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되지 못했지만, 유성처럼 흘러내리길

by 윤종현


첫사랑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바는 살며 누군가를 처음으로 너무나 가슴 시리게 사랑한다고 느끼게 된 순간, 바로 그 사랑이 '첫사랑'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일까, 나의 첫사랑은 오래도록 아팠었던 기나길었던 짝사랑이기도 하였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나는 열아홉이었고 이미 18에 집을 나와 당시의 꿈이었던 영화감독이 되기 위하여 학교를 자퇴하고 당시의 충무로에 입성하여 첫 장편 영화를 조명 staff로 마친 뒤,


언제 시작될 지모를 다음 두 번째 영화가 들어가기 전까지 기약 없이 기다리며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버티던 중이었다


당시, 홍대 번화가 한복판에 있는 춘천 닭갈비라는 음식점에서 제공해 준 숙소에서 기거하며 하루 12시간씩 서빙일을 하였는데 꽤나 힘들고 고된 일이었다. 저녁 피크 시간이면 손님들이 줄을 지어 들어오는 넓은 1~2층 건물이 항상 꽉 차는 식당에서 온갖 잡일부터 서빙, 그리고 무거운 무쇠판을 닦는 일까지 종일 하다 보면 지쳐서 쓰러지고 눈감으면 출근하는 그런 날들의 반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엔가, 검게 그을린 채 닦아내야 할 무거운 무쇠판들이 수십 개씩 쌓여있는 비좁은 판실에서 한 시간 가까이 판을 닦고 있는데 문득

그런 상상을 했었다


" 아래로는 에메랄드 빛 파도치는 바다

위로는 푸른 하늘에 떠다니는 새하얀 구름

그리고 그 사이를 지나가는 기차

마지막으로 이 모든 풍경들이 넓디넓은 유리창으로 한눈에 훤히 보이는 라이브 카페


저녁이면 잔잔한 발라드가 라이브로 들려오는

그런 감성이 가득한 곳. 바로 그러한 곳에서 어차피 해야 할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가올 영화일을 기다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그날 일이

끝난 후, 피시방에 들려 혹시나 그런 곳이 있는지 인터넷으로 천천히 검색을 해보았다. 그러던 중 정동진이란 곳에 그런 라이브 카페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도를 보며 위치와 전화번호 등을

파악해 본 후 메모를 해두었다


한 달에 3일을 쉬었는데, 다가오는 쉬는 날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혼자서 무작정 정동진을 향해 내려가 보았었다


도착해서 맨 처음 들린 곳은 입구의 바닷가 바로 옆에 있던 3층에 있는 '정동진 라이브 카페'라는 곳이었다. 하지만 사장님이 자리에 계시지 않는다며 이따 저녁 6시쯤 다시 와보라는 직원의 말을 듣고서 우선 다른 곳들을 먼저 가본 후 마지막에 다시 들러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그곳을 나와 발품을 팔아가며 그 동네에 있는 모든 라이브 카페의 문을 두드리며 면접을 보았다


현재 직원을 구하고 있지 않다는 똑같은 답변들을 들어가며 지쳐가던 중 마지막 카페에서 나와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아 기대반 불안감 반의 마음으로 저녁 6시가 되기만을 기다렸었다


어느덧 시간이 되어 처음 면접을 본 그 카페를 가보니 나이가 지긋하신 여사장님이 계셨고 3층 라이브 카페가 아닌 1층의 횟집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그 건물의 모든 가게가 한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듯하였다


마침 직원을 구하고 계셨고 집이 어디냐 일은 해보았냐 하는 등 기본적인 것들을 물어보시는데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정색을 하시면서 서울 놈들은 안된다며 기겁을 하셨다. 그러시며 일화를 들려주시는데 현금이 든 금고를 통째로 들고 달아간 놈부터 별의별 놈들이

