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쎄하다."

가끔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by 아를밤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마음 어딘가가 먼저 반응한다.

말은 부드럽지만 묘하게 피로하고,

대화를 마치고 나면 이유 없이 에너지가 소모되어 있다.

그리고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은 잔여감이 오래 남는다.


처음엔 내가 그사람을 단순히 싫어해서라고 생각했다.

이해하려 들면 이해 못할 사람은 없다고 믿어 왔으니까.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고, 이해받지 못한 상처가 있을거라고 여겨왔으니까.

유독 그 사람에게만 그게 안 되는건,

내가 그사람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래서 한 번 더 이해해보려 했고,

한 번 더 맞춰보려 했고,

사람을 미워하는건 내 모자람때문이라고 여겼다.


저렇게 중심에 서 있어야 안심이 되는 사람이겠지,

저렇게 자신을 강조해야 존재를 확인받는 사람이겠지.

그들의 결핍을 헤아리면 내가 조금 더 넓어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관계는 이해만으로 유지되지 않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대화를 자신의 서사로 끌고 갔고

타인의 말은 듣는 듯했지만, 거기엔 공감도 이해도 없었다.

나는 점점 더 많이 설명해야 했고, 더 많이 맞춰야 했고, 더 많이 양보해야 했다.

그 관계 속에서 나는 서서히 소모되고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이해는 가능하지만, 소모까지 감당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누군가의 성향을 고치려 애쓰는 일은 내 몫이 아니라는 것을.


완벽한 이해가 모든 관계의 답은 아니었다.

때로는 적당한 경계가 필요했고,

조금 떨어진 거리가 서로를 덜 상처 입히는 방법이 되기도 했다.

그러려니 하기.


‘쎄하다’는 감각은 누군가를 배척하라는 신호가 아니라,

내 에너지를 어디까지 허락할지 묻는 질문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나는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적당한 선을 긋는다.

냉정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내일도 출근하면 만나야할 쎄한 너야,

너의 쎄함은 더이상 내게 스트레스가 되지 않아.

덕분에 그러려니를 배웠고,

나를 지키는 법을 알게 되었으니.




"사유 너머, 이수의 진짜 삶이 이곳에서 이어집니다. 시린 겨울을 지나 마주할 따뜻한 온기를 함께 찾아주시겠습니까?"

[마지막 계절이 지나 당신이 있었다] 첫 회부터 정주행하기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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