를 집었다. 새벽 두 시. 도로는 비어 있을 것이다. 20분이면 갈 수 있다.


---


25분 후, 나는 케임브리지 병원 복도에 서 있었다.


현철이 벤치에 앉아 있었다. 얼굴이 창백했다.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평소의 그가 아니었다. MIT에서 동전 던지기를 간파하던 날카로운 눈이 아니었다. 무너진 남자의 눈이었다.


"현철."


그가 고개를 들었다.


"왔어?"


"무슨 일이야? 자세히 말해."


현철이 천천히 말했다. 목소리가 계속 떨렸다.


"저녁 먹고 있었어. 수아가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고 했어. 그러더니... 쓰러졌어. 말을 못 하고, 한쪽 팔을 못 움직이고..."


"의사는 뭐래?"


"뇌졸중이래. 근데..."


"근데?"


현철이 고개를 저었다.


"검사 결과가 이상하대. 뇌졸중이랑 안 맞는다고. 혈관이 막힌 것도 아니고, 터진 것도 아니래."


나는 옆에 앉았다. 현철의 어깨를 잡았다.


"일단 기다리자. 검사 더 하겠지."


"수아가 서른이야. 서른에 뇌졸중이 말이 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이 되든 안 되든,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었다.


---


의사가 나왔다.


젊은 신경과 전문의였다. 그의 표정이 혼란스러워 보였다는 것만 기억한다.


"보호자분?"


"남편입니다."


현철이 일어섰다. 나도 따라 일어섰다.


"상태가 어때요?"


"일단 안정은 됐습니다. 의식도 돌아왔고요."


현철의 어깨에서 긴장이 조금 풀렸다.


"다만..."


의사가 말을 이었다.


"원인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뇌졸중 아니에요?"


"증상은 뇌졸중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MRI 결과가 전형적인 뇌졸중 패턴과 다릅니다. 혈관 영역을 따르지 않아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뇌졸중은 특정 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면서 그 혈관이 담당하는 영역에 손상이 생깁니다. 그런데 환자분의 손상 영역은... 그 패턴을 따르지 않습니다."


현철의 눈이 달라졌다. 무너진 남자의 눈에서 연구자의 눈으로. 나는 그 변화를 알아챘다.


"다른 가능성은요?"


"몇 가지 추가 검사가 필요합니다. 지금은 확답 드리기 어렵습니다."


의사가 돌아갔다. 현철이 중얼거렸다.


"혈관 영역을 따르지 않는다..."


"현철."


"잠깐만. 생각 좀 할게."


그는 벤치에 앉아 머리를 감쌌다. 무언가를 떠올리려는 것 같았다.


나는 간호사에게 물었다.


"환자 면회 가능한가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확인해볼게요."


---


수아의 병실에 들어갔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얼굴이 창백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잠든 것 같지는 않았다. 입술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수아."


현철이 다가가 손을 잡았다. 수아가 눈을 떴다.


"현철..."


목소리가 약했다. 평소의 그녀가 아니었다. 도서관에서 한국어를 가르쳐주던, 찰스 강변에서 웃던, 그 수아가 아니었다.


"괜찮아. 내가 있어."


현철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문 옆에 서 있었다.


수아의 눈이 나를 향했다.


"윌리엄... 왔어?"


"응."


나는 그렇게만 대답했다.


"고마워..."


그녀가 웃으려 했다. 하지만 웃음이 되지 않았다.


나는 병실을 나왔다. 복도에 서서 벽에 기대었다. 눈을 감았다.


---


일주일이 지났다.


검사는 계속됐다. MRI, CT, 혈액검사, 뇌파검사. 결과는 매번 혼란스러웠다.


"전형적인 뇌졸중이 아닙니다."


"그럼 뭔데요?"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현철은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낮에는 수아 곁에, 밤에는 의학 논문을 읽었다. 그의 스크린에는 수십 개의 탭이 열려 있었다. 신경과, 뇌혈관질환, 희귀질환.


나는 매일 병원에 왔다. 아침에 커피를 가져오고, 점심을 사고, 저녁에는 현철을 억지로 식당에 데려갔다.


"먹어. 쓰러지면 누가 수아 돌봐."


