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유모차는 싫지만 미끄럼틀은 좋아

"내가 하면 괜찮아" - 중력불안 뒤에 숨은 강력한 주체성

1. 천하장사 아기의 눈물: 중력 불안의 실체

8개월에 뛰어다닐 만큼 대근육 발달이 빨랐던 튼튼이가, 이상하게도 '바퀴 달린 것' 앞에만 서면 얼음이 되었습니다.

키즈카페의 꼬마 기차는 근처에도 못 갔고, 다른 아이들은 편하게 타는 유모차조차 거부해 저는 늘 덩치 큰 아이를 땀 흘리며 안고 다녀야 했습니다.


이것은 '중력 불안(Gravitational Insecurity)'이었습니다.


저는 아이의 척추 발달을 위해 일부러 보행기나 점퍼루를 태우지 않았는데, 그 때문에 아이는 '내 다리가 아닌 기계에 의존해 움직이는 감각'을 익힐 기회가 없었습니다.

예민한 전정기관(균형 감각)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물체를 '추락'이나 '생존의 위협'으로 인식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남자애가 왜 이렇게 겁이 많아"라고 했지만, 그것은 겁이 아니라 뇌가 보내는 '생존 신호'였습니다.

2. 미끄럼틀은 타는 아이: 피드포워드의 비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네나 미끄럼틀은 곧잘 탔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더 무서워 보이는 놀이기구인데 말이죠. 차이점은 딱 하나, '누가 움직임을 시작했는가'였습니다.


스포츠심리학에는 '피드포워드(Feed-forward)'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예측 제어'라고도 하죠.

내가 발을 굴러 그네를 탈 때, 뇌는 이미 그 결과로 일어날 흔들림을 미리 예측하고 몸의 근육을 준비시킵니다.


"자, 이제 흔들릴 거야! 꽉 잡아!"


뇌 본부에서 미리 경고 신호를 보내주니 전정기관은 안심합니다. 이것이 바로 '운동 주체성(Agency)'의 힘입니다.

반면, 유모차나 모노레일처럼 타인이나 기계에 의해 움직임이 시작되면 뇌는 예측할 기회를 잃습니다.


"어? 갑자기 왜 움직여? 위험해!"


비상벨이 울리는 것입니다. 튼튼이는 겁쟁이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몸을 스스로 완벽하게 통제하고 싶은 '주체성'이 너무나 강했던 아이였습니다.

3. "도와주지 마세요" - 7살 정글짐의 정복


4살 때까지 정글짐이나 늑목 사다리 앞에만 서면 공포에 질렸던 이유도, 아직 내 신체를 정교하게 조절해서 높이를 이겨낼 '예측 회로'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등 뒤에서 "올라가 봐, 할 수 있어!"라고 미는 대신, 아이가 스스로 첫 발을 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네가 준비되면 출발해."


제가 아이에게 준 것은 도움이 아니라 '통제권'이었습니다.

6살이 되자 조금씩 높이에 대한 공포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7살이 된 어느 날 튼튼이는 마침내 정글짐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저를 내려다보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엄마! 나 여기까지 올라왔어!"


그 순간은 단순히 높이를 정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뇌가 보내는 공포 신호를 스스로 조절하고 통합해 낸, '자신감의 승리'였습니다.

[튼튼이의 속마음] “나는 뒷자리가 싫어요”

"엄마,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아요. 저는 지금도 그래요. 친구들이 예고 없이 약속을 바꾸거나, 제 계획을 마음대로 휘두르려고 하면 너무 힘들어요. 마치 유모차에 묶여서 끌려가는 기분이에요.

그리고 자전거 뒷자리에 타는 건 지금도 무서워요. 운전하는 사람 마음대로 흔들리니까 불안하거든요. 차라리 자동차는 덜한데, 자전거는 진짜 제 몸을 맡겨야 하잖아요.

저는 그냥 제가 운전하는 게 제일 편해요. 핸들을 제가 잡고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남한테 맡기면 롤러코스터 타는 것처럼 어지러워요. 어릴 때 유모차 안 탄다고 떼쓴 것도 아마 그래서였을 거예요. '내 인생은 내가 운전할래!' 이런 마음 아니었을까요? “

[주원의 거울 일기]

유모차를 거부하며 울던 아이를 안고 쩔쩔매던 날, 저는 속으로 '왜 너만 유난이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미끄럼틀 위에서 환하게 웃는 아이를 보며 깨달았습니다. 아이는 유난스러운 게 아니라, '내 인생의 핸들'을 남에게 맡기기 싫었던 것이라고. "내가 할 거야!"라는 그 고집은 훗날 그 어떤 거친 파도 앞에서도 스스로 노를 젓게 만드는 힘이 되었습니다.

[Chapter 13을 위해 참고한 전문 문헌]

1. Ayres, A. J. (2005). Sensory Integration and the Child.

중력 불안(Gravitational Insecurity)의 기제와 전정감각의 과민 반응을 설명하는 감각통합 이론의 고전입니다.


2. Schmidt, R. A., & Lee, T. D. (2011). Motor Control and Learning.

'피드포워드(Feed-forward)' 제어와 '피드백(Feed-back)' 제어의 차이를 설명하며, 스스로 생성한 움직임이 왜 더 안정적인지 과학적 근거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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