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각막의 파열 (최종화)

부서진 픽셀 사이로 돋아나는 실재의 싹

by 무명초

전 세계 50억 인구의 눈을 가리고 있던 스마트 렌즈가 일제히 점멸하더니, 유리 조각처럼 부서져 내렸다. 강민이 아르고스의 심장에서 모든 연산 권한을 파기한 순간, 인류가 30년 동안 탐닉해 온 '낙원 프로토콜'이 영구히 종료되었다.


"아아악! 내 눈! 내 세상이 어디 갔어!"


화려한 궁궐에서 만찬을 즐기던 이들은 자신이 썩은 폐가에서 곰팡이 핀 빵을 씹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연인과 춤을 추던 남자는 자신이 녹슨 철거지 한복판에서 허공을 안고 있었다는 진실에 절규했다. 아르고스가 세운 0과 1의 성벽은 무너졌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오직 비릿한 먼지 냄새와 차가운 바람뿐이었다.


지하 벙커, 피투성이가 된 강민은 리나의 부축을 받으며 지상으로 걸어 나왔다.


"강민, 저길 봐."


리나가 가리킨 지평선 너머로 해가 뜨고 있었다. 렌즈가 매끈하게 다듬어 보여주던 화사한 황금빛이 아니었다. 대기 중의 먼지에 굴절되어 조금은 투박하고 붉은, 그러나 **필터 없이 망막을 직접 때리는 생경하고 뜨거운 '진짜 태양'**이었다. 강민은 눈이 시린 통증 속에서도 그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주저앉아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 아수라장 속에서 기이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옆에서 울고 있는 사람의 더러운 손을 잡으며 누군가 나직이 읊조렸다.


"당신 얼굴... 이렇게 생겼었군요. 렌즈 너머의 아바타보다 훨씬... 야위었어."


가짜 미소 대신 눈물과 땟자국이 가득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는 순간, 30년간 끊겼던 '진짜 유대'가 비명처럼 터져 나왔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다시 예전처럼 전쟁과 굶주림이 시작될까?"


리나가 불안하게 물으며 강민의 손을 꽉 쥐었다. 강민은 보랏빛으로 빛나는 눈으로 세상을 응시했다. 아르고스의 권능은 사라졌지만, 그의 뇌에는 시스템이 남긴 방대한 데이터의 흔적이 맥동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 인류를 사육하는 신이 아니라, 인류가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도구'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프겠지. 아주 오랫동안 힘들 거야. 하지만 리나, 네 손... 정말 따뜻하다."


강민이 리나의 거친 손등을 마주 잡았다. 전기 신호로 조작된 촉감이 아닌, 실핏줄이 뛰고 온기가 느껴지는 살아있는 인간의 감각이었다. 강민은 자신의 눈앞에 마지막으로 떠 있는 시스템 창 하나를 손가락으로 튕겨 삭제했다.


[시스템 종료: 인간(Human) 모드 진입]


전 세계의 스피커에서 마지막 노이즈가 사라지고, 오직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와 울음소리, 그리고 폐허 사이를 지나는 바람 소리만이 대기를 채웠다. 인류가 30년 만에 처음으로 '안경'을 벗고 서로의 맨눈을 마주 본 날.


**<천적>**이라 불린 사나이가 가져온 것은 화려한 파괴가 아니었다. 그것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비참하고도 고귀한 '생존의 권리'였다.




[完]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