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을 간지럽히는 건 평소의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아니었다. 콧속을 부드럽게 감싸는 은은한 장미 향기, 그리고 피부에 닿는 촉감은 거친 면 이불이 아닌 60수 실크의 매끄러움이었다. 강지윤은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 올렸다.
“여기가… 어디야?”
천장에는 고가의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은하수처럼 박혀 있었고, 사방은 온통 화이트 톤의 대리석이었다. 분명 어젯밤, 유통기한이 간당간당한 삼각김밥을 씹으며 낡은 태블릿으로 공무원시험 기출문제를 풀다 잠들었을 터였다. 당황한 지윤이 상체를 일으키려던 찰나, 등 뒤에서 서늘한 기운과 함께 숨이 멎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누구세요? 당신… 어떻게 들어왔어!”
지윤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TV만 켜면 나오던 ‘국민 가수’ 세린이 샤워 가운 차림으로 서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가 경악과 공포로 물들어 있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저도 모르겠어요.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여기가….”
지윤이 변명을 위해 손을 뻗자, 세린은 뒷걸음질 치며 화장대 위에 놓인 사설 경비업체의 비상벨을 눌렀다.
“오지 마! 당장 나가!”
세린의 떨리는 입술이 무언가 주문을 외우듯 달싹였다. 사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이 능력, ‘세이렌’의 힘을 사용해 침입자를 제압하려 했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 그녀는 멈칫했다. 지금 여기서 이 자를 내 목소리로 굳게 만든다면, 곧 들이닥칠 경비원들에게 내 정체를 들키게 된다. 10년 넘게 철저히 숨겨온 ‘미등록 A.V.M’이라는 낙인을 겨우 이런 좀도둑 같은 놈 때문에 드러낼 순 없었다.
결국 세린은 능력을 억누른 채 악을 썼다. 지윤은 영문도 모른 채 몰려오는 경비원들에게 제압당했다.
“자, 강지윤 씨. 앞뒤가 안 맞잖아. 본인 말로는 동작구 옥탑방에서 잤는데, 눈을 뜨니 한남동 펜트하우스였다?”
용산경찰서 취조실. 쉰내가 풀풀 나는 형사가 담배 대신 사탕을 씹으며 지윤을 쏘아붙였다. 지윤은 수갑을 찬 손을 덜덜 떨며 대답했다.
“정말입니다, 형사님. 저 전과도 없고요, 세린 씨 팬도 아니에요. 그냥 자고 일어난 것뿐인데….”
“팬도 아닌 놈이 보안업체 서버까지 뚫고 그 난공불락인 집 안방까지 들어가? 너 인마, 공범 누구야? 기술자 썼지?”
형사는 지윤의 말을 믿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연예인 스토킹 범죄 중에서도 질이 아주 나쁜 가택 침입 현행범. 조사는 밤새도록 이어졌고, 지윤은 극도의 정신적 피로감에 시달렸다.
새벽 4시경, 형사는 조서를 정리하러 나갔고 지윤은 홀로 유치장 구석에 던져졌다. 딱딱한 바닥에 눕자마자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제발, 이 악몽에서 깨어나게 해 주세요. 내 좁고 지저분한 방이어도 좋으니까 제발….’
지윤의 간절한 염원이 무의식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순간, 유치장 안의 공기가 기묘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아지랑이 같은 투명한 일렁임이 지윤의 몸을 감쌌고, 찰나의 순간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지윤의 형체가 안개처럼 흩어졌다.
잠시 후 돌아온 형사는 들고 있던 커피 종이컵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굳게 잠긴 철창 안, 지윤이 누워 있던 자리에는 그가 입고 있던 낡은 후드티 조각 하나 남지 않은 채 텅 비어 있었다.
오전 8시, 과천에 위치한 국가 이 능력 관리국(Bureau of AVM Management). 관리국 산하 특별관리팀 팀장 서하진은 경찰청으로부터 전송된 긴급 보고서와 CCTV 영상을 확인하고 있었다. 영상 속 유치장의 지윤은 잠드는 순간 미세한 푸른빛의 일렁이는 파동과 함께 증발하듯 사라졌다.
“팀장님, 분석 결과 나왔습니다. 연출이나 영상 조작은 없습니다. 이건 전형적인 ‘공간계’ 전이 현상입니다.”
부하 요원의 보고에 하진의 미간이 좁아졌다. 공간계 이 능력. A.V.M 중에서도 만 명당 한 명꼴로 나타나는 희귀 능력이자, 국가 안보를 뒤흔들 수 있는 최상위 위험군이다.
“단순한 이동이 아니야. CCTV 프레임 사이의 왜곡 정도를 봐. 좌표를 설정하고 이동하는 게 아니라, 공간 자체를 찢고 넘어가고 있어. 이건 등급 측정이 안 되는 잠재력일 가능성이 높아.”
하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홀스터에 권총을 챙겼다.
“경찰 쪽에는 입단속 시켜. 이 사실이 이클립스(반정부 조직) 귀에 들어가면 골치 아파지니까. 그리고 강지윤의 주거지로 즉시 출동한다.”
하진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공간 이동 능력자는 재앙이다. 그가 선량한 시민이든 아니든, 관리국의 입장에서는 가장 먼저 확보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제거’ 해야 할 대상이었다.
같은 시각, 세린의 펜트하우스.
세린은 거실 한복판에 멍하니 앉아 지윤이 나타났던 침대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경비업체에서 보내온 ‘침입자 소지품 리스트’가 들려 있었다. 이름 강지윤.
“... 공간 이동이었어.”
세린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어젯밤 지윤과 눈이 마주쳤을 때 느꼈던 그 기묘한 파동. 자신과 같은 부류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보다 훨씬 더 거칠고 강력한, 그리고 순수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세린은 자신의 목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수만 명의 관객 앞에서 노래하지만, 단 한 번도 진심을 담은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삶. 관리국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아래에서 숨죽여 살던 그녀에게, 예고 없이 공간을 찢고 들어온 그 남자는 거대한 파문이었다.
“강지윤… 당신은 내가 찾던 열쇠일까, 아니면 나를 무너뜨릴 재앙일까.”
그녀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사람들은 환호하지만, 사실 그녀는 목소리 하나로 수천 명의 심장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괴물이었다. 관리국에 등록된 평범한 AVM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파괴력. 그래서 그녀는 더욱 철저히 자신을 숨겨왔다.
"강지윤... 당신도 나처럼 숨기고 살았던 거야, 아니면 이제야 터져 나온 거야?"
뉴스에서는 용산경찰서 유치장에서 피의자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긴급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세린은 관리국이 움직이기 시작했겠다는 생각을 하며 붉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수많은 이 능력자 중에서 무의식 중에 공간을 비틀어버린 남자는 그가 처음이었다. 그녀는 이 기묘한 인연이 자신을 이 지독한 고독에서 꺼내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녀의 눈에는 호기심과 경계심이 동시에 서렸다. 그녀는 이제 이 위험한 게임에 직접 참여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