"입맛이 없어."


"그래도 먹어."


현철은 젓가락을 들었다. 몇 입 먹고 내려놓았다. 나는 더 강요하지 않았다.


"논문에서 뭐 찾았어?"


"몇 가지 가능성이 있어. 근데 확실한 건 없어."


"어떤 거?"


"혈관염, 자가면역질환, 그리고..."


현철이 멈췄다.


"그리고?"


"미토콘드리아 질환."


"그게 뭔데?"


"세포 에너지 대사 문제야. 뇌하고 근육에 영향을 줘. 근데... 희귀해. 진단도 어렵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현철의 눈에서 뭔가를 읽었다.


"그거면 어떻게 돼?"


현철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


2주 후, 수아가 다시 쓰러졌다.


이번에는 발작이었다. 병실에서 갑자기 경련을 일으켰다. 의료진이 달려왔다. 현철은 복도로 밀려났다.


"안 돼... 수아..."


현철이 무너졌다. 벽에 주저앉아 울었다.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그의 옆에 앉았다. 어깨를 잡았다.


"괜찮아. 의사들이 있어."


"왜 이러는 거야... 왜 수아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현철이 내 어깨에 기대 울었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의 등을 두드렸다.


---


그날 밤, 아파트로 돌아왔다. 잠이 오지 않았다.


수아는 서른이었다. 현철이 말한 미토콘드리아 질환이 맞다면.


그 뒤를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하는 대신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다음 날,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아버지와는 3년째 말을 안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안 한 거였다. 그분은 가끔 비서를 통해 연락을 시도했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았다.


수아가 아팠다. 최고의 의료진이 필요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런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세 번 울리고 아버지가 받았다.


"윌리엄?"


놀란 목소리였다. 당연했다. 3년 만이었으니까.


"네."


"무슨 일이야?"


"도움이 필요해요."


침묵이 흘렀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해봐."


"친구 아내가 아파요. 원인을 모르겠대요. 최고 수준의 병원이 필요해요. 신경과, 희귀질환 전문."


"어디야?"


"보스턴."


"알았어. 내가 알아볼게."


"고마워요."


그 말이 나왔다. 평생 하지 않았던 말. 아버지에게 고맙다고 한 적이 있었나. 기억나지 않았다.


"윌리엄."


"네."


"그 친구... 중요한 사람이야?"


나는 잠시 멈췄다. 아버지는 늘 그랬다. 핵심을 찔렀다.


"네."


"알았어."


전화가 끊겼다.


---


이틀 후, 메이요 클리닉에서 연락이 왔다.


미네소타 본원의 신경과 전문팀이 원격 자문을 해주기로 했다. 필요하면 환자를 이송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현철에게 말했다.


"메이요 클리닉에서 자문해주기로 했어."


현철이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아버지한테 부탁했어."


"네 아버지한테? 너희 사이가..."


"그건 중요하지 않아."


현철이 나를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 거야?"


나는 웃었다. 평소처럼 가벼운 웃음을 지으려 했다.


"사업 파트너잖아. 네가 무너지면 나도 곤란해."


현철은 더 묻지 않았다.


"고마워, 윌리엄."


"고맙긴. 결과나 보자."


---


메이요 클리닉 팀의 자문이 시작됐다.


모든 검사 결과, 영상, 의무기록이 전송됐다. 화상 회의가 열렸다. 케임브리지 병원 의료진과 메이요 클리닉 전문가들이 함께 케이스를 검토했다.


현철도 참석했다. 그는 MIT 생명과학 박사였다. 의사는 아니었지만, 의학 논문을 읽을 수 있었고, 질문할 수 있었다.


"혈관 영역을 따르지 않는 뇌 병변이라면, 미토콘드리아 질환 가능성은요?"


현철이 물었다.


화면 속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려하고 있습니다. 특히 환자 연령과 증상 패턴을 보면... MELAS 가능성이 있습니다."


"MELAS?"


"Mitochondrial Encephalomyopathy, Lactic Acidosis, and Stroke-like episodes. 미토콘드리아 뇌근병증입니다."


현철의 얼굴이 굳었다.


"그게... 확실해요?"


