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에서 도선사까지, 꿈의 롤러코스터 끝에 찾은 진짜 나
튼튼이의 꿈은 마치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몰랐습니다.
유아기에는 과학자와 스키 선수를, 초등 저학년 때는 '말통령(말 전문 수의사)'을 꿈꿨습니다. 머리로는 탐구하고 몸으로는 현장을 누비고 싶어 했죠.
6학년 때는 비트메이커가 되어 음악을 만들고 싶어 했고, 중1 때는 거대한 배를 움직이는 도선사와 스마트팜 엔지니어를 꿈꿨습니다.
주변에서는 "꿈이 왜 이렇게 자주 바뀌냐"며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저는 알았습니다. 튼튼이는 변덕을 부리는 게 아니라, 자신이 가진 다채로운 재능(피지컬, 탐구력, 예술성)을 모두 담아낼 그릇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중학교 때 실시한 STRONG 직업흥미검사 결과는 튼튼이의 혼란을 명쾌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튼튼이는 현장형(Realistic)과 탐구형(Investigative)이 동시에 높았고, 예술형(Artistic)까지 상위권이었습니다.
현장형(R): 몸을 쓰고 도구를 조작하는 것을 좋아함. (운동, 기계)
탐구형(I): 원리를 분석하고 전략을 짜는 것을 좋아함. (과학, 연구)
예술형(A): 창의적으로 표현하고 리듬을 타는 것을 좋아함. (음악)
이 세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직업을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과학자는 몸을 덜 쓰고, 운동선수는 머리를 덜 쓰는 것 같고, 음악가는 현장성이 부족해 보였으니까요. 그래서 튼튼이는 계속해서 새로운 꿈을 기웃거렸던 것입니다.
방황의 끝은 중학교 2학년 2학기, 9월의 어느 날 찾아왔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튼튼이가 평소와 달리 비장한 표정으로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엄마,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야."
수많은 길을 돌아왔지만, 결국 튼튼이의 심장이 가장 뜨겁게 반응하는 곳은 책상도, 실험실도 아닌 '그라운드'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습니다. 단순히 "운동이 좋아"가 아니었습니다.
"나 체육학을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어. 그리고 혼자 하는 운동 말고, 단체 구기 종목으로 시합도 나가고 메달도 따보고 싶어."
튼튼이의 가슴에 불을 지핀 건 '친구의 메달'이었습니다.
중1 때 방과 후 활동으로 함께 배구를 배웠던 친구가 엘리트 클럽에 들어가 전문적인 훈련을 받고, 대회에 나가 메달을 따는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전까지 운동을 '즐거움'으로만 대했던 튼튼이는, 친구가 땀 흘려 얻어낸 성취와 목에 건 메달을 보며 강렬한 '승부욕'과 '동경'을 느꼈습니다.
"나도 그냥 즐기는 거 말고, 진짜로 부딪혀서 증명해 보이고 싶어."
그것은 엘리트 체육을 향한 도전장이자, 자신의 피지컬을 극한까지 써보고 싶은 본능적인 외침이었습니다.
튼튼이의 결론은 완벽했습니다. '체육학'과 '단체 구기 종목(엘리트 스포츠)'은 튼튼이가 가진 모든 기질의 교집합이었습니다.
몸(R): 거친 필드를 누비며 에너지를 발산한다.
머리(I): 복잡한 전술과 신체 역학을 분석하고 탐구한다. (INTP 기질)
감성(A): 팀원들과 호흡을 맞추고 리듬을 탄다.
친구의 메달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비트메이커의 창의성과 도선사의 조종 능력, 과학자의 탐구심을 모두 '스포츠'라는 하나의 용광로 안으로 녹여냈습니다. 10년의 방황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은 튼튼이가 '자신에게 딱 맞는 옷'을 찾기 위한 치열한 피팅(Fitting) 과정이었습니다.
엄마, 사실 1학년 때 같이 배구했던 그 친구 있잖아요. 그 친구가 대회 나가서 메달 딴 사진을 봤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쿵쾅거렸어요.
예전에는 그냥 운동하는 게 재밌기만 했거든요? 근데 그 친구를 보니까 부러웠어요. 나도 저렇게 팀원들이랑 땀 흘리고, 죽을힘을 다해 싸워서 이기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어요.
과학도 좋고 음악도 좋지만, 제 심장이 제일 빨리 뛸 때는 역시 친구들이랑 작전 짜서 골 넣을 때예요. 이제는 구경꾼 말고, 저도 진짜 선수가 되어서 메달을 걸어보고 싶어요.
아이가 "엄마, 나 운동할래"라고 했을 때, 저는 놀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올 것이 왔구나' 싶었죠. 친구의 성취를 보며 질투가 아닌 '건강한 욕망'을 품게 된 아이. 8개월에 걷던 그 아이가, 이제는 자신의 인생을 향해 전력 질주할 준비를 마쳤다는 신호였으니까요.
1. 대리 경험과 자기 효능감 (Vicarious Experience)
Bandura, A. (1997). Self-Efficacy: The Exercise of Control.
나와 비슷한 모델(친구)의 성공 경험을 관찰하는 것(대리 경험)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과 동기를 형성하는 데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입니다.
2. 진로 정체성 형성 (Career Identity)
Marcia, J. E. (1966). Development and Validation of Ego-Identity Status.
진로 탐색과 위기(Crisis)를 거쳐 확신(Commitment)에 이르는 '정체감 성취' 단계를 설명합니다. 튼튼이의 방황이 성취를 위한 필수 과정이었음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