다 있었다는 것이었다


난 이곳이 마지막이라는 간절함에 온갖 애교와 아양을 떨며 정말 열심히 일할 자신이 있으니 한 번만 일을 시켜봐 달라고 하자 "이.. 이보라고, 이래서 서울 놈들은 안된다 "며 오히려 더 역정을 내셨다


하지만 서울에서 이곳까지 오고 아침부터 자신을 기다렸다는 사실에 그냥 돌려보내기가 좀 그러셨는지, 그렇다면 오늘 밤에 하루만 일을 해보고 자신이 결정을 하겠다며 3층에 있는 라이브 카페에 올라가면 누나가 한 명 있을 테니 지금 가서 일을 해보라며 말씀해 주셨다


그나마 기회를 얻어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3층의 문을 여는데 감성적인 발라드와 함께 26 정도 되어 보이는 예쁘게 생긴 누나가 한 명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사장님의 조카분이었는데 서울에 살다가 잠시 내려와 일을 도와주다 어느덧, 2년이 지나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새 직원을 구하는 중이었다고 하였었다


그렇게 하루 밤을 함께 일하게 되었는데 우리는 금세 친누나와 동생처럼 친하게 되었고 1월 초가 아니면 평소에는 거의 손님이 없던 정동진의 특성상 12시간을 함께 일하며 하루 밤이지만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성격이 정말 잘 맞았고 금세 가까워질 수 있었다 밝고 사교적인 내 성격이 빛을 발휘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일이 끝나고 사장님께서 우선은 서울에 올라가서 있으면 자신의 조카였던 누나와 잘 이야기해 보고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하였다


그녀의 이름은 보경이었는데 그날, 떠나기 전 자신이 사장님에게 잘 이야기해 주겠다고 말한 걸 보면 내가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눈치이긴 했다 설레는 마음과 기대를 안고서 서울에 다시 올라와 닭갈비 집에서 다시 서빙일을 하던 중 며칠이 지나 연락이 왔다


와서 일을 한번 해보라고. 뛸 듯이 기쁜 마음을 안은채 부탁을 드렸다 지금 일하는 곳에도 사람을 구할 시간을 드려야 하는데 보름 정도 후에 내려가서 일을 해도 괜찮으시냐고 물었더니 그리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래서 일하던 곳의 사장님께는 죄송한 마음이지만 솔직히 말하지 못한 채 영화일이 시작한다고 거짓말을 한채 일을 그만두어야 하니 사람을 구해달라고 하였다 시간이 흘러 새로운 직원을 구하고 손님에게 선물 받아 키우던 새끼 토끼 한 마리와 커다란 가방 하나에 모든 짐을 싣고서 그동안 정들었던 닭갈비 집 식구들과 한 명씩 그동안 고마웠다며 인사를 하는데 3개월 하고 보름밖에 일을 안 했지만 정말 짠 월급에 고된 노동 덕분인지 그 가게가 생긴 이래로 가장 오래 일한 아르바이트생이었다는 사실이 내가 얼마나 지쳐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실이기도 했었다


사장님과 마지막 악수를 하는데 명함을 주시며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을 하라고 진심으로 이야기해 주실 때는 그래도 내가 정말 열심히 일했다는 것을 알아주신 듯하여 마음이 따듯해지기도 하였었다


그렇게 정들었던 곳을 떠나 다시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저녁이 되어 정동진 라이브 카페에 도착을 하였다


그렇게, 나의 첫사랑을 운명처럼 만났다......


