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시장: 이방인의 기억 가판대
독일 도시의 국립음대들을 모두 돌아다니며 시험을 치르는 것은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하고 제도적으로도 약간의 문제는 있다. 실례로 난 군대를 다녀온 나이로 유학을 온 처지이기에 나이 제한으로 시험 자체를 응시할 수 없는 곳도 존재한다.
선배 응시생들의 자문으로 숙지한 심사위원의 정해진 질문을 되뇌어 보며 시험장에 들어선다. 대개 질문의 순서는 이러했다. 첫 번째 ‘어디서 왔니?’ 두 번째 ‘몇 살이니?’ 세 번째는 소프라노, 알토, 테너, 바리톤 등의 정체성을 묻고 네 번째 ‘부를 곡은 무엇입니까?’이다.
고난의 무대는 여기부터이다. 질문 순서 따위는 언제든 바뀐다는 것이다. 내용조차도.
’몇 살이니?‘
’ 한국에서 왔어요.‘
심사자의 실소가 보인다.
’ 국적은?‘
’ 테너입니다.‘
한숨이 들린다.
’그냥 준비한 곡 불러라.‘
’ 27살입니다.‘
조용하길래 반주자에게 눈길을 주고 노래를 시작한다.
학교를 들어가려고 왔고 학교를 들어갈 수 없는 것에는 정당한 변명은 없다. 어느새 가을학기를 위한 시험 기간도 끝났다. 한국으로 치면 재수생이 되었다. 감흥은 없다. 그냥 멍하다. 내부의 자극으로 스스로가 이끄는 의지를 불태우기에는 상당히 버거운 나이란 사실도 마찬가지다. 나는 외부의 자극에 휘둘리는 어린 아이다. 불행을 선택하는 건 나 자신이지 누가 주는 것 같지는 않던데. 이건 틀림없나. 정당한 실패는 없다. 합리적인 선택도 없다. 많이 일하고 그만큼 받으면 그만인가. 이게 썩 잘되지는 않는다. 그런 것이 싫어서 독일을 왔다.
하지만 ’ 신‘은 그렇게 구원장소를 쉽게 제공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확인의 장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