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큰일 아님"

by 이서무

사실, 나는 러닝을 한다. 거대.. 한 체격으로 인해 믿지 않는 사람이 대다수지만. 거대한 체격에 어울리는 730 페이스로 달리는 덕에 영하 5도의 바람소리(달리면서 생기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는 아니다), 봄을 깨우는 냇물소리도 들으며, 뜨는 해가 하늘을 비추는 시린 청보랏빛과 지는 해가 땅을 비추는 달콤한 주황빛을 보며 달린다.


체지방률 40%가 코앞인 이 체격에 달린다는 건 조금만 빨리 달리면 부상이 찾아오는 위태위태한 일이다. 남들보다 숨도 쉽게 차고, 땀도 훨씬 많이 난다. 그럼에도 힙한 건 못 참는 습성 탓에, 발은 느리지만 손은 빠른 덕에, 한라산만큼 높다는 춘천마라톤 접수령을 넘어 10km를 달리러 나갔다.

과연 동네 대회와는 다른 응원의 열기는 내 땀만큼이나 뜨거웠다.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500 페이스의 힙하고 쿨한 러너는 되지 못했지만, 다행히 제한시간 안에 완주”는”해냈다. 다행히 응원단은 730 페이스 러너가 들어올 때까지 철수하지 않고 자리를 지켜주었고, 기록증보다 더 값진 응원을 얻었다.


그때부터였다. 한적한 외곽도로를 운전하다가 마주치는 러너들을 보면 자꾸 응원을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내가 춘천마라톤에서 느낀 달콤한 응원을 나도 건네고 싶었다. 하지만 운전 중에 반대편 차선을 보고 소리를 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조수석 쪽을 보고 소리치자니 내 목소리가 분명 안 들릴 것 같고, 클락션을 울리자니 앞 차가 오해할 수도 있는, 애매한 상황만 반복되던 중, 영하 8도의 추운 겨울날 아침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앞에도 옆에도 다른 차가 없는데, 그런 외진 길을 달리는 러너를 마주친 것이다. 가볍고도 경쾌한 클락션을 두 번 울렸다. 그들에게 나의 마음이 닿았다고 믿으며, 그들이 추운 겨울날 부상 없이 무사히 귀가하기를 바라며. 처음이 어렵지, 한 번 응원에 성공한 나는 응원할 타이밍에 딱 맞게 내 차를 마주치는 러너들을 찾으며 운전했다. 그 와중에 내 클락션에 손을 올리며 화답해 주는 러너도 비로소 마주하는 행운도 얻었다. 요즘은 응원용 핸드벨을 차에 구비해둬야 하나 고민인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응원중독(?)에 빠진 나는 러너들만 응원하는 것으로 뭔가 부족해서, 일상에서도 “응원하는 사람”이 되어보자는 생각을 해 본 것이다. 매우 이타적인 것 같은 이 생각은, “응원중독”에 빠진 나의 도파민 충족을 위한 행동이다.


친한 동기가 업무 중 “야 나 큰일 났는데”라고 하면, 읽자마자 “일단 그거 큰일 아님”이라고 대답한다. 당황함과 위기감을 한번 털어내 보도록 하고는 매뉴얼을 찾고, 콜센터에 전화하고, 아는 선후배동기한테 물어본다. 놀랍게도, “큰일 아님”이라는 마음은, 해법을 찾아주는 주문이 따로 없었다. 나도 업무를 하다 보면, 잔잔한 실수를 많이 하는 편인데, 그럴 때마다 "큰일이다"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내 나직이 '큰일 아님'을 읊조린다. “큰일 아님” 주문은 “큰일”이었던 문제가 이내 싱겁게 해결되게 만들어버리곤 했다.


730 러너인 나에게도, 싱거운 큰일을 마주한 너를 위해서도 “큰일 아님”을 외쳐본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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