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do de Res)
구내식당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히스패닉 메뉴가 많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발길이 닿지 않았다. 내 입맛에는 맞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 때문이었다.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선을 긋고 있었던 셈이다.
식당 안에는 급식용 사각 스테인리스 통 다섯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국물이 가득 담긴 큰 통 안을 들여다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 이건 뭐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건더기의 크기였다. 뼈가 붙은 내 주먹만 한 소고기, 큼직하게 썬 당근, 그리고 국물 위로 얼굴을 내민 알이 꽉 찬 노란 옥수수 토막들.
투박했다. 그래서 더 낯설었다.
그 투박함 앞에서 잠시 말문이 막혔다.
정갈하게 정리된 메뉴보다 오히려 이 음식은 스스로를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있는 그대로 드러낸 재료들이 묘하게도 순박하면서도 자신 있어 보였다.
국물을 한 숟가락 뜨는 순간 오래 끓였다는 사실이 단번에 전해졌다. 자극적이지 않은데도 깊고 구수한 맛이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몸이 피곤했고 이유 없이 한국의 해장국이 떠올랐다. 그래서였을까. 이 국물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이라기보다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위로처럼 느껴졌다.
음식 이름이 궁금해, 식재료에 대한 지식도 많고 똑똑한 히스패닉 동료 J에게 문자를 보냈다. 동양에서 온 동료의 질문이 반가웠던 걸까? 답장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그 짧은 문자 한 통이 우리의 거리를 조금 좁혀 주었다.
그 수프의 이름은 ‘칼도 데 레스’. 직역하면 ‘소고기 국’. 특별한 날을 위한 음식이 아니라 집에서 가족을 위해 끓이는 일상의 음식이라고 했다.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한 그릇 먹고 나면 다시 버틸 힘이 생기는 음식.
그 설명을 듣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국물에는 누군가를 impress 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대신 하루를 무사히 살아내게 해주는 힘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음식은 때로 언어보다 빠르게 마음에 닿는다는 것을.
국물에 푹 잠겨 나온 큼직한 옥수수를 나무젓가락으로 가운데를 꽂아 들고 천천히 돌려 먹었다. 톡톡 터지는 식감과 은근한 단맛이 국물 사이사이를 정리해 주었다.
국물 한 숟갈 먹고, 옥수수를 한 입 베어 물고 다시 국물을 마셨다. 그 단순한 반복이 이상하게도 편안했다. 한국 국밥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방식의 따뜻함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날 내가 마주한 것은 음식 하나가 아니었다. 경험하기도 전에 내려버린 나의 결론이었다.
편견은 낯선 것을 만나기 전에 이미 답을 정해버린다.
칼도 데 레스는 설명하지도, 설득하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국물로 알려줬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