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우울에 관한 전시를 다녀왔다. 우울증을 겪은 사람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만든 가사, 영상, 글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벽에는 그들이 느낀 감정이 타이포그래피로 표현되어 있었다. 그 문장들은 거울이나 돋보기를 통해 들여다봐야 제대로 읽을 수 있었는데, 마치 가까이 다가가야만 보이는 마음 같았다. 전시를 보고 나오며 문득 생각했다. 나에게도 우울했던 시기가 있었을까.
회사를 다닐 때도 많이 울고 힘들었지만, 곰곰이 떠올려보니 가장 깊게 가라앉아 있던 시기는 10대 때였던 것 같다. 그때 나는 한 친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무리에 속해 있었다. 그 친구는 웃기고 재밌고 리더십도 있어서 자연스럽게 여러 명이 모여 다니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친구가 나를 험담하기 시작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남학생이 나를 좋아한다는 이유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무리를 벗어나도 됐을 텐데, 왜 그렇게까지 그 안에 있으려고 애썼는지 모르겠다. 싫어도 웃고, 불편해도 맞추고, 어떻게든 남아 있으려고 했던 나.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세 보이고 싶어서 항상 눈썹을 찡그리고 다녔던 것 같다. 중학교 때 찍은 사진을 보면 표정이 너무 슬퍼 보여서, 지금의 내가 대신 마음이 아프다.
그 무리 안에서는 누군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밀려나거나 배척당했다. 나는 그게 무서웠다. 그 관계가 끝나면 완전히 혼자가 될 것 같아서. 그래서 학교가 가기 싫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 친구 옆에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말해줄 수 있다면, 세상은 그 친구 하나가 아니라고, 다른 친구들도 많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이 되었고, 자존감이 낮았던 시간도 길었다. 그 시절이 나에게 꽤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화가 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시간이 지나갔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한다. 만약 그 관계가 계속 이어졌다면 그 우울감이 더 길어졌을지도 모르니까.
우울은 생각보다 조용히 찾아온다. 서서히 물에 잠기듯 조금씩 가라앉는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쯤에야 “이러다 정말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동시에 “이대로 사라져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함께 따라온다. 그래서 더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주변을 더 살피게 된다. 유난히 조용해진 사람, 축 처져 있는 사람이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 사람이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걸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잘 버텼다고, 지금까지 와줘서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