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을 자퇴하고 공무원이 되었다

by 이서무

선배 - “요즘 OO직업이 돈을 잘 번다는데”

나 - “맞아요.”

선배 - “그런데, 만약에 내가 OO직업이라면 내 자식이 내가 OO직업이라고 친구들에게 소개할 수 있을까?”

나 - “사실 전 잘 모르겠어요. 모든 직업이 귀한 것도 맞고, 귀천이 없는 것도 맞는데….”


그러니까, 당시에는 매우 힙하고 쿨한 20대 MZ공무원을 추종하면서도, 정작 “사무직이 아닌 OO직업”에 대해서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학교 다닐 때부터, 나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던 자의식 “풍부” 학생은 본인이 인류를 바꿀 발견을 할 대과학자가 되겠다며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공부했다(다행히 메타인지는 있었는지, 공부도 안 하고 꿈만 꾸고 있지는 않았다). 초등학생 때는 중학교 내용을, 중학생 때는 고등학교 내용을… 선행학습 버프(?)로 진학한 특수목적고등학교에서는 학교 커리큘럼에 따라 대학교 내용까지….


그렇게 모범생 커리큘럼으로 대학교에 진학했다. “학생이 매일 공부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대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알았다. 시험기간이든 시험기간이 아니든 매일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매일 공부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 치고는, 대학교 학벌보다 더 좋은 대학원에 가기 위해 잠깐의 자유를 누리고는 다시 공부했고, 대학원 진학도 휴학 없이 제법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대학교까지 총 16년간 성적표라는 도파민을 주기적으로 손에 쥘 수 있는 삶에서 벗어나,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대학원 연구실 생활에 전혀 익숙해지지 못했다. “힘들면 집으로 와라”는 부모님 말씀에, 딱 36시간 고민 후, 자퇴원을 던지고 짐을 쌌다. 자퇴하지 않으면 연구실에 불이라도 지르거나(연구 결과가 단시간에 안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지, 연구실 문제는 아니었음은 명확히 해두겠다), 내 마음이 재투성이가 되거나. 둘 중 하나일 것만 같았다.


‘취업하면 되지’라며 나온 사회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대학원 진학만을 바라보며 쌓아온 학점과 연구실 인턴십 등은 현실판 취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해본 게 공부라고, 취준생의 불안감을 버티지 못하고 공무원 시험을 보게 되었다. 쉽게 붙을 수 있을 것 같았던 시험은 내가 얕봤던 만큼의 점수 차이로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했고, 세 번의 시도 만에 “합격” 팝업을 볼 수 있었다.


입직 후, 내 학벌을 모르는 직원분들과 대화 중에 “누가 명문대를 나왔는데~ 왜 공무원 하고 있대?”라는 투의 말을 들으면 “겉으로는” 공감하는 척하면서도, 내 마음은 재투성이가 되곤 했다. ‘다들 겉으로는 대단하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비하하고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마음속 열등감에 불을 질렀고,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날 때면 내가 못 가졌지만 친구들은 가진 대학원 학위와, 한없이 초라해 보이는 나의 월급이 나를 비웃는듯했다. 진심으로 그들의 성공을 축하해주지 못했던 열등감 가득한 과거의 나는 대부분의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인연을 끊고 마는 선택을 했다.


신규를 살짝 졸업해 가는 지금, 공직생활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단순업무만 반복한다고 생각했던 공무원 사회는 “일”은 단순할지 몰라도 “사람”은 단순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에게 나는 수많은 다정함을 받았다. 경쟁사회에 한평생 잠식되어 주인도 알아보지 못하고 가시세우던 예민한 고슴도치 같던 나를 다정하게 보살펴주신 마음 덕분에 더 이상 가시 세우지 않는 나른한 고슴도치가 되었다.


돌아보면, 내 직업을 부끄러워했다는 사실조차 이제서는 부끄럽다. 누군가는 공무원이 되겠다고, 내가 그랬듯, 몇 년씩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대학원에서 도망친 나도, 대학원을 버텨낸 내 친구들도 휴가를 떠나면 업무를 대행할 사람을 찾아야 하는 “직장인1”이다.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내 직업이 아닌, 내 직업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하던 나 자신이었다. 이제 누군가 “왜 명문대 나와서 공무원 하냐”라고 물으면 “지금이 제일 마음 편해요”라고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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