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데리고 나왔다.

상처를 두고 돌아선 기록 [시린 신앙 1]

by 캔디의 여백

교회를 나왔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고, 아마 마지막도 아닐지 모른다.
나는 사람이 그리워 들어갔다가, 상처를 안고 나오는 길을 여러 번 걸었다.

그곳에도 내가 여러 번 보아온 익숙한 공기가 있었다. 권위는 쉽게 앞섰고, 순종은 자주 질문보다 더 거룩한 말처럼 들렸다.

강해야 한다는 말은 쉽게 오갔지만, 상처 입은 마음이 머물 자리는 넉넉하지 않았다.

위로보다 버텨야 한다는 요구가 앞섰고, 그 여러 구조적 문제들 속에서 나는 조금씩 숨이 막혀 갔다.

아무도 나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던 밤이 있었다.
그 밤 나는 오래 잠들지 못했다.
뒤척이다가, 몇 번이고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며 불면의 시간을 버텼다.
가슴은 답답했고, 마음은 이미 먼저 그 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그 밤 나는, 이제는 나를 데리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오는 날, 나는 끝내 작별 인사를 했다.
담담한 척 말을 마치고 돌아섰지만, 서러워 울고 말았다.

깊이 관여할수록 문제는 늘 더 크게 다가왔다.
이번에도 관계는 어긋났고, 말은 남았고, 침묵은 더 깊어졌다.
누군가는 이런저런 이유로 나를 밀어냈고, 누군가는 내게 기대어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나는 그 사이에서 끝까지 이해하려 했고, 끝까지 품으려 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닳았다.

가끔은 생각한다.
내가 조금만 덜 진심이었더라면,
조금만 덜 믿었더라면,
조금만 덜 사랑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다치지는 않았을 텐데 하고.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니다.
나는 원래 사람을 긍휼히 여기려 했고,
약한 어깨를 지나치지 못했고,
말보다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글로도 전하려 했다.
그러나 그 정직한 글을 불편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는 떠났다.
도망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가식으로 웃으며 함께할 수 없어서,
상처를 방치한 자리에서 나왔다.
사람을 포기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을 더 이상 소모시키지 않기 위해 나왔다.

작년 12월 내내 나는 아파하며 글을 썼다.
그 글들은 누군가를 향한 칼날이 아니라, 그 거리를 메우려 내 골수를 깎아 쓴 통곡의 기도였다.
누군가 내 글에서 위로를 얻었다면,
그건 내가 대신 앓았던 파편들이 문장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마음은 아프다.
여전히 누군가는 불쌍해 보이고,
여전히 나는 연민에 약하다.
그래서 이별은 더디고, 정리는 늦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번에는 무너진 믿음을 두고 나온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데리고 나왔다는 사실이다.

울면서도,
후회하면서도,
스스로를 책망하면서도
나는 이번에는 나를 버리지 않았다.

아무도 손을 잡아주지 않던 밤에 나는 내 손을 잡았고,
아무도 “잘했다” 말해주지 않던 자리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래도 괜찮다.

이 선택은 실패가 아니다.
나는 끝내 그 교회를 구하지 못했고, 그 사람들을 바꾸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미련 없이 보낸다.
이름 붙이려 애썼던 관계도,
끝까지 이해받고 싶었던 마음도,
나 혼자 붙들고 있던 연민도.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상처를 대신 앓아줄 만큼 여유로운 사람이 아니다.
이제는 나의 상처를 지키는 쪽을 택한다.

언젠가 다시 사람을 만날 수 있겠지.
언젠가 다시 믿음도, 교회도 조심스럽게 열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상처 입은 내가 내 옆에 앉아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그래도 나는 나를 데리고 나왔다.
그 한 문장으로 오늘의 나에게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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