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바닥에 누운 빨래는 마를까. 식어버린 강된장

벼룩시장: 이방인의 기억 가판대

by 목림


잠이 없는 후배가 두들겨 깨운다. 형. 난 지금 어학원 간다. 오늘 점심 약속 때 보자고.

녀석이 문을 열고 나간다. 게슴츠레 후배의 뒷모습을 보고 꾸역꾸역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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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핑계로 어학원은 잠시 쉬고 있다. 그리고 올 것이 왔다. 별안간 구석에 있는 빨래걸이가 와르르 무너진다. 정신없이 세탁기에 때려 넣은 거대한 양의 옷가지들을 버티기에는 애초에 미덥지 않았던 빨래걸이가 휘어지면서, 색깔을 잃은 옷들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1년 전 벼룩시장에서 산 나의 빨래걸이가 속절없이 무너졌다. 고문실 같던 전 기숙사의 빨래터에서 나온 후, 당당한 나와 후배의 원룸에 설치되어 있는 세탁기의 호사가 무색해진다. 애초에 받을 수 없던 사치였던가. 방법은 없다. 그냥 바닥에 널어 눕혀 놓는다. 꼴이 말이 아니다. 오후에 초대받은 여학생의 점심시간으로 마음을 달래고 있다. 잘도 간다. 시간은.


열심히 공부하고 온 후배와 열심히 빨래를 수습한 내가 여학생들의 숙소로 밥을 먹으러 간다. 남자들은 그렇다. 아니, 나는 그런 편이다. 여자들은 음식을 정말 잘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초대까지 한 것은 엄청난 자신감이기에 대단한 음식을 기대한다. 착한 여학생들이 갓 지은 흰쌀밥을 내어온다. 냄새도 좋고 김치와 정성껏 삶아온 양배추 쌈도 있다. 자 이제 메인을 기다린다. 고기와 채소가 들어있는 강된장이 나온다. 더 이상의 메뉴는 없네. 맛은 기가 막히게 좋다. 그럼 되었지.


애초에 목적은 그 친구의 초대였으니. 음악 얘기. 시험 얘기. 전공 얘기. 호구조사.


편견은 남녀도 구분하고 경험은 환경을 재단한다. 그리고 목적을 이루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실패에 화가 나지 않고, 실수에 후회하지 않는다. 강된장이 서서히 서늘해진다. 빨래가 바닥에서 마르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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