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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비 리즈 Feb 10. 2023

솔직했더라면

1. 자장면을 10번쯤 먹지 않았을 텐데

점심시간이다.

일정이 있어 점심이 좀 늦어졌다. 배는 고프지만 집에 와서 간단하게 먹으려고 들어오다 낯익은 자장면집 간판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났다.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은 없지만 가리는 것이 있는 내겐 누군가를 만나 식사하는 것은 어려운 숙제를 푸는 것 같은 기분이다. 메뉴가 결정되어 있는 자리라면 그나마 괜찮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 내게 전화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한다. 누군가의 전화로 메뉴를 고르는 부담에서 제외될 수 있으니 얼마나 기막힌 타이밍인가.


더군다나 나는 특별하게 무엇을 먹고 싶어서 먹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뭐 먹을래?"라는 질문은 어려운 질문이다. 또 하나 최소한 세 번 이상 만나 편안하게 된 사이가 아니라면 밥 먹자는 제안은 정중히 거절하는 편리라 계획에 없던 식사 자리가 생기면 불편하다. MBTI 성격유형 중 ESTJ이지만 소수의 사람과의 관계를 선호하는 외향성이고 판단형(J) 답게 계획에 없던 일이 펑펑 터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갑작스러운 만남까지는 어느정도 대처 가능하지만 식사하는 자리는 피하는 편이다.


DJ DOC의 노래 'DOC와 춤을'의 노래 가사에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라는 가사를 처음 듣던 날 내 마음을 이렇게 잘 표현해 준 그룹이 있음에 열광하며 이 노래는 불러댔었다. 어려서 방학 때 외할아버지 댁에 가면 엄격한 외할아버지는 젓가락질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무섭게 화를 내셨기에 난 할아버지와 식사만 하면 체하기 일쑤였다. 외할아버지 앞에서 식사를 제대로 못하던 내게 따로 밥상을 챙겨주시던 이모 덕분에 굶는 일은 없었지만 어른들이나 낯선 사람들과의 식사는 긴장한 탓인지 젓가락질은 더 신경 쓰이는 일이 되었다.



내게는 자장면에 진심인 친구가 있다. 잘한다고 소문난 자장면집은 찾아다니며 먹어보고 자장면 맛있는 집 리스트를 만들 정도로 진심인. 그 친구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내게 물었다.


"자장면 좋아해?"

"응. 좋아해"


"다음에 만나면 자장면 먹으러 가자"

"응, 그러지 뭐"


두 번째 만난 날 난 이 친구의 손에 이끌려 자장면집에 갔다. 사실 난 자장면을 가끔 먹을 뿐 좋아하지 않는다. 어느 집으로 갈지 수많은 고민을 하고 왔다는 친구의 제안을 모른 채 할 수 없어 자장집에 가서 경계가 애매한 이 친구와 식사를 했다. 젓자락질 잘 못해도 밥만 잘 먹는 나는 예쁘게 먹으려는 것은 아니었으나 자장면의 가닥 수를 세며 먹는 것처럼 천천히 먹었다. 그날 난 음식을 먹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내 앞에 놓여있는 자장면의 양이 줄어들기보다는 퉁퉁 불어 양이 늘어나는 신비한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던 날이었다.


그 후에 그 친구와 한 달 동안 10번 정도 만날 일이 있었는데 점심이건 저녁이건 자장면을 먹자는 친구의 제안에 따랐다. 특별히 자장면을 싫어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을 뿐이고, 특별히 내가 먹고 싶다고 제안할 만한 음식이 없었기에 그냥 먹었다. 10번쯤 자장면을 먹고 더 이상 먹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친구와 같이 해야 하는 일이 끝났다. 일이 마무리되었다는 것보다 더 이상 자장면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그리고 친구에게 얘기했다.

"있잖아. 사실 나 자장면을 좋아하지 않아"


친구는 낮고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나도 한 달에 10번까지 먹을 정도로 진심은 아냐"


우리는 일하면서 이렇게 진지하게 말해본 적도 없지만, 그날처럼 눈물 흘리며 웃어본 적도 없었다.

서로에게 배려한다는 마음으로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우리는 지금은 너무나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안다. 솔직했더라면 자장면을 10번쯤 먹지 않았어도 되었다는 것을.




나는 내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지금은 연습 중이다.

불편하다고 이야기하는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이 불편함을 참다 몸에서 반응하는 상황까지 이르지 않도록 나를 잘 돌보고 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가슴에 담아두기보다는 입으로 내어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솔직한 나를 만나는 연습을 하며 가장 나다워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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