사장님의 배려로 건물 바로 뒤편에 있는 작은 방 한 칸을 숙소로 얻어 낯에 일하시는 분과 교대로 작으나마 같은 방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낯에 자고 밤에 일을 하는 게 적응이 잘 안 되긴 했지만 꿈에 그리던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되어 하루하루를 기쁜 마음으로 일하게 되었다


저녁 8시에 출근을 해서 아침 8시까지 일을 했는데 첫 라이브 시작이 7시 30분이다 보니 한동준 님의

"너를 사랑해 "라는 라이브가 첫 시작으로 들려오면 눈을 뜨게 되는 날의 반복이었다 라이브는 두 타임이 있었는데 시작 타임의 형은 항상 이 노래를 처음 불렀기에 이보다 좋은 알람은 있을 수가 없었다


출근을 해도 손님은 하루 20 테이블 정도가 조금 안될 정도였다 그 큰 곳에 운영이 될까 싶었지만 그래서 한 명의 직원이 음료 칵테일 제조부터 서빙 카운터까지 모든 일을 해야 했는데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누나를 대신해 내가 일을 배우며 인수인계를 받게 된 것이었다


다음 영화일은 길면 1년도 기다려야 할 수 있다고 들은 상태인 데다 4달째 연락이 감감무소식이라 생활비를 벌며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때까지는 이곳에서 일을 할 계획이었다


그곳은 정말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일하지 않는 낮 시간에 올라와보면 내가 상상해 보았던 것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다 정말로 넓디넓은 통유리창 밖으로 아래로 절반은 모래사장과 에매랄드 빛 바다 위로는 푸른 하늘과 새하얀 구름 그 사이를 지나가는 칙칙폭폭 낭만적인 기차 간헐적으로 놓인 가로등과 나무 벤치 등...


물론 내가 일하는 밤의 풍경도 너무나 아름다웠고 특히 압권은 매일 늦은 새벽 조금씩 동이 트며 떠오르는 붉게 떠오르는 커다란 태양이었다


그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아름다운 풍경들 속에서 그 매력적이고 예뻤던 한 여인에게 사랑에 빠지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매일을 긴 시간 둘이서만 함께 일하며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녀는 마치 무인도에서 몇 년을 혼자 살다가 마침내 다른 사람을 만나 그동안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듯이 정만 쉼 없이 끊임없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고 이미 사랑에 빠진 난 그녀에게 들킬까 조심하며 신나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두 눈망울 깊게 바라보며 진심으로 모든 이야기들을 경청하였다


자신은 서울에 있는 미대를 나왔고 같은 대학의 다른 과에 다니는 오빠와 첫사랑을 하게 되었으며 정말 너무나 사랑해서 오죽하면 고백도 먼저 하였다고 하였다 그 남자는 신방과에 다녔는데 신부가 될 사람이었다고 했었다 그러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둘이서 같이 있기만 해도 너무 좋아서 가난한 학생이었던 둘은 돈이 없어 자판기 커피를 한잔씩 뽑아 근처 공원의 벤치에 앉아 대화만 나누어도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었다고 말하였다


그렇게 몇 년을 서로 사랑했었지만 졸업할 때가 되어 남자인 그는 신부가 되려 하였고 누나에게 하모인가 하는 여자 신부가 되기를 권유하였다고 하였다 그래야지만 서로가 계속해서 만남을 이어갈 수 있다며... 하지만 결국 누나는 여자 신부가 됨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런 연유로 둘은 헤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첫사랑의 상처를 가득 안은 채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하지 못한 채 시름시름 앓으며 바람을 쐴곳이 필요했던 상황에서 이모님이 계시는 정동진에 잠시 내려와 일을 도와주며 마음을 식히려다 어느덧 2년의 세월이 흘렀고 어느 정도는 마음이 치유가 되었는지 다시 서울로 올라가 일을 하며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었다


타지에서 그것도 바닷가에서 한평생 살아온 이들과 쉽게 섞이지 못한 채 혼자서 고립된 생활만을 이어오다 갑자기 나타난 19의 소년이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 어리게 잘 들어주자 마치 봇물 터지듯이 간직해 온 상처와 아픔까지 모두 털어놓게 된 것이었다...


