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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구 Apr 29. 2024

에스떼야에서의 이틀

결혼식대신 순례길

D+8~9, camino 6-7days / Puente la reina -> Estella


여왕의 다리를 건너자!


어제 puente la reina의 '여왕의 다리'를 건너 estella(에스떼야)로 왔다. 이 코스에는 작은 마을들이 4개가 있었다. 마을들은 모두 다른 크기와 분위기를 가졌지만 이상한 것은 항상 우리가 도착했을 땐 너무 조용하고 순례자들이 들르는 bar말고는 문이 닫혀있는 집이 더 많아 유령마을 같다는 것이다. 








마녜루 마을


아마도 평일이고 모두 출근을 했거나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일까? 그래도 이번에는 마음에 드는 마을이 몇 군데 있었다. mañeru라는 언덕위에 있는 마을인데 미로같은 골목사이사이 색색의 집들이 예뻤다. 




안데르라는 이름을 한글로 팔목에 새긴 아저씨


잠시 음료를 마시려고 들른 바르에서 손목에서 한글로 '안데르'라고 쓰여있는 아저씨도 만났다. 한국인 아들이 적어준 거라고 한다.


lorca라는 마을에서는 한 알베르게에서 화장실을 급히 빌려썼는데, 알고보니 주인이 한국인 아주머니였다. 까미노에 오기 전에 스페인 사람과 결혼한 한국인 아주머니가 하는 알베르게가 있는데 친절하고 좋았다는 이야기를 본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집이었다. 잠시동안 고민했다. 원래 목적지였던 에스떼야까지 가지 않고 여기 머물까.



아르볼(나무)가 정말 아르볼스럽게 생긴 마을


중간중간 배고플때마다 꺼내먹는 식량들. 마녜루 수퍼에서 산 알리오 소스로 저린 문어통조림 괜찮았다.


작은 들꽃선물


마르지 않은 빨래들을 옷에 걸고 다니느라 가방은 거의 만신창이


하지만 그때까지는 아직 걸을만 했으므로 그냥 다시 걷기로 했다. 그러나, 그게 실수였다. 그 뒤로 유령마을 하나를 지나고 또 산을 하나 넘어서야 에스떼야가 있었다. 오던 길과는 다르게 골짜기 속에 있은 이곳은 굉장히 춥고 바람이 세게 불었고, 늦게 도착한 탓에 알베르게에서는 가장 나쁜 자리를 받게 되었다. 당장 뭔가 먹을 곳도 없어 수퍼마켓에서 인스턴트 음식으로 대충 허기를 떼우고 있자니 울적해졌다.


몸은 으슬으슬하고 무릎 상태도 더 나빠지고 있었지만 별다른 방법은 없었고 술로 고통을 잊어보기로 했다. 




에스떼야 알베르게에서 독한 빠첼란으로 고통을 잊으려다 다음날 더 고통스러워짐

다시 만난 한국인 친구들과 중국음식점에서 와인을, 슈퍼에서 나바라지방 특산물인 '파찰란'이라는 도수 높은 술 그리고 맥주까지.. 그리고 취기가 오른 상태로 기분 좋게 잠에 들었는데, 다음날 상태는 최악.. 결국 오늘 우리는 걷지 않기로 했다.




덕분에 얻은 휴일


일기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덕분에 에스떼야의 아파트먼트를 빌려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밀린 일기도 쓰고 앞으로 스케줄도 체크하고 그림도 그리고 요리도 해먹고... 안좋은 기억만 가져갈뻔 했던 에스떼야가 오늘은 바람도 덜 불고 동네도 다시보니 정겨웠다.


방에서 보이는 광장



거의 빼께뇨 니뇨스(작은 아이들)의 놀이터인듯


리오 에가.. 에가강 흐르는



달콤한 것 찾아 들어간 디저트 가게.. 어딜가나 나랑하 수모(오렌지주스)를 시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즙을 짜준다. 맛은 무이 리꼬!

무이 리꼬라며 우리가 먹은게 뭐냐고 물으니 주인 아주머니가 적어준 디저트 이름들
근처 정육점에서 사온 삼겹살…


하나 남은 김치라면과 냄비에 지은 밥, 삼겹살로 체력보충.. 내일은 오늘 걷지 않은 거리까지 걸어야만하니까



다만 처음부터 함께 했던 사람들은 먼저 다음 목적지까지 도착했다는 메세지를 받고 보니 이제 길이 엇갈려 까미노에서 다시 보긴 어렵겠구나 싶어 좀 아쉬운 마음




2016년 결혼식 대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우리!(노마드워커스 시초가 되었던 여행입니다) 페이스북의 타임라인 끝에 있던 일기들과 오래 된 사진첩에 있던 자료들을 캐내어 다시 연재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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