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칼릭스
칼릭스 본관 22층. 임원 회의실.
열두 명이 앉을 수 있는 긴 테이블이 방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었고, 검은 대리석 상판의 가장자리에는 은색 테두리가 둘러져 있었다. 천장의 조명이 표면에 반사되어 차갑게 빛났다.
우리는 테이블 끝에 마주 앉아 있었다. 나와 현철. 열 개의 빈 의자가 양옆으로 늘어서 있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창밖으로 저녁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왔다. 현철의 얼굴 절반이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다.
현철이 먼저 말을 꺼냈다. 테이블 위에 두꺼운 바인더를 놓으면서. 표지에는 빨간 글씨로 'CLASSIFIED'라고 찍혀 있었다.
"T-오가넬 프로젝트를 중단하기로 했다."
담담한 목소리였다. 마치 내일 날씨를 말하듯이.
"중단?"
"영구 봉인이야. 레시피, 실험 데이터, 배양 프로토콜. 전부. 내일 새벽에 서버에서 삭제하고, 물리 백업도 폐기한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30년을 함께 일하고, 이 회사를 함께 세운 사람. 수아의 남편이었던 사람.
"이유가 뭐야."
"위험해."
현철이 안경을 벗고 닦았다. 피곤한 동작이었다.
"T-오가넬이 뭘 하는지 다시 생각해 봐. 이놈은 활동 전위를 연료로 써. 숙주의 신경이 발화할 때 나오는 에너지를 포획해서 텔로미어를 수선하지. 그런데 문제는 이놈이 점점 효율적으로 진화한다는 거야. 스스로."
"진화?"
"에너지가 더 필요하면, 숙주의 신경을 더 강하게 발화시키도록 유도해. 세포 레벨에서 신경 전달 물질 분비를 조작하는 거야. 더 많은 자극을, 더 자주, 더 강하게. 그 피드백 루프가 임계점을 넘으면 —"
현철이 안경을 다시 쓰며 나를 보았다. 렌즈 너머의 눈이 어두웠다.
"신경계가 타버려."
"시뮬레이션 결과야? 실제 관측이야?"
"배양체에서 관측했어. 14개월째 배양체. 신경 세포 클러스터에서 에너지 수확률이 초기 대비 340% 증가했어. T-오가넬이 숙주 신경을 연료 농장으로 개조하고 있었던 거야."
침묵.
"그리고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
"윌리엄, 텔로미어를 무한 복구한다는 게 뭔 뜻인지 정말 모르는 거야? 세포가 영원히 분열한다는 뜻이야. 분열을 멈추지 않는 세포가 뭔지 알아?"
"..."
"암이야."
현철이 돌아서서 나를 보았다.
"영생과 암 사이의 경계가 분자 하나 차이야. T-오가넬의 텔로미어 수선 효소가 조금이라도 과잉 발현되면, 치료가 아니라 전신 종양을 심는 거야. 모든 세포에. 동시에."
"제어할 수 있잖아. 발현량을 조절하는 스위치를 —"
"만들었어. 세 번이나. 전부 실패했어."
현철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지친 사람의 목소리.
"그리고 아이러니한 걸 말해줄까. 이건 MELAS 치료용이었잖아. 결함 있는 미토콘드리아를 대체하려고 만든 거잖아. 그런데 T-오가넬 자체가 미토콘드리아보다 더 큰 에너지 의존성을 만들어. 병을 고치려다 더 무서운 병을 심는 거야."
"..."
"폭주하면 두 가지 시나리오야."
"신경계에서 에너지를 과잉 수확해서 뇌의 활동 전위가 고갈되면서 뇌사."
"텔로미어 과수선으로 세포 분열 제어 상실. 전신 장기 괴사."
"둘 다 발생 후 72시간 이내에 사망해."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30년을 함께 일하고, 이 회사를 함께 세운 사람인데, 이렇게 지쳐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해결할 수 없다고? 네가?"