난 그런 그녀를 금세 사랑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함께 일한 시간은 그리 길지 못하였지만 나 역시 시간이 흘러 두 번째 영화에 staff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그녀 역시 서울로 올라가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와 나는 친한 친구처럼 지내게 되었기에 서울에 올라와서도 종종 연락을 하며 이따금씩 만나는 누나 동생 사이가 되었었다


하지만 같이 일을 하던 시기에 자신의 일화를 들려주며, 이상하게도 연하들에게 대시를 많이 받았다는 등 자신은 절대 관심이 없는데 자꾸만 들이대는 연하의 남성들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에 혹시라도 내가 좋아하는 마음을 들키게 되면 이 사랑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될 것만 같아 항상 조심

또 조심했었다


좋아하는 꽃을 만질 수도,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한 채 그저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기에 그렇게라도 이따금씩 함께하는 것이 당시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첫사랑의 아픔으로 여전히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자체가 바라보는 내겐 또 다른 상처와 아픔이자 힘듦이었으며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하였었다


정동진에서 함께 일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서로 이따금씩 연락을 주고받을 때

그녀의 상처가 빨리 낫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같이 영화계에서 일하는 선배 중 한 명을 누나에게 소개해 주기로 한일도 있었다


당시 나의 주변에서 가장 좋아하던 형이자 좋은 사람으로서 생각했었던 분이었기에 진심으로 누나와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소개팅을 주선해 주었지만 형은 누나를 마음에 들어 했으나 누나의 타입은 아닌 듯하여 한 번의 만남으로 끝이 났었다


그렇게 다행인지 아닌지 모를 일이 지나가고 서로 연락 없이 두 번째 영화를 부산에서 몇 달째 촬영을 하고 있는데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핸드폰에 '김보경'이란 세 글자가 뜨는 순간 손을 덜덜 떨며 바로 받을 수 조차 없었다 사랑의 크기만큼이나 혹시라도 좋아하는 마음을 들킬까 염려되어 아무리 먼저 연락을 하고 싶어도 참고 또 참으며 지내오던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받지 못한 전화를 뒤로하고 심호흡을 가다듬은 채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 그녀의 첫마디는 " 야! 너 진짜 섭섭하다 어떻게 연락을 한 번도 안 할 수가 있냐? 진짜 섭섭하다 " 였었다 난 그 말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다음에 서울로 올라가면 한번 보자는 말을 서로 남기며 통화를 끊었을 때 심장이 터질 듯이 빠르게 뜀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러 서로가 사는 집의 중간 지점인 종로 3가, 14번 출구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한 날 그녀는 사정이 있어 두 시간을 늦게 도착하였지만 그 하염없이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큰 그리움과 애잔함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지루함이 아닌 설렘으로 넘치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만나 근처의 서울극장에서 영화를 함께보고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술을 함께 마시기도 하면서 자연스레 아쉬움을 뒤로한 채 헤어졌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 속에 돌아서서 걸어가는 그녀를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던 것 같다


마치 10달을 임신해서 아기를 만나는 하루처럼

그때의 나에겐 그러한 만남이었다


그 후로도 이따금씩 연락을 주고받으며 약속을 잡을 때면 우리가 항상 만나던 장소는 매번 종로 3가의 14번 출구였다 둘 다 좋아했던 영화를 근처의 서울극장에서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가까운 친구사이가 되어가던 중 어느 날인가 누나에게 드디어 남자친구가 생겼고 또 다른 여자 친구분 한분과 함께 만나는 자리에 나를 초대해 주었다 누나의 입장에서는 좋아하는 동생에게 자신의 남자친구를 소개해주는 자리였던 셈이다


솔직히 말해 그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너무 사랑했던 그녀가 상처를 극복하게 해 준 남자를 만났다는 사실이, 새로운 사랑을 찾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나에게 다행스러운 마음과 함께 안도감을 주었으며 선하고 귀여운 인상의 그 남자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매력 있고 좋은 남자인 것처럼 느껴졌기에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우면서도 가벼울 수 있었다


