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면 괜찮아" - 중력불안 뒤에 숨은 강력한 주체성
8개월에 뛰어다닐 만큼 대근육 발달이 빨랐던 튼튼이가, 이상하게도 '바퀴 달린 것' 앞에만 서면 얼음이 되었습니다.
키즈카페의 꼬마 기차는 근처에도 못 갔고, 다른 아이들은 편하게 타는 유모차조차 거부해 저는 늘 덩치 큰 아이를 땀 흘리며 안고 다녀야 했습니다.
이것은 '중력 불안(Gravitational Insecurity)'이었습니다.
저는 아이의 척추 발달을 위해 일부러 보행기나 점퍼루를 태우지 않았는데, 그 때문에 아이는 '내 다리가 아닌 기계에 의존해 움직이는 감각'을 익힐 기회가 없었습니다.
예민한 전정기관(균형 감각)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물체를 '추락'이나 '생존의 위협'으로 인식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남자애가 왜 이렇게 겁이 많아"라고 했지만, 그것은 겁이 아니라 뇌가 보내는 '생존 신호'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네나 미끄럼틀은 곧잘 탔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더 무서워 보이는 놀이기구인데 말이죠. 차이점은 딱 하나, '누가 움직임을 시작했는가'였습니다.
스포츠심리학에는 '피드포워드(Feed-forward)'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예측 제어'라고도 하죠.
내가 발을 굴러 그네를 탈 때, 뇌는 이미 그 결과로 일어날 흔들림을 미리 예측하고 몸의 근육을 준비시킵니다.
"자, 이제 흔들릴 거야! 꽉 잡아!"
뇌 본부에서 미리 경고 신호를 보내주니 전정기관은 안심합니다. 이것이 바로 '운동 주체성(Agency)'의 힘입니다.
반면, 유모차나 모노레일처럼 타인이나 기계에 의해 움직임이 시작되면 뇌는 예측할 기회를 잃습니다.
"어? 갑자기 왜 움직여? 위험해!"
비상벨이 울리는 것입니다. 튼튼이는 겁쟁이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몸을 스스로 완벽하게 통제하고 싶은 '주체성'이 너무나 강했던 아이였습니다.
4살 때까지 정글짐이나 늑목 사다리 앞에만 서면 공포에 질렸던 이유도, 아직 내 신체를 정교하게 조절해서 높이를 이겨낼 '예측 회로'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등 뒤에서 "올라가 봐, 할 수 있어!"라고 미는 대신, 아이가 스스로 첫 발을 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네가 준비되면 출발해."
제가 아이에게 준 것은 도움이 아니라 '통제권'이었습니다.
6살이 되자 조금씩 높이에 대한 공포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7살이 된 어느 날 튼튼이는 마침내 정글짐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저를 내려다보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엄마! 나 여기까지 올라왔어!"
그 순간은 단순히 높이를 정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뇌가 보내는 공포 신호를 스스로 조절하고 통합해 낸, '자신감의 승리'였습니다.
"엄마,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아요. 저는 지금도 그래요. 친구들이 예고 없이 약속을 바꾸거나, 제 계획을 마음대로 휘두르려고 하면 너무 힘들어요. 마치 유모차에 묶여서 끌려가는 기분이에요.
그리고 자전거 뒷자리에 타는 건 지금도 무서워요. 운전하는 사람 마음대로 흔들리니까 불안하거든요. 차라리 자동차는 덜한데, 자전거는 진짜 제 몸을 맡겨야 하잖아요.
저는 그냥 제가 운전하는 게 제일 편해요. 핸들을 제가 잡고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남한테 맡기면 롤러코스터 타는 것처럼 어지러워요. 어릴 때 유모차 안 탄다고 떼쓴 것도 아마 그래서였을 거예요. '내 인생은 내가 운전할래!' 이런 마음 아니었을까요? “
유모차를 거부하며 울던 아이를 안고 쩔쩔매던 날, 저는 속으로 '왜 너만 유난이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미끄럼틀 위에서 환하게 웃는 아이를 보며 깨달았습니다. 아이는 유난스러운 게 아니라, '내 인생의 핸들'을 남에게 맡기기 싫었던 것이라고. "내가 할 거야!"라는 그 고집은 훗날 그 어떤 거친 파도 앞에서도 스스로 노를 젓게 만드는 힘이 되었습니다.
1. Ayres, A. J. (2005). Sensory Integration and the Child.
중력 불안(Gravitational Insecurity)의 기제와 전정감각의 과민 반응을 설명하는 감각통합 이론의 고전입니다.
2. Schmidt, R. A., & Lee, T. D. (2011). Motor Control and Learning.
'피드포워드(Feed-forward)' 제어와 '피드백(Feed-back)' 제어의 차이를 설명하며, 스스로 생성한 움직임이 왜 더 안정적인지 과학적 근거를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