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낙인과 감시자

by 고지윤



지윤의 좁은 자취방 안에는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부서진 문틈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먼지와 함께 부유하고 있었지만, 지윤에게는 그 빛조차 창살처럼 느껴졌다. 미간에 닿은 총구의 차가운 촉각보다 더 무서운 건, 눈앞에 선 여자가 내뿜는 압도적인 기운이었다.

“저기… 일단 총부터 치우고 말씀하시면 안 될까요? 제가 지금 무기를 든 것도 아니고, 바지는 보시다시피 이 모양이라….”

지윤이 젖은 바지를 가리키며 웅얼거렸지만, 하진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눈동자는 더욱 깊게 지윤을 파고들었다.

“강지윤. 24세. 미등록 A.V.M. 등급 미측정 공간계.”

하진이 읊조리는 정보들은 지윤의 평범했던 삶을 갈가리 찢어발기는 선고와 같았다. 그녀가 한 걸음 더 다가오자, 지윤은 가슴이 짓눌리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겁을 먹어서 생기는 심리적 압박이 아니었다. 지윤의 몸 안에서 해방감을 맛보았던 기묘한 파동이, 그녀가 다가올수록 마치 쇠사슬에 묶이듯 억눌리고 있었다. 이것이 관리국 팀장, 서하진의 능력인 ‘범위형 무효화’였다.

“그거, 채우지 마요. 난 범죄자가 아니라고요.”

하진의 손에 들린 검은색 합금 초커를 보며 지윤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하진의 대답은 차가웠다.

“A.V.M에게 힘은 곧 책임이고, 통제되지 않는 힘은 범죄다. 네가 방금 한 ‘실험’이 민가 한복판이 아니라 휴전선이나 국가 기밀 시설 안이었다면, 넌 지금 이 자리에서 사살됐을 거야.”

하진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지윤의 멱살을 잡고 그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축축하게 젖은 지윤의 티셔츠 너머로 그녀의 서늘한 손길이 닿았다. 딸깍. 기계적인 소음과 함께 지윤의 목에 차가운 금속 고리가 감겼다.

“윽…!”

초커가 채워지는 순간, 지윤은 머릿속이 하얘지는 전기 자극을 느꼈다. 뇌파를 동조시킨다는 안내음이 들리고, 초커 중앙의 작은 램프가 붉은빛을 내며 점멸했다. 이제 그는 국가의 레이더망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관리 대상’이 되었다.

관리국으로 압송되어 하루 동안의 정밀 검사와 등급 판정(물론 지윤은 등급분류 불가 판정을 받았다)을 거친 뒤, 지윤은 다시 자신의 옥탑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예전의 평화로운 자취방이 아니었다.

부서진 문은 최첨단 보안 장치가 달린 강철 문으로 교체되어 있었고, 방구석구석에는 눈에 띄지 않는 센서들이 부착되었다. 지윤은 침대에 털썩 주저앉아 목의 초커를 만지작거렸다. 떼어내려 하면 고압 전류가 흐른다는 경고를 들은 뒤였다.

그때, 벽 너머 옆방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윤의 옥탑방은 옆방과 벽 하나를 두고 맞붙어 있는 구조였다.

“아, 거긴 내가 둘 테니까 짐 내려놔요.”

익숙한 목소리. 지윤은 홀린 듯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복도에는 이삿짐 상자들이 쌓여 있었고, 간편한 티셔츠 차림으로 머리를 묶은 서하진이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팀장님? 당신이 왜 여기 있어요?”

하진은 땀을 닦으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말했지. 네 신병은 국가가 확보했다고. 24시간 밀착 감시다. 공간계 능력자는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가 네 곁에 있는 거지.”

“아니, 그래도 이건 인권 침해 아니에요? 옆집이라니!”

“인권을 챙기고 싶으면 능력을 버리든가. 하지만 넌 못 버리지. 그러니까 받아들여. 오늘부터 네가 잠드는 시간, 일어나는 시간, 심지어 화장실에 가는 횟수까지 내가 다 체크할 거니까.”

하진은 옆집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지윤은 멍하니 서서 자신의 신세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생각하다가 처량해졌다. 공무원 시험 준비는커녕, 이제는 숨 쉬는 것조차 감시당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날 밤, 지윤은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초커의 미세한 진동음이 귓가에서 윙윙거리는 것 같았고, 벽 너머에 자신을 감시하는 무시무시한 여자가 있다는 사실이 신경 쓰였다.

지윤은 옥상 난간으로 나갔다. 밤공기는 차가웠고 서울의 야경은 여전히 화려했다. 그때, 옥상 한구석에서 담배 대신 막대 사탕을 물고 야경을 보는 하진이 보였다. 제복을 벗은 그녀는 생각보다 작고 가냘파 보였지만, 그 분위기만큼은 여전히 날카로운 칼날 같았다.

“잠이 안 오나 보지?”

하진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었다.

“이런 걸 목에 차고 잠이 오겠어요? … 저기, 서 팀장님.”

“말해.”

“저는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요. 이번 시험 합격해서 부모님한테 용돈도 드리고, 그냥 남들처럼 연애도 하고… 근데 왜 하필 나예요?”

하진은 잠시 침묵하다가 물고 있던 사탕을 와작 깨물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지윤을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평소의 차가움 대신, 아주 희미한 연민이 스쳐 지나갔다.

“A.V.M은 선택하는 게 아니야. 선택당하는 거지. 재앙일지 축복일지는 네가 정하는 게 아니고, 네 능력이 정하는 거다. 넌 지금 그 재앙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단계고.”

“그걸 배우면… 다시 평범해질 수 있나요?”

하진은 대답 대신 지윤의 목에 걸린 초커를 가리켰다.

“그게 초록색으로 변할 때까진, 꿈도 꾸지 마.”

두 사람 사이에 다시 정적이 흘렀다. 멀리 한남동 펜트하우스의 화려한 불빛이 보였다. 그곳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또 다른 여자의 존재는 꿈에도 모른 채, 지윤은 자신을 가둔 감시자와 함께 길고 긴 첫날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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