그 날밤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많이 마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날 후로는 누나를 만날 때면 항상 남자친구분과 함께했었고 다른 친구와 함께 넷이서 영화를 보거나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한 번은 약속장소에서 누나를 먼저 만나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여자들이 으레 친구나 가까운 사이에 잘 그러듯 걸어가며 나에게 잠시 팔짱을 낀 적이 있었는데 정말 심장이 터져 죽는 줄만 알았었다


그렇게 몇 년이 다시 흘렀고, 여전히 가질 수 없는 사람임을 잘 알았지만 계속해서 열심히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은 지쳐가기도 하던 중이었으며 어느 순간에 다짐을 했었다 만일, 지금 만나는 그 분과 혹시라도 헤어지게 된다면 나도 용기를 내어서 두려워하지 말고 당신에게 고백을 해봐야겠다는...


사랑의 크기가 너무나 컸기에 흐르는 세월을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지만, 드라마틱하게 용기를 내보기로 한지 얼마되지 않아 술이 많이 취한듯한 누나의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다


"종현아. 나 실연당했어 누나 위로 좀 해주라... "


복잡한 마음이었다. 주체 못 할 정도로 감당할 수 없는 기쁨과 함께 걱정 가득한 아픔이 함께하는 아이러니한 마음.


그리고 얼마 후 누나를 만났고,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조금 어린 여자분과 함께하는 자리였는데 셋이서 영화를 보고 식사 겸 술자리를 갖으며 근처의 바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나는 정말 많이 힘들어 보였고 지쳐 보였지만 내색은 하지 않는 듯하였다 그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갑자기 누나가 이런

질문을 했다


"종현이 너는 여자친구 없어? 있을 거 같은데 왜 없지? 내가 볼 때는 굉장히 매력이 있는데 "


그 순간 가슴을 심하게 망치로 얻어맞은 듯하였다 4년을 가까이 당신만 바라보고 혼자서 사랑해 왔는데 그 사랑이 향해 있는 사람에게서 사랑하는 사람이 없냐는 되물음에는 아이러니와 함께 이루 말할 수 없는 커다란 통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술이 살짝 취한 것도 있었기에 나도 모르게 그만 "있어요...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요.. "라고 말해버렸다


그러자 누나는 정말 밝고 기쁜 모습으로 "정말이야? 그게 누군데? "라고 물었고 나도 모르게 연상의 여인이라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해버렸다...


그러자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졌고 누나도 눈치를 챈 거 같았다 그리 준비 없이 마음을 표현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러한 아픈 상황이 누나의 아픈 질문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었다


조금은 어색해진 상황 속에 다른 화제를 이어가던 중 누나가 잠시 화장실을 간 틈을타 직장 동생분에게 양해를 구하며 따로 시간을 내어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다며 연락처를 받아두었다


그날은 그렇게 헤어지고 난 후 그분께 따로 연락을 하여 둘이서만 다시 만나게 되었고 누나에 대한 진심 어린 마음과 사연을 솔직하게 털어놓게 되었다 주변 지인을 통하여 도움을 얻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분 께서는 조용히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셨고 여러 조언을 해주셨는데 아시다시피 여자들은 실연당한 후에는 심적으로 모든 게 너무 지쳐있기에 타이밍이 좋지 않다고 말씀해 주셨다


사랑에는 모든 게 서툴렀던 나였기에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당분간은 조용히 기다리기로 결정을 했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나에게 정말 많은 안 좋은 일들이 생겼고 심각하고 깊은 우울증에 걸리며 자살 생각까지 하게 되었었다 당시엔 그 아픔과 힘듦을 철학과 종교 명상 서적들에서 얻는 힘으로서 이겨낼 수 있었고 자연스레 나의 모든 관심사는 세속적인 것들이 아닌, 진리라고 부르는 수행과 명상의 삶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지게 되었었다


