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우울증 노래와 여학생

벼룩시장: 이방인의 기억 가판대

by 목림


후배의 생일이다. 재수생이 할 일이 뭐가 있나. 새로 유학을 온 후배 생일잔치나 기웃거리는 거지. 외국에 유학이라는 거창한 뜻을 품고 온 자의 태도는 아니지 않나 싶지만 이미 와서 쭈그려 앉아 있다. 외출할 때 자주 모자를 푹 눌러쓰는 습관이 생겼다. 그렇게 싫어하던 모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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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교회에서 처음 보았던 여학생이 보인다. 후배 지인 여학생의 친구이다. 그런데 자꾸 거슬린다. 아니 자꾸 보인다. 후배의 집은 ‘뮌헨’의 외곽마을 ‘Pasing’이라는 곳에 있는데, 작지만 예쁜 정원이 있는 독일인 노부부 집의 반지하에 꾸려진 소박한 자취 공간이다. 한국에서부터 자취에 훈련된 후배는 가난한 집에서 자랐고 요리도 잘하고 생활력도 강하고 무엇보다 노래도 잘한다. 부러운 녀석을 보면 더 작아진다. 내년에 시험은 이 녀석과 함께 치르게 되겠지.


친구는 곧 합격한 학교가 있는 바이마르로 갈 것이고 나는 여기 남아 새로 온 녀석들과 다시 시험을 치르겠지.


‘남자친구는 있어요?’ 뜬금없는 나의 질문에 그 여학생이 대답해 준다.


‘남자친구는 다 정리하고 오는 거 아닌가요.’


나의 질문은 너무 준비 없고, 창피하고, 생각 없고, 바보 같다. 거두고 싶다.


그런데 그녀의 대답은 무례하지도 않고 가식적이지도 않다. 내용은 무시무시한데. 게다가 예쁘다. 후배 생일 집에 오기 전 내 방에서 최모 가수의 ‘우울증’이라는 노래를 난 너무 반복해서 듣고 왔다. 이게 화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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