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엄마가 도와주면 무섭고, 혼자 하면 괜찮을까?"-배변 훈련의 반전
튼튼이의 예민함이 정점을 찍은 사건은 바로 '배변 훈련'이었습니다.
30개월, 이미 밤에 소변을 보지 않을 정도로 생리적 기능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저귀를 떼지 못했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다 할 줄 아는데 일부러 안 하는 것 같다"며 강제로 기저귀를 벗기자고 했고, 저는 전문가의 의견을 따라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친구들이 화장실에 갈 때 튼튼이는 울며 버티다 바지에 실수를 했고, 선생님이 "도와줄게"라며 다가가면 더 자지러지게 울었습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분명 소변이 마려운 걸 아는데, 제가 "화장실 가자"며 옷 벗는 것을 도와주려 할 때마다 공포에 질린 눈으로 저항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관찰해 보니 아주 미묘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평소 목욕하거나 옷을 갈아입을 때, 혹은 본인이 "쉬 마려워"라고 말하고 스스로 바지를 내릴 때는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제가 "도와줄게"라며 예고 없이 손을 댈 때였습니다. 제가 손을 대려 하면 아이는 공포에 질린 눈을 하며 온몸으로 저항했습니다.
"왜 스스로 할 때는 괜찮고, 엄마가 도와주려 하면 무서워할까?"
그 순간, 심리학의 한 이론이 스쳤습니다. "몸의 감각은 머리보다 무의식을 더 빨리 캐치한다."
아이의 저항하는 몸짓을 보는 순간, 제 몸 깊숙이 숨어 있던 끔찍한 기억 하나가 감전된 듯 튀어 올랐습니다.
어린 시절 골목길, 낯선 아저씨가 저를 붙잡고 바지 속으로 손을 넣으려 했던 그 소름 끼치던 순간. 타인이 나의 가장 은밀한 영역을 침범하려 할 때 느꼈던 그 얼어붙을 듯한 공포. 제 무의식 속에 잠자고 있던 그 공포가, 옷을 벗겨주려는 제 손길을 거부하는 아이의 상황과 연결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 튼튼이는 지금 싫은 게 아니라 무서운 거구나."
중력 방어, 촉각 방어가 심한 이 아이에게, 타인이(설령 엄마라도) 예고 없이 내 옷을 벗기고 내 몸을 만지는 행위는 도움이 아니라 '침범'이자 '공포'였던 것입니다.
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며 아이를 안았습니다.
"튼튼아, 많이 무서웠지? 엄마가 몰라줘서 미안해."
평소 제가 실수해서 "미안해"라고 하면 늘 "괜찮아"라고 의젓하게 답하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튼튼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달랐습니다.
"고마워."
그 짧은 한마디에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엄마가 자신의 몸이 느끼는 공포를 알아줬다는 사실이, '도움'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멈춰줬다는 사실이 30개월 아이는 그토록 고마웠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어린이집 선생님께 부탁드렸습니다.
"절대 도와주지 마세요. 옷을 벗기거나 닦아주지 마시고, 그냥 아이가 원할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아이에게 죄책감을 주는 "다음에 꼭 말해"라는 말도 금지했습니다. 튼튼이는 이미 다 알고 있었으니까요. 단지 남의 손을 빌려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싫었을 뿐입니다.
놀라운 일은 그 부탁을 한 지 딱 2주 만에 일어났습니다. 아무도 터치하지 않자, 튼튼이는 스스로 "화장실 갈래"라고 말했습니다. 소변을 뗐고, 4살 때는 스스로 뒤처리를 할 수 있게 되자 대변까지 완벽하게 가렸습니다. 시작은 가장 늦었지만, '완벽한 독립(뒤처리)'은 반에서 가장 빨랐습니다.
사실 저는 30개월 때의 일이 기억나지 않아요. 엄마가 울면서 "미안해"라고 했던 장면도요.
하지만 지금의 제가 느끼는 감각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저는 지금도 누군가 예고 없이 훅 들어오거나 저를 통제하려 하면 본능적으로 몸이 굳거든요.
아마 그때의 꼬마 튼튼이도 그랬을 거예요. "도와줄게"라는 말이 "너는 혼자 못 하니까 내가 해줄게"라는 무시나 침범처럼 느껴져서 무서웠을 거예요.
그때 엄마가 멈춰주지 않았다면, 저는 제 몸을 지키기 위해 더 날카로운 가시를 세웠을지도 몰라요. 엄마가 제 '싫음'을 '무서움'으로 읽어줘서, 그리고 저를 믿고 기다려줘서 정말 다행이에요. 덕분에 저는 제 몸의 주인이 될 수 있었으니까요.
튼튼이의 "고마워"라는 말을 듣던 날, 저는 30개월 아이에게서 인간의 존엄을 배웠습니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온몸으로 거부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반항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스스로 지키려는 처절한 신호였습니다.
그날 밤, 곤히 잠든 아이의 손을 잡고 조용히 약속했습니다.
"네가 스스로 너의 몸을 조절할 수 있을 때까지, 엄마는 너의 손발이 되어 앞서가는 대신, 언제나 네 뒤에서 묵묵히 기다리는 그림자가 되어줄게."
1. Van der Kolk, B. (2014). The Body Keeps the Score. (몸은 기억한다).
트라우마나 공포 기억이 언어가 아닌 신체 감각(Somatic Sensation)으로 저장되어 있다가, 유사한 상황에서 재현된다는 이론입니다. 엄마의 무의식적 공포와 아이의 거부 반응을 연결해 주는 핵심 근거입니다.
2. Erikson, E. H. (1950). Childhood and Society.
유아기(2~3세)의 핵심 발달 과업인 '자율성 대 수치심(Autonomy vs. Shame)' 단계를 설명하며, 튼튼이의 배변 훈련 과정에서 자율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