우울증을 극복해 내고 모든 삶의 에너지를 되찾게 되었을 때 난 완전히 달라져 있었고 수행자라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었다 진지하게 출가의 뜻을 굳히고 해인사의 어느 암자로 가기 1주일 전 주변을 정리하며 아직 멈추지 않은 채 그대로 존재하던 사랑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보고서 떠나고 싶었고 누나에게 연락을 하여 평소 잘 알고 지내오던 누나의 다른 여자친구분과 함께 셋이서 만남을 가졌다


난 그동안의 마음들을 모두 털어놓았었고 누나의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워하기보다는 편안하게 들어주시며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응원해 주셨었다 조금 울컥했었던 순간은 당시 기준으로 1년 전쯤 누나의 생일날 주고 싶어서 사둔 목걸이가 있었는데 마음을 들킬까 걱정이 되어 계속해서 전해주지 못한 채 간직만 하고 있다가 그제야 떠나기 전 편안한 마음으로 선물을 꺼내드린 일이었다


그런데 누나가 그 목걸이를 알아보고서 놀라워하며 알아보았다 " 이 목걸이는... "


" 맞아요 " 내가 이어서 말했다 " 사실 1년 전쯤 어느 날에도 누나와 지금 함께 있는 친구분 하고 셋이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어느 가게에서 이 목걸이를 살까 말까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것을 보고서 눈여겨보았다가 다음날 그 가게에 혼자 다시 가서 사둔 것이었는데 계속 전해주지 못하다가 이제야 선물해 드리게 되었네요... "


그러자 그녀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해주면서 그 자리에서 목걸이를 들고서 머리를 뒤로 젖히며 자신의 목에 걸어주셨다


그 순간 아프면서도 기뻤다 이렇게라도 전해줄 수 있어서, 많이 늦었고 다른 의미가 되었지만

이렇게라도 전해줄 수 있어서......


그날 그동안 간직해 왔던 모든 마음과 사연들을 고해성사하듯이 누나에게 털어놓고 난 후에 집에 갈 때가 되어서는 둘만 남게 되었다


헤어지는 자리에서 버스정류장에 함께 가게 되었고 마지막 순간을 보내며 집으로 타고 가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이렇게 말씀하셨다


" 그래도, 아닌 건 아니잖아... "


그 말이 너무나 아프게 다가왔지만 다가오는 버스를 그냥 타지 않고 보내주신 그녀의 배려 섞인 마음에 감사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조금이라도, 1초라도 더 함께 있고 싶었던 나의 마음을 아셨던 거 같았지만 너무나 야속하게도 다음 버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을 하였고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그러나 나는 완전히 헤어지지 못한 채 사라져 가는 버스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서 아픈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며칠 후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서, 해인사로 향하는 열차를 타고 깊은 산속을 걸어 들어가 머리를 깎고 출가를 하며 수행자가 되었다...


그리고, 1년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짧은 시간이었지만 절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많은 변화를 일으켰고 새로운 삶의 가치관과 자세를 가지게 해 주었다 그 해의 11월에 산에서 내려와 다음 해인

3월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출가를 결심하며 오래도록 홀로 간직해 오던 사랑도 떠나보내었지만 그리움마저 떠나보낼 수는 없었는지 그녀의 흔적을 좇아 당시의 유일한 sns였던 미니홈피를 들어가 보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 페이지에는 '레인보우 로즈'라고 불리는 네덜란드에서 백장미에 꽃잎과 줄기의 관계를 연구하여 꽃잎 하나하나를 염색한 후 한송이 장미 안에 무지갯빛 장미잎이 있는 그런 꽃을 만들어 판매하였는데 그 꽃의 사진 아래에 이렇게 쓰여있었다


" 레인보우 로즈는 고사하고, 의미 있는 장미 한 송이라도 받아봤으면... "