현철이 나를 보았다. 며칠간 잠을 못 잔 사람의 눈이었다.
"나도 사람이야, 윌리엄. 내 능력에 한계가 있어."
침묵이 흘렀다.
창밖으로 저녁노을이 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하늘이었다. 현철이 말을 이었다.
***
"지수는."
내가 말했다. 목소리가 내 의도보다 낮게 나왔다.
"지수는 어쩌고."
안경을 닦던 현철의 손이 멈췄다.
"지수는 내 딸이야."
"알아. 네 딸이지. 그리고 수아의 딸이기도 하지."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순간 공기가 바뀌었다. 현철의 눈과 나의 눈이 서로를 향했다.
"수아 이야기는 하지 마."
"왜? 네가 불편해서?"
"윌리엄."
"지수는 MELAS야. 너도 알잖아. 모계 유전. 수아에게서 온 거야. 언제 발병할지 모르고, 발병하면 —"
"알아."
현철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잘렸다.
"내 딸이야. 내가 모를 것 같아?"
"그런데 치료법을 없앤다고? 유일한 가능성을 네 손으로 부순다고?"
"불완전한 치료법은 치료법이 아니야. 지수한테 T-오가넬을 쓰면 살 수도 있지만 죽을 수도 있어. 그 도박을 내 딸한테 할 수는 없어."
"그럼 뭘 할 건데? 기다려? 발병할 때까지? 발작이 올 때까지? 그때 가서 뭘 할 건데, 현철?"
***
현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등을 보였다.
"넌 왜 이렇게 매달리는 거야."
조용한 목소리였다.
"T-오가넬에. 지수에게. 왜."
그 질문에 답을 해야 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답은 없었다.
"책임이 있으니까."
현철이 돌아보지 않았다.
"30년간의 연구를. 수천억의 투자를. 그걸 하루아침에 날릴 수는 없으니까."
"돈 이야기를 하는 거야, 지금?"
현철이 돌아보았다. 처음으로 감정이 얼굴에 드러났다. 분노보다 깊은 것, 실망이었다.
"난 네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어."
"나도 네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어."
내 목소리가 변했다. 필요한 만큼.
"수아 때도 그랬잖아."
현철이 대답하지 않았다.
"수아가 아팠을 때. T-오가넬 초기 프로토타입이 있었잖아. 네가 만들었잖아. 쓸 수 있었잖아."
"그건 —"
"안 썼지."
현철의 얼굴이 하얘졌다.
"위험하다고. 아직 검증이 안 됐다고. 부작용을 모른다고. 그래서 안 썼지."
"그때는 정말로 안전하지 않았어. 동물 실험도 절반이 폐사했고."
"그리고 수아는 죽었어."
방 안이 얼어붙었다.
현철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윌리엄. 너 지금 내가 수아를 죽였다고 하는 거야?"
"아니."
한 발짝 다가가며 말했다.
"네가 수아를 살리지 않았다고 하는 거야."
현철의 눈에 물기가 번졌다.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다. 수아 장례식 때도 울었다. 하지만 그때와는 달랐다. 그때는 슬픔이었고, 지금은.
"넌 몰라."
현철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때 내가 얼마나 쓰고 싶었는지. 수아한테. 뭐라도 해보고 싶었는지. 하지만 실패하면? 부작용으로 더 고통받으면? 내 손으로 아내를 더 아프게 하면? 그 무게를 넌 몰라."
"알아."
한 발짝 더 다가갔다.
"나도 알아."
현철이 뒤로 물러서다가 등이 유리창에 닿았다.
"윌리엄, 너 수아를..."
"그건 중요하지 않아."
현철의 말을 잘랐다. 잘라야 했다.
"중요한 건 지수야. 지수가 발병하면 수아처럼 되는 거야. 똑같이. 네가 또 지켜보기만 할 거야?"
"T-오가넬은 답이 아니야!"
현철이 소리쳤다. 이 사람이 소리지르는 걸 들은 건 처음이었다.
