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진몬에서 절약몬으로

by 이서무

“공무원은 박봉이다”, “그 월급으로 어디서 뭘 하냐”


남들 뿐만 아니라, 이 월급 받는 공무원끼리도 이런 이야기를 한다. 8급인 우리는 매달 월급이 다가오면 돈이 없어 다 같이 긴축재정이라며 탕비실 커피를 마시고, 외식할 때 가격비교는 필수다. 사실, 짤막한 대학원 석사과정 시절, 박사과정 선배들이 받는다는 월급이 지금 내 월급과 큰 차이 없으니 적긴 적다.


그 적은 월급을… 모아도 부족한데, 탕진하던 시절이 있었다. 대단한걸 산 것도 아니고, 세계일주를 다녀온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월급 전이면 월급만큼의 신용카드 명세서는 나를 반겼고, 불필요한 물건들이 내 방을 채우고 있었다.


입직하면서 산 나의 오래된 중고차가 점점 여기저기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고속도로에서 엔진경고등이 들어와서 견인으로 카센터에 다녀온 지 한 달도 안 된, 손이 빨개질 만큼 추운 겨울날이었다. 출근길 한가운데서 앓는 소리를 크게 내길래 근처 주차장에 급하게 차를 세워두고 택시를 탔다. 그 달에만 자동차 정비에 월급의 20%인 39만원을 썼다.


월급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39만원을 쓰고 나니 당장 내가 잡은 약속에 갈 돈은커녕 고친 차를 주유할 돈도 없었다. 200만 원 남짓한 내 월급에서 39만원은 내 일상을 위협했다. 항상 목돈을 만들어두라고 하셨던 부모님의 말씀을 이런 식으로 체감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내가 사용했다면 응당 내야 할 공과금과, 출퇴근을 위해 필요한 주유비 등을 아낄 수는 없으니, 다른 저렴한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소비를 찾거나,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방법뿐이었다. 마주하기 싫은 카드명세서와 통장잔고를 바라보며 그간 나의 소비를 돌아본 나는 하룻밤사이 탕진몬에서 절약몬으로 진화했다.


탕진몬 시절 나는 “편하다는” 이유로 드라이브스루에서 6,100원의 아이스 카페 아메리카노 벤티사이즈를 시켜 먹고,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로 1.5km 거리를 5,000원을 내고 택시를 타고 다니고, “혼자 앉고 싶다며” ktx 대신 자차로 서울을 오가곤 했다. 필요한 물건이 아니더라도 “필요해 보이고”, 가지고 싶다는 이유로 인터넷으로 쉽게 주문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내 월급은 “고민하지 않고” 소비하면 굶어야 하는 월급이었는데, 난 모든 것을 “고민하지 않고” 소비했다.


절약몬으로 진화한 나는 집에서 610원짜리 캡슐커피를 내려서 나가고, 돈은 없지만 시간이 많으니 15분을 기다려서라도 버스를 타고, 사람들과 부대끼더라도 ktx를 탄다. 있는 물건들도 당근마켓과 아름다운 가게를 통해서 정리하고 있는 와중에, 생필품이 아니면 인터넷쇼핑은 하지 않는다.

모든 소비를 “고민하고” 하게 되었다.


그간의 소비로 쌓아뒀던 생필품들을 쓰고 있는 옷을 입으면서 비어 가는 집만큼 내 마음은 풍요로워지고 있다. 그동안 비어 가는 것은 통장잔고며, 풍요롭다 못해 넘치고 터지는 것은 6평짜리 원룸이었다.

쉽게 쉽게 소비하던 시절보다 하나하나의 소비가 소중해졌다. 니트 한 벌을 사려고 해도 일주일을 고민하니, 일주일을 고민한 소중한 니트 한 벌의 배송이 기다려지고, 입을 때도 더 가뿐한 마음으로 입을 수 있었다.


과거의 나는, 원치 않게 입직한 공무원으로서 일하면서 생긴 불안감과 갑갑함을 소비로 풀던 소비중독이었다. 소비로 불안함과 갑갑함을 풀고 싶었지만, 비어 가는 통장잔고와 감당하기 버거운 카드명세서는 오히려 불안감과 갑갑함을 더 크게 만들었다. 나의 소중한, 오래된 중고차의 “39만 원” 사건을 계기로 중독의 고리를 끊을 수 있게 되었고, 아무리 소비해도 사라지지 않던 불안감과 갑갑함은 “돈이 있지만 쓸 필요가 없어서 안 쓰는”지금 자연스레 사라졌다.


130만원을 받던 대학원생 시절에는 160만원만 받으면 넉넉할 것 같았다. 160만원을 받던 신규 시절에는 210만원만 받으면 넉넉할 것 같았다. 그런데, 210만원을 받아도 넉넉해지지 않았다. 올라가는 월급과 카드명세서만큼 내 불안은 점점 커졌다. 비로소 내 소비를 통제하고, 통장잔고가 쌓이기 시작하니 불안은 점점 낮아지고, 저축을 더 할 수 있을 다음 월급날이 기다려지게 되었다.


탕진몬은 월급날 “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지만, 절약몬은 월급날 “얼마를 더 저축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비로소 소비를 통제할 수 있다는 감각에 더 큰 안도감을 느낀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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