그 글을 보는 순간, 이 꽃을 꼭 선물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산에서 내려와 다시 새 삶을 시작하여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무언가를 기대하는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지난 7년간 해왔던 혼자해온 나만의 첫사랑에 레인보우로즈 한 다발을 올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아직은 혼자 있는 듯한 그녀에게 당신은 이 꽃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입니다.라는 마음을 전해주고 싶기도 하였다 또한, 누구나 그럴 수 있듯이,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었다


그렇게 중간 유통회사에 전화를 하여 레인보우로즈 한 다발을 주문하고 11일 정도가 지나서야 꽃을 받아볼 수 있었다 준비가 끝나고 나서 그녀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얼마 전 산에서 내려와 새 삶을 시작하여 멀리 떠나려고 하는데 그전에 한 번 더 볼 수 있겠냐고...


부담 갖지 않도록 그리 말하자 조금은 놀라는 눈치였지만 좋다는 대답을 듣고서 며칠 후인 화이트데이 이기도한 3월 14일 날 그녀의 집 근처인 부천에서 저녁시간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다


그날이 되어 최대한 멋있게 차려입고 실제로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레인보우로즈 한 다발을 들고서 약속장소로 향했다


도착을 해보니 그곳엔 몇 년 만에 보는 누나와 함께 처음 보는 친구들 세분이 함께 술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둘이서 보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되려 편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던 것 같다


친구들 사이에서 화젯거리였던 레인보우 로즈를 한 다발 들고서 젊은 남자가 나타나자 친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티는 안 내려하셨지만 다들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잠시 화장실을 가며 자리를 비웠다 돌아오는데 넷이서 그 꽃다발을 들고서 만지작 거리고 바라보며 환한 표정으로 신기한 듯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보여 나 역시 미소 지을 수 있었다


함께한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이제는 좀 편안하게 지난 시절의 내 사랑에 대해서 모두에게 그리고 그녀에게도 자연스레 이야기 나눌 수 있었고 솔직히 하고 싶었던 모든 말들을 꺼내어 놓을 수 있었다 누나의 남자친구와 함께 데이트하며 마음 아팠던 이야기도 하는데 친구들이 왜 그랬냐며 핀잔을 주자 "그땐, 나도 몰랐지... " 하며 미안해하긴 했지만 지난 상처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모든 걸 다 내려놓고서 떠나고 싶었다 아니, 나의 첫사랑을 떠나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나도 25이라는 늦은 나이였지만 이제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다시, 그 사랑을 받는 따스한 사랑이 하고 싶었다 절에서 내려오며 다짐했었던, 많이 웃고 밝게 사는 그런 모습의 삶과 사랑 속에 살아가고 싶었다


그 자리는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꽃을 보내주는 시간이기도 했으며 새로운 삶을 향해 걸어 나가고 싶은 다짐의 자리이기도 하였다...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작은 것 하나라도 더 잘해주고 싶었지만 화이트데이라고 해서 사탕까지 선물해 드리면 부담스러워하실 거 같아 꽃만 전해드린 것이었는데 조금씩 밀려오는 술기운 탓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잠시 자리를 나와 밖으로 가서 사탕묶음 4개를 사 와서 3개는 친구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머지 조금 더 크고 특별해 보이는 사탕묶음은 그녀에게 선물해 주며 부담스러우실까 봐 일부러 안 사 왔는데 이렇게나마 드리고 싶어 져서 사 왔다고 말씀해 드렸더니 모두들 고마워했었다


그렇게 즐거움과 아쉬움의 시간들을 보내다 갑자기 울컥해졌다 2년 전 출가하기 전 그녀와 헤어지며 떠나는 버스를 바라보던 기억이 나서였다 헤어질 시간이 조금씩 다가오자 그때의 너무나 가슴 시렸던 기억 때문인지 두려움이 엄습해 왔고 결국 먼저,

자리를 일어나게 되었다


조금은 이른 타이밍에 자리를 일어나려 하자 모두들 조금은 의아해하는 눈치였지만 내 마음을 알리는 없었다 그렇게 방어적인 마음으로 아쉬움과 미련을 뒤로한 채 작별을 고한채 먼저 자리에서 인사를 하고서 일어났다