"폭주하면 죽어! 치료가 아니라 시한폭탄을 심는 거야! 내 딸한테 그걸 시킬 수는 없어!"
"그럼 죽게 놔둬? 수아처럼?"
침묵이 길었다.
현철이 재킷을 집어들고 바인더를 팔 아래에 끼웠다.
"내일 새벽에 서버 삭제 진행한다. 물리 백업은 내가 직접 폐기할 거야."
문을 향해 걸었고, 멈추지 않았다.
"윌리엄."
문고리에 손을 얹으며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우리 사이에 수아 이야기는 다시 꺼내지 마."
문이 닫히고 발소리가 멀어졌다. 복도가 조용해졌다.
혼자 남았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노을이 완전히 지고 어둠이 바다 위로 내려오고 있었다.
내일 새벽까지 시간이 없었다.
***
이틀 후.
뉴스 알림이 떴다.
**[속보] 칼릭스 바이오 창립연구이사 은현철 박사, 교통사고로 사망**
기사는 짧았다. 자율주행 화물차, 원인 불명의 경로 이탈, 중앙선 침범, 정면충돌. 예상한 내용이었다.
손을 펴 보았다. 떨리지 않았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맑은 날이었고 구름 한 점 없었다.
수아.
속으로 불렀다. 그것으로 충분해야 했다.
이제 아무도 T-오가넬을 없앨 수 없다. 레시피는 내가 가지고 있고, 지수는 내가 지킨다. 네가 못 한 것을, 현철이 안 한 것을, 내가 한다.
***
장례식.
화장장 밖 주차장 끝 벤치에 앉아 있었다. 7월의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고, 등줄기로 땀이 흘렀다.
멀리서 건물 입구를 바라보았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연구원 몇 명, 회사 임원 몇 명. 그리고.
지수.
하얀 한복에 삼베 머리띠. 상복이 바람에 펄럭였고, 얼굴이 한복보다 더 하얬다.
옆에 준우가 서 있었다. 지수의 남편. 검은 양복에 상주 완장을 차고, 아내를 지키려는 남자의 자세로 서 있었다. 지수가 그의 팔을 잡고 기대고 있었다. 서 있을 힘이 없는 것처럼.
수아를 닮았다. 이마의 선, 턱의 각도,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의 결까지.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지켜야 한다.
***
한 시간이 지났다.
화장장 문이 열리고 준우가 먼저 나왔다. 두 손으로 납골함을 들고 있었다. 작은 함이었다.
준우의 걸음이 느리고 조심스러웠다. 지수가 뒤따라 나왔다. 눈이 부어 있었지만 지금은 울고 있지 않았다. 울 것이 다 마른 얼굴.
시선을 돌렸다.
차에 타고 떠났다. 나는 따라가지 않았지만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었다.
***
납골당.
한 시간 뒤에 도착했다. 그들이 떠난 뒤였다.
안으로 들어갔다. 조용했다. 대리석 벽과 형광등 불빛, 내 발소리만 울렸다.
3층 벽면에서 찾았다. 석관 앞에 사진과 국화꽃 한 다발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이름 석 자.
**은현철**
석관 유리 너머로 납골함이 보였다. 아까 준우가 들고 있던 하얀 도자기 함.
손을 들어 석관 위에 얹었다. 대리석이 차가웠다.
"현철아."
소리 내어 불렀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미안하다."
대답은 없었다. 당연히.
손을 거두려다 멈칫했다. 왜인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후회는 안 해. 네가 안 한 일을 내가 한다. 지수를 수아처럼 보내지 않는다."
손을 거두고 돌아서서 납골당을 나왔다. 뒤를 보지 않았다.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고, 낮의 열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할 일이 많았다. T-오가넬 레시피를 안전한 곳에 보관하고, 연구를 이어갈 팀을 꾸려야 했다. 시간이 얼마나 있을지 모른다.
지수가 발병하기 전에 끝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