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ReasonAbility
Oct 07. 2020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빈말과 진심 사이의 줄타기
2020. 10.7.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석달 전 길거리에서 친한 언니와 오랜만에 마주쳤다.
반가운 마음에 길에 서서 수다를 떨다가 뒤의 일정 때문에 헤어지면서 조만간 시간 맞춰 저녁 먹자는 말을 나누었다.
그리고 오늘 그 언니로부터 식사 하자더니 왜 연락이 없냐는 톡이 왔다.
톡을 보자마자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고,
잊지 않고 연락해줘서 고마운 마음도 함께 들었다.
나 역시 밥 먹자는 약속을 잊지 않고 있었고 그 약속는 진심이었다.
다만 연락하지 못한 건 10년의 사회생활을 거치며 빈말에 연연해하지 않는 태도를 어설프게 배운 탓이었다.
별걸 다 기억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빈말은 못하는 성미라 지금보다 세상에 덜 찌들었을 때만 해도 으레 하는 약속이나 분위기에 들떠 하는 약속인지 모르고 다 기억하곤 했다.
혼자서만 약속을 기억하다 나중에서야 인사치레의 말이었다는 걸 깨닫고 실망하는 일을 몇번 겪고나니
'사회생활은 (상대가 빈말일수도 있으니)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짐짓 아닌척, 모르는 척, 쿨한 척 하는 것'임을 뒤늦게야 알게 됐다.
혹여나 으레 한 말에 냉큼 연락하는 넌씨눈이 되지 않기 위해 (정말로 막역한 사이가 아니면 또 구체적으로 날짜를 언급하지 않았으면) 'someday'를 기약하는 만남에는 연락하는게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빈말과 진심 사이에서 어설픈 눈치보기를 하다
오늘처럼 상대의 진심을 놓칠 뻔 하는 일이 생기는 걸 보며
비록 실망을 하더라도 상처를 받더라도 짐짓 아닌척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평상시에 하는 말 중에 진심 없이 허공에서 사라지는 인사말은 실로 어마어마 할테지만
그 중에 단 하나만이라도 진심이 있다면 응답을 해주는게 도리 아닐까 싶다.
가끔은 사람들과 엮이지 않고 외딴 섬처럼 살고 싶다가도
때론 개미집처럼 모두 얽히고 설켜서 살고 싶은 아이러니한 마음
#김환기 #어디서무엇이되어다시만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