주대가 꽤 많이 나왔지만 모두가 모르게 그 자리의 술값을 모두 계산하고 나왔다. 하나라도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왔는데 내 평생에 그렇게 서럽고 통곡하듯이 벽에 기댄 채 어린아이처럼 엉엉 운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길로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동네에 있는 친구들이 있는 술집을 향해갔고 사연을 털어놓으며 술을 마시고 있던 어느 순간이었다


그녀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정말 너무나 깜짝 놀랐지만 정신이 번쩍 들며 조금은 화를 내며 전화를 받아 말했다


" 누나 왜 전화하셨어요?... 저는 정말 너무 힘들게 일어났는데... "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 왜... 이제 내가 전화하면 안 되는 거야?... " 라며 대답을 하였고 나는 조용히 한숨을 쉬며 차분하게 말했다


" 아니요... 저는 솔직히 말해서 누나 목소리 1초라도 정말 더 듣고 싶죠... 하지만 저, 정말 너무 힘들게 일어났잖아요... "


그러자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미안하다고 짧게 말씀하셨던 거로 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누나 꼭 많이 행복하세요... "라고 말하자 "그래 너도 꼭 많이 행복해라... "라고 말해주신 것이 마지막이었다


아마도 친구들과 집에 가려고 계산을 하려는데 아까 먼저 가신 남자분께서 미리 계산을 다하고 가셨어요 라는 말씀을 듣고 나서, 무언가 울컥한 마음에 내 마음을 다시 한번 느끼시고 연락을 하신 듯하였다......


그로부터 19년이 지나, 지금 내 곁에는 옆방에서 자는 아내가 잠시나마 편안히 잠을 잘 수 있게 이제 막 태어난 사랑하는 아이가 잠을 자고 있다...


바로, 몇 해전인가 아는 작가님 두 분과 술자리를 갖으며 나의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그중 50대 정도 되시는 여자 작가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


"아마도 그때에 술자리가 끝나고, 그분께서 종현 씨에게 다시 연락을 했을 때는 그냥 연락한 게 아니었을 거예요...


여자의 마음을 왜 이렇게 모르세요... "


많은 세월이 흘러 처음 해본 생각이긴 했지만 정말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물론, 그런 이유가 아닐 수도 있었겠지만...


온 마음을 다한 나의 홀로 한 첫사랑에는 후회나

미련이 없다


난 정말 열심히 사랑했었고 한 발짝 떨어진 채 하염없이 그 꽃을 바라보았었다. 가질 수 없어서 더 간절하고 애타게 바라보았던 그 꽃을......


그 후 로는, 이따금씩 기억 속에서만 그녀를 만나왔지만 5년 전쯤 다시 들린 정동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녀의 소식을 다시 들을 수 있었다


19살에 나를 서울에서 왔다며 핀잔을 주시던 그 여사장님이 아직 계셨고, 이십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를 기억하셨으며 그녀의 이모님이셨기에 조카의 안부를 묻는 나의 질문에 몇 년 전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서 잘 살고 계시다고 하셨다...


...


이 사연이,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사랑의 모습이었지만 겨울이 끝나가는 어느 늦은 밤 새벽녘에 떠오른 모습들을 기억하고 회상하며 글을 남겨본다


윤종신의 '오래전 그날'이란 노래 속 가사처럼


"나만을 믿고 있는 한 여자와 잠 못 드는 나를 달래는 아기의 숨소리만이... "


...


많은 것들이 부족했던 내 삶이었다 많은 것들이 어설프고 부족했던 내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아픔과 부족함마저 사랑으로 채워준 사랑하는 나의 아내와 나의 아이에게 이 글을

바치고 싶다


나의 모든 지나온 사랑까지도

사랑해 주는 그들에게...


사랑하는 아내의, 지나온 모든 사랑들 역시도

진심으로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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