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요리서기보에서 지방교육행정서기까지

by 이서무

지자체 공무원이라면 한 시군에 평생을 근무할 수 있겠지만, 도 단위로 선발하는 교육행정직 공무원으로 입직한 이상, 시군 간 순환근무를 해야 하는 운명에 던져졌다고 할 수 있다. 시군 간 순환근무뿐만 아니라, 시군 안에서도 근무지는 꾸준히 바뀐다. 내가 현재 인구 50만의 도시에 살고 있더라도, 시골로 발령이 난다면 꼼짝없이 다음 발령까지는 시골에 살아야 한다.


도내 순환근무를 하는 직장에 다니시던 부모님 아래서 자란 덕에, 시골에서 살아본 있는 나는 시골살이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고 생각”했”다. 스마트폰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 만난 어린 시절 친구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 초등학교 시절 만난 친구가 없다는 점 빼고는. 다만, 그 이후 만난 친구들이 너무나 소중해서 이 아쉬움은 묻어두기로 했다.


임용시험의 면접에서, “시골로 발령받으시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예상했던 질문에 속으로 ‘만세!’를 외치며, 막힘없이 “부모님을 따라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던 경험이 있고, 그 시절 너무 즐거웠기 때문에 거부감은 없습니다. 열심히 근무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지만… 신규임용 후 발령받은 시골살이는 녹록지 않았다. 역시 난 거부감이 없다고 생각만 했지, 실제로 마음속에는 거부감이 가득했다. 운전경력 2주에게는 벅찬, 내장기관보다 더 꼬여있는 것 같은 시골길과, 밤에 밖에 나가면 어딘가에서 희번덕 빛나는 들개의 눈빛이 보이는 듯했다.


다행히 당시에 그 시골로 같이 발령받은 동기가 10명이나 있었고, 젊은 사람도, 할 일도 없(다고 생각했던)는 시골에서 동기들 간의 우정만 끈끈해졌다. 다인실 관사에서 모여서 드라마도 보고, 서로 생일파티도 해주고, 거의 매일 저녁을 함께 먹었다. “텅”이었던 배달 어플 덕에 서로 도시에 있는 본가에 다녀올 때면 유명 프랜차이즈 음식들을 자체배달했고, 도대체 예산은 어떻게 짜는지 몰랐지만, 먹고 싶은 음식들은 직접 해 먹을 수 있던, “지방요리서기보”가 따로 없었다. 그렇게 나름의 미식생활들을 즐기며 나는 몸도 마음도 점점 통통해졌다. 비로소 “지방다이어트서기”로 승진하지 않고는 큰일 날 시점이었다.


“지방다이어트서기”로 승진한 나는 50세쯤 되시는 멋진 트레이너 어머님(?)이 계신 헬스장에 등록했다. 사실 ‘이 시골에는 헬스장도 없다’며 핑계를 대고 있었다. 나름 PT도 받았는데, PT를 받으며 즐겁게 먹고 마신 나는 점점 건강해지고만 있었다. 이후 다이어트에서는 식단이 8할이라는 것은 두 달간의 시행착오를 겪은 뒤 깨달았다(이 이야기는 나중에 한 편으로 써보겠다).


그렇게 1년 반 동안의 증량과 반년의 감량을 거쳐 나는 나름 인구 30만 가량의 도시(?)로 발령받으며 웃음으로 눈물 닦는 시골살이를 마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도시로 나가고 싶어서 매 발령마다(최소 연 2회) 간절히 바랐는데, 막상 정리를 하다 보니 내가 정말 바라던 발령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무실을 나오면서는 나라잃은(첫 근무지를 잃어서 그런지) 눈물이 흘렀다. 떠나기 아쉬운 마음이 하늘에 닿았는지, 함박눈은 내내 내렸고, 평소 2시간 반 걸리는 거리를 5시간이 걸려 도착했다.


2년간의 이삿짐으로 가득 찬 작은 차에는 짐보다 무거운 2년간의 추억과, 비로소 “지방교육행정서기”가 된 감량 중인 내가 실려있었다. 앞으로 수십 년간 근무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떠나게 될까. 하지만 확신할 수 있다. 가까이 있을 때 옅었던 추억은 점점 선명해진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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