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저러는 걸까.
윗층의 남자는
남편이 집을 나가면
곧바로 세탁실에서 물을 튼다.
그 소리는 세탁기를 돌리는 소리와 다르다.
위에서 물을 흘려보내는,
의도적인 소리다.
발소리는 더 크게 울린다.
집 안을 가로지르는 쿵쾅거림.
내가 여자라서,
힘이 약해 보일 거라 생각해서
저렇게 행동하는 걸까.
야만적이고 폭력적이다.
생각의 수준이 저 정도라는 사실이
때로는 불쌍하게 느껴질 만큼.
약자를 괴롭히는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들.
남편은 새벽에 일을 나가고
평일 저녁이면 아이와 나만 남는다.
그때 소음은 더 심해진다.
그래서 잠드는 방을 제외한
모든 불을 켜고 잔다.
밝음으로 두려움을 밀어내듯이.
이번에 처음 알았다.
건물주가 사람을 고용해
조직처럼 건물을 운영하는 집도 있다는 것을.
2월 안에 나가야 해서
여러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들은 이야기다.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운영되는 건물도 있다고 했다.
무서웠다.
마흔이 되어 경험하는 세상은
롤러코스터 같다.
예상하지 못한 굴곡이
숨 돌릴 틈도 없이 이어진다.
이 집에 들어온 내 선택이 잘못이었을까.
그래도 이 억울함을
어디엔가 말하고 싶다.
더 아이러니한 건
이곳이 치안이 좋다고 알려진 동네이고
월세가 90만 원이라는 사실이다.
화장실을 쓰는 것조차 눈치 보이는 집.
쇠가 떨어지는 소리,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맞춰 울리는 소음.
경찰에 녹음을 하여 신고하는 것도 지쳤다.
우린 2월 말까지 나간다고 했다.
나중에 혼자 살게 되면
이런 취급을 또 받아야 하는 걸까.
남편과 떨어져 살게 되면
더 힘들어지는 걸까.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굴곡이 심한 걸까.
이 상황에서 남편마저 없었다면
나는 견뎌낼 수 있었을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완벽하지 않아도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해야 하는 걸까.
깡패 같은 집.
그 안에서 나는
또 하루를 버틴다.
요즘은
인생의 긴 우울의 터널을 걷는 기분이다.
일을 하지 않아서 우울한 걸까.
하루 대부분은
잠과 청소로 채워진다.
잠들었다가 눈을 뜨면
다시 터널 한가운데에 서 있는 기분이다.
항우울제를 먹어도 우울하고
먹지 않아도 우울하다.
차라리 갑상선에 문제가 있어서
기력이 없고 우울한 거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약을 먹으면 나아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기력은 돌아오지 않고
우울은 물러설 기미가 없다.
마흔이면
오래 살았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정신과 약을 오래 복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몸이 망가졌다는 글을 보면
두려움이 밀려온다.
나는 죽을 용기도 없으면서
사는 것이 버거워
또 하루를 계산한다.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면
이 우울도 조금은 옅어질까.
시련과 고난이 너무 많다고
자주 느낀다.
그래도 가끔은 상상해 본다.
이 긴 터널의 끝에서
세상 속으로 걸어 나가
“그때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을.
그 날을 위해
오늘을 견딘다.
이렇게 우울해도
매일 씻고,
청소하고,
정리하고,
빨래를 한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무너지지 않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내 우울의 근원은
세상의 냉정함을 견디지 못하는
약한 정신력 때문일까.
차라리 세상의 잇속에 밝은 사람이었다면,
기회를 붙잡고
놓치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덜 우울했을까.
산다는 건
어쩌면 우울과 동행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이 우울 속에서도
인생의 낙을 발견하고
결국 웃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원래
사람을 좋아했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세상은
따뜻함보다 냉정함을 먼저 말한다.
마흔이 된 나에게
그레이빛 무지개를 건네는 것 같다.
젊은 날의 나는 당당했고 밝았다.
지금의 내 목소리는
비에 젖은 것 같다고 한다.
이 터널을 뚫고
세상의 밝은 빛과 마주해
오늘의 우울을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