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Muhammad)는 누구인가?

by 장유철

1. 무함마드와 카디자의 결혼


이슬람의 최후 예언자(창시자)인 무함마드(Muhammad, A.D. 570-632)는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아버지를 여의어 유복자가 되었고, 여섯 살 때는 어머니마저 여의어 고아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무함마드는 할아버지에 이어 숙부의 손에서 성장하였고, 이후 그의 나이 25세에 카디자(Khadija)와의 결혼을 통해서, 그의 생애의 결정적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부연하면, 무함마드는 아라비아반도의 척박한 사막 도시인 메카에서 매우 궁핍한 삶을 이어가던 중, 15세 연상의 재력가이자 미망인이었던 카디자의 청혼을 받아들임으로써, 경제적 궁핍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카디자의 막대한 자산은 무함마드가 생업의 굴레를 벗어나서, 히라산(Mount Hira) 동굴에서 우주의 근원과 인간의 본질에 관한 깊은 사유에 전념할 수 있게 한 실질적인 토대가 되었습니다.


2. 히라산의 계시: 이끄라(Iqra)와 코란의 탄생


A.D. 610년, 마흔 살의 무함마드에게 인류사의 물줄기를 바꾼 운명적인 계시의 밤이 찾아왔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히라산 동굴에서 무함마드가 깊은 사유의 정점에 도달해 있을 때, 눈부신 빛과 함께 가브리엘천사가 홀연히 나타나서, “이끄라(Iqra: 읽으라)!”라는 엄중하고도 거부할 수 없는 천상의 명령을 내렸습니다.


당시 무함마드는 글자를 전혀 모르는 문맹(Ummi)이었으므로, “나는 읽을 줄 모릅니다”라고 세 번이나 답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브리엘 천사가 전하는 거룩하고도 신비로운 기운에 휩싸여, 무함마드의 입에서는 마침내 알라의 계시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 가브리엘 천사의 “이끄라”라는 명령에서 시작된 알라의 말씀들은 훗날 하나로 묶여 이슬람의 절대 경전인 쿠란(Qur'an)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쿠란은 무함마드가 자신의 철학을 설파한 것이 아니라, 오직 알라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세상에 전하는 순수한 매개자였음을 명징하게 의미합니다.


3. 예루살렘 승천: 종교적 권위의 완성


무함마드의 예언자적 권위는 “미라지(Miraj)”라 불리는 신비로운 승천의 사건을 통해 절정에 달하게 됩니다. 그는 가브리엘 천사의 안내로 예루살렘 성전산의 바위돔(황금돔)에서 하늘로 승천하여 아브라함, 모세, 예수 등 선대 예언자들을 만나고 마침내 알라를 배알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이 거룩한 승천의 사건은 무함마드가 단순히 지상의 지도자를 넘어 천상의 계시를 직접 확인한 존재임을 실증하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예루살렘이 메카, 메디나와 더불어 이슬람의 3대 성지로 신성시되는 것은 이러한 무함마드의 미라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4. 신념의 고난과 메카의 박해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라는 유일신 신앙과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라는 혁신적인 가르침을 선포하기 시작하자, 당시 메카의 기득권 세력이었던 쿠라이시부족은 거세게 반발하였습니다. 다신교적 전통과 카바신전을 통한 경제적 이득을 지키려던 이들에게 무함마드의 이러한 선포는 단순한 종교적 주장을 넘어 사회질서를 뒤흔드는 위협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무함마드와 그의 초기 추종자들은 쿠라이시부족의 끊임없는 조롱과 경제적 봉쇄, 그리고 잔혹한 신체적 박해를 묵묵히 견뎌냈습니다. 그러나 무함마드는 이러한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으며, 오히려 소외된 이들과 약자들을 포용하며 내면의 결속력을 다져나갔습니다. 메카에서의 이러한 시련은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지닌 강인한 생명력과 도덕적 저항정신이 싹트는 고통스러운 산고의 시간이라 하겠습니다.


5. 헤지라(Hijra)와 초승달: 공동체의 탄생


A.D. 622년, 무함마드는 생명의 위협을 극도로 느끼게 되자, 마침내 그의 추종자들이 기다리는 북쪽의 메디나(당시지명: 야스리브)로 이주를 결단하였습니다. 이 역사적인 이주를 “헤지라(Hijra: 성스러운 이주)”라 부르며, 이슬람은 이를 이슬람력의 원년으로 삼고 있습니다.


무함마드가 적들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사막의 밤을 가로지를 때, 하늘에는 은은한 초승달이 떠올라 어두운 밤길을 비추어 주었습니다. 무함마드의 갈 길을 밝혀 주던 이 초승달은 오늘날 여러 이슬람국가의 국기에 상징으로 새겨지는 문명사적 기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헤지라는 단순히 박해를 피한 도피가 아니라, 혈연중심의 부족사회를 넘어서 종교적 관용을 명시한 메디나헌장을 토대로 새로운 이슬람공동체인 “움마(Ummah)”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메디나에서 무함마드는 탁월한 정치가이자 군사전략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며, 이슬람국가의 실질적인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6. 메카 무혈입성과 임종: 완성된 사명


A.D. 630년, 무함마드는 마침내 1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고향 메카로 진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피의 보복 대신에 관용을 베풀어 무혈입성을 하였고, 아브라함이 만들었다는 카바신전의 우상들을 파괴함으로써 아라비아반도의 유일신 신앙시대를 열었습니다. 무함마드는 칼의 힘이 아닌 포용과 신념의 힘으로 그의 적들을 감화시켰으며, 이는 이슬람이 폭발적으로 확산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A.D. 632년, 무함마드는 자신의 정치적·종교적 고향인 메디나(Medina)에서 "모든 무슬림은 형제다"라는 감동적인 고별 설교를 남기고 예순둘의 나이로 평온하게 임종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무함마드는 이슬람을 창시하여, 여성의 권익신장과 인류평등의 유산을 실천하며 인류사의 물줄기를 바꾼 예언자로서, 그의 가르침은 오늘날까지도 수억 명의 가슴속에 명징한 빛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무함마드와 가브리엘천사
바라크를 타고 승천하는 무함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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