"아직 확진은 아닙니다. 유전자 검사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몇 가지 단서가 있습니다."


"뭔데요?"


"젖산 수치가 높습니다. 뇌졸중 유사 발작인데 혈관 영역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환자 나이가 젊습니다. 이런 조합은... 미토콘드리아 질환을 시사합니다."


나는 옆에서 듣고 있었다. 의학 용어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현철의 표정은 읽을 수 있었다.


"치료법은요?"


현철이 물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현재로서는... 완치 방법이 없습니다. 증상 관리와 지지 치료가 주가 됩니다."


침묵이 흘렀다.


현철이 일어나 회의실을 나갔다. 나는 따라갔다.


복도에서 그를 찾았다. 그는 창가에 서 있었다.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현철."


"완치 방법이 없대."


"아직 확진도 안 됐어."


"맞을 거야. 다 맞아. 젖산, 뇌 병변 패턴, 나이. 전부."


현철이 돌아섰다. 눈이 젖어 있었다.


"내가 연구하는 게 뭔지 알아? 텔로미어야. 세포 노화야. 그런데 내 아내가 미토콘드리아 질환이래. 세포 에너지 대사 문제라고. 내 분야 바로 옆이야. 그런데 난 몰랐어. 수아가 아플 때까지 몰랐어."


"네 잘못이 아니야."


"그럼 누구 잘못이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내가 고칠게."


현철이 말했다.


"뭐?"


"치료법. 내가 찾을게. 없으면 만들게."


그의 눈이 달라졌다. 무너진 남자의 눈에서 결심한 남자의 눈으로.


"미토콘드리아... 세포 에너지... 내가 할 수 있어. 시간이 걸리겠지만, 할 수 있어."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미친 소리 같았다. 하지만 현철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도와줄게."


내가 말했다.


"뭐?"


"연구 자금. 장비. 인력. 필요한 거 말해. 내가 대줄게."


현철이 나를 바라보았다.


"왜?"


"사업이야. 미토콘드리아 질환 치료제 시장은 커. 성공하면 대박이야."


현철이 웃었다. 처음으로 웃었다.


"넌 변하지 않는구나. 뭐든 사업이야."


"그래. 뭐든 사업이야."


나도 웃었다.


---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왔다.


m.3243A>G 변이. MELAS의 가장 흔한 원인.


확진이었다.


수아가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병실 밖에 서 있었다. 문틈으로 들렸다.


"...평균 수명이 어떻게 돼요?"


수아의 목소리였다. 떨리고 있었다.


"환자마다 다릅니다. 증상 관리를 잘 하면..."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침묵이 흘렀다.


"40대 초반... 그 전후로 보통..."


나는 벽에 기대었다. 눈을 감았다.


40대 초반. 수아는 지금 서른이었다. 많아야 10년.


---


그날 밤, 현철이 물었다.


"수아 어머니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아?"


우리는 병원 카페테리아에 앉아 있었다. 커피가 식어가고 있었다.


"아니. 왜?"


"수아가 말한 적 있어.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다고. 원인 불명이었대."


"설마..."


"미토콘드리아 질환은 모계 유전이야."


현철이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수아 어머니도 같은 병이었을 거야. 그때는 진단을 못 받았겠지. 지금도 어려운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지수는..."


현철의 목소리가 떨렸다.


"지수도 검사해봐야 해. 모계 유전이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


병원을 나왔다. 밤공기가 차가웠다.


현철은 수아 곁에 남았다. 나는 아파트로 돌아가야 했다. 내일도 올 거였다. 모레도. 그 다음날도.


하지만 지금은 혼자 있고 싶었다.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걸었다. 보스턴의 밤거리. 사람들이 지나갔다. 웃고, 떠들고, 행복해 보였다.


10년. 많아야.


골목에 들어섰다. 아무도 없었다.


나는 벽에 기대어 섰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울었다.


소리 없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눈물이 멈추고, 나는 아파트로 돌아갔다. 얼굴을 씻었다. 거울을 봤다. 평소의 내가 거기 있었다.


내일 다시 병원에 갈 것이다. 커피를 가져갈 것이다. 현철의 어깨를 두드릴 것이다. "힘내. 방법 찾을 거야"라고 말할 것이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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