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억, 헉!”
강지윤은 스프링 튀어나오는 소리가 비명처럼 들리는 낡은 매트리스 위에서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폐부 깊숙이 박히는 공기는 차갑고 눅눅했다. 한남동의 장미 향도, 유치장의 소독약 냄새도 아니었다. 낡은 벽지에 밴 찌개 냄새와 먼지 냄새.
지윤은 떨리는 손으로 제 뺨을 세게 내리쳤다.
찰싹!
얼얼한 통증이 밀려왔다. 꿈이 아니었다. 지윤은 허겁지겁 주변을 살폈다. 책상 위에는 어제 먹다 남은 컵라면 용기가 그대로였고, 발치에는 공무원 시험 교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그의 손목에 달려 있었다. 은색으로 번뜩이는 경찰용 수갑. 유치장 쇠창살에 긁힌 자국까지 선명한 그것이 지윤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었다.
“진짜였어…. 진짜로 온 거야.”
지윤은 멍하니 제 손을 바라보았다.
공간이동. 영화나 웹툰에서나 보던 그 능력이 자신에게 생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평생을 평범하게, 아니 평범함보다 조금 모자라게 살아온 그였다. 그런 그에게 국가가 혈안이 되어 찾는다는 ‘공간계 이 능력’이라니..
지윤은 우선 이 거추장스러운 수갑부터 벗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열쇠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때, 머릿속에 엉뚱한 생각이 스쳤다.
‘잠들어서 이동할 수 있다면… 수갑만 두고 내 몸만 빠져나갈 수는 없을까?’
지윤은 침대에 다시 누워 눈을 질끈 감았다. ‘수갑은 여기 두고 몸만 이동하자. 몸만 이동하자.’ 주문을 외우듯 되뇌었지만, 멀쩡한 정신에 잠이 올 리 없었다. 억지로 잠을 청하려다 보니 오히려 머리만 맑아졌다.
한 시간쯤 뒤, 지윤은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엔 다른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그는 책상 위에 놓인 낡은 볼펜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가라. 이동해. 저쪽 벽으로!”
손가락을 튕겨보기도 하고, 기(氣)를 모으듯 아랫배에 힘을 주기도 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집중했지만 볼펜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역시 잠들어야만 되는 건가….”
지윤은 어설프게나마 자신의 ‘매뉴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1. 간절히 원하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
2. 반드시 ‘ 잠’에 빠져야 한다.
3. 물건만 보내는 건 안 되고, 자신의 몸 주변 공간 전체가 이동한다.
그는 확인을 위해 다시 한번 실험해 보기로 했다. 이번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방 안의 화장실을 목표로 삼았다. 지윤은 책상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수면 유도제를 꺼냈다. 공무원시험 스트레스로 잠 못 이루던 밤을 위해 사두었던 것이었다. 약 두 알을 입에 털어 넣은 지윤이 침대에 누워 중얼거렸다.
“화장실… 딱 2미터 앞 화장실이다….”
같은 시각, 동작구 일대는 검은색 밴 차량 세 대가 소리 없이 포위망을 좁히고 있었다. 서하진은 차량 내부 모니터에 뜨는 열 감지 신호와 이 능력 잔류 파동을 체크했다.
“팀장님, 신호가 잡힙니다. 타깃의 주거지 점유 확인됐습니다.”
하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권총의 슬라이드를 당겼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지윤의 신상 정보가 스쳐 지나갔다. 특별한 전과 없음. 평범한 가정환경. 하지만 그런 ‘평범한’ 자들이 갑자기 힘을 가졌을 때 가장 위험해지는 법이다. 힘의 무게를 모르기 때문이다.
“주변 100미터 이내 일반인 접근 차단해. 공간계는 놓치면 끝이다. 전이 징후가 보이면 즉시 내 능력을 방출할 테니, 너희들은 물리적으로 제압해.”
차 문이 열리고, 하진은 차가운 아침 공기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소리 없이 단호했다.
“으음….”
약 기운이 돌기 시작했는지 지윤의 정신이 몽롱해졌다. 의식이 흐릿해지는 찰나, 지윤은 강한 이질감을 느꼈다. 몸이 수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부드러운 압력이 전신을 감쌌다.
‘성공인가?’
눈을 뜨자마자 지윤은 환호하려 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것은 환호가 아닌 비명이었다.
“악! 차가워!”
지윤이 도착한 곳은 화장실 앞이 아니었다. 화장실 ‘천장’ 부근의 공간이었다. 중력의 법칙에 따라 지윤은 그대로 수직 하강했고, 하필이면 물이 가득 찬 변기 위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처박혔다.
“아이고… 엉덩이야…. 위치 조절이 왜 이래….”
물에 젖은 바지를 부여잡고 끙끙대며 화장실 밖으로 기어 나온 지윤. 그가 머리에 튄 물을 털며 고개를 든 순간, 그의 방 문이 거칠게 부서져 나갔다.
쾅—!
자욱한 먼지 사이로 검은 총구가 지윤의 미간을 정확히 겨누었다. 그리고 그 총구 너머로, 얼음처럼 차가운 눈동자의 서하진이 서 있었다.
“강지윤 씨. 실험은 그만하시지.”
지윤은 변기 물이 뚝뚝 떨어지는 바지를 입은 채 얼어붙었다. 하진이 방 안으로 한 걸음 내딛자, 지윤은 숨이 턱 막히는 압박감을 느꼈다. 방금까지 느껴지던 몸 안의 기묘한 흐름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느낌이었다.
“당신… 누구예요? 경찰?”
“국가 이 능력 관리국, 서하진팀장이다.”
하진은 엉망진창인 방 안과 젖은 지윤의 몰골을 훑어보았다. 생각보다 훨씬 어수룩하고 보잘것없는 모습에 하진의 눈썹이 살짝 꿈 틀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방심하지 않고 지윤의 목에 채울 검은색 합금 초커를 꺼냈다.
“지금부터 당신의 신병은 국가가 확보한다. 거부권은 없다.”
지윤은 뒷걸음질 치다 벽에 부딪혔다. 방금 전 겪은 공간이동의 짜릿함은 온데간데없고, 이제 막 알게 된 자신의 능력이 거대한 족쇄가 되어 돌아왔음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