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내담자는 관계에서 어려움이 있고, 사람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다. 나 역시 관계에서 상처를 받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관계 속에서 혹은 사람에게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겐 어릴 적 같은 동네에서 자란 친구에게 시작된 하나의 트라우마가 존재한다. 그 트라우마는 아직도 불쑥불쑥 불청객처럼 찾아오곤 한다.
나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오빠와 남매라고만 알고 있지만 사실 내겐 다른 사람들에겐 존재하지 않는 언니가 있다. 어려서 모 분유회사의 달력 아기모델일 정도로 예쁜 아가였던 언니는 소아마비를 앓고 그 후로 세 번의 수술에도 불구하고 고열로 인해 지적능력과 신체적인 변형은 아무도 막을 수 없이 순식간에 찾아왔다. 그런 언니를 향한 동네 친구들의 놀림과 소아마비가 옮는 병이라며 같이 놀려고 하지 않는 친구들 속에서 나는 '신뢰'라는 단어를 마음속에 품지 못하고 관계에서 어려움을 경험하며 살아왔다.
어릴 적뿐이었을까? 아니었다. 그 이후에도 작은 일에서 큰 일까지 끊임없이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 동안에도 내 인간관계는 위축되고 경계하고 불안해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등의 여러 가지 모습으로 그 모습들은 언제 어디서나 나와 생활하고 있었다.
상담 공부를 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나 스스로가 치유되는 시간은 내가 지나 온 2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도 가끔은 관계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라는 불청객이 찾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그때마다 위축되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본다. 하지만 내가 두려워하는 불청객이 찾아옴에도 불구하고 난 사람들 속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나뿐만 아니라 관계에서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는 내담자들도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 막막하고 두렵다고 말했지만 다시 사람 속으로 뛰어 들어가 치유받기도 하고 아픔을 경험하기도 한다. 다시는 사람들 속에서 부딪히며 살아가고 싶지 않다고 절규하며 이야기했던 내담자도 관계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다시 뛰쳐나오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그리고 이제는 단단해지고 유연해진 나만의 관계 맺는 법을 만들어가고 견고하게 자신만의 경험을 축적해 간다.
사람에게 상처받고 다시 사람에게로... 다시는 맺지 못할 것 같던 관계도 만들어가고 사람과 아픔과 기쁨을 나누고 사람들에게 위로받고 치료받는다. 때론 나에게 아픔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안아주면서 우리는 그렇게 인생이라는 과정을 살아가고 있다. 부족하다 할지라도 나누며 최선을 다해 위로하고 감싸가면서 그렇게 나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결국... 사람이 답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