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가 웃고 있는 밤

혼돈이 원하는 것은 우리의 포기다

by 캔디의 여백

조커는 무서운 악당이다.
그런데 조커가 진짜 무서운 이유는 칼이나 총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웃는다.
세상이 무너져도 웃고, 사람이 쓰러져도 웃고, 비극이 벌어져도 웃는다.
보통 사람은 큰일이 나면 얼굴이 굳는다.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적어도 잠깐은 멈춘다.
그런데 조커는 웃는다.
그래서 더 섬뜩하다.
그 웃음은 괜찮다는 웃음이 아니다.
어차피 세상은 이런 거라는 웃음이다.
너희가 믿는 질서도, 선함도, 인간다움도 결국 다 무너진다는 웃음이다.

조커의 무기는 폭력이 아니다.
혼돈이다.

그는 세상을 다 부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세상이 원래부터 믿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규칙도, 질서도, 선함도 다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조커가 제일 바라는 순간은 선한 사람이 선함을 포기하는 순간이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않게 되는 순간이다.
서로를 놓아버리는 순간이다.

악당의 승리는 폭발에서 끝나지 않는다.
포기에서 완성된다.

이상하게도 요즘은 조커가 영화 속에만 있는 것 같지 않다.

현실의 조커는 꼭 하얀 분장을 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말투로 나타난다.
전쟁을 카드처럼 섞는 말투.
사람의 생사를 숫자로 줄여 말하는 습관.
누군가의 죽음을 협상으로, 누군가의 눈물을 비용으로 정리해버리는 태도.
그런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세상은 이미 한 번 무너진 것이다.
폭탄이 떨어지기 전에도,
화면에 잿더미가 잡히기 전에도,
말이 먼저 사람 마음을 황폐하게 만든다.

조커가 더 무서운 건
가끔 틀린 말만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세상은 실제로 불공평하다.
힘 있는 사람은 약한 사람을 짓밟고,
규칙은 늘 강한 쪽으로 기울고,
착하게 산다고 꼭 지켜지는 것도 아니다.
조커는 그걸 안다.
그래서 그의 말은 때로 이상할 만큼 정확하다.

원래 세상은 그래.
결국 다 무너져.
믿어봐야 뭐하냐.

문제는 그 말이 설명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 말은 사람을 체념으로 끌고 간다.
아, 원래 이런 거구나.
아, 더 기대 안 해야지.
아, 이제 나도 접자.
이렇게 마음이 식어간다.

조커가 원하는 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조커가 끝내 모르는 것이 있다.

세상이 이래도 끝까지 마음을 닫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손해를 알면서도 함부로 누군가를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길 수 없어 보여도 자기 몫의 양심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다 무너졌다고 말하는 세상 앞에서도,
끝내 자기 안의 마지막 한 조각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조커는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 상처를 입고도 조롱하는 쪽으로 완전히 넘어가지 않는지,
왜 손해를 보면서도 끝내 잔인해지지 않는지,
왜 계산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 마음을 아직 품고 있는지 모른다.
그는 인간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이 끝내 남기는 것들의 힘을 모른다.

혼돈은 사랑을 이기지 못한다.
웃음은 눈물을 지우지 못한다.
전쟁은 그리움을 없애지 못한다.
권력은 양심을 살 수 없다.

조커가 아무리 크게 웃어도,
세상 어딘가에서는 오늘도 누군가 밥을 나눠주고 있다.
누군가는 끝내 떠나지 않고 곁을 지키고 있다.
누군가는 다 무너졌다고 말하는 세상 앞에서도,
그래도 한 사람은 포기하지 않으려 애를 쓴다.

세상을 붙들고 있는 것은 거대한 구호가 아니다.
드러나지 않는 책임,
계산되지 않는 친절,
끝내 다 닫아버리지 않는 마음,
그런 작은 것들이다.
세상은 그런 것들 덕분에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오늘은 속상하다.
조커가 너무 크게 웃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당당하고, 너무 뻔뻔하고, 너무 확신에 차 있다.

그 웃음 앞에 서 있으면
세상은 더 불공평해 보이고,
사람은 더 작아 보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없어 보인다.

나도 잠깐은 다 접고 싶어진다.
체념이 제일 편한 대답처럼 들리는 밤이 있다.

그런데 조커는 바로 그 순간을 기다린다.
우리가 지치는 순간,
우리가 포기하는 순간,
우리 마음까지 그 웃음에 넘어가는 순간을 기다린다.

조커가 이기는 순간은 세상이 무너질 때가 아니다.
우리 마음이 그 웃음에 익숙해질 때다.
잔인함을 원래 그런 일처럼 넘기고,
무너짐을 뉴스처럼 소비하고,
더는 놀라지도 않는 얼굴로 살아가기 시작할 때,
그때 조커는 이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마음까지 그 웃음에 넘겨주지 않으려 한다.

세상이 여전히 불공평해도,
혼돈이 여전히 목소리를 높여도,
그 웃음을 닮는 쪽으로는 가지 않으려 한다.
체념이 제일 쉬운 말처럼 들리는 밤에도,
끝내 거기까지는 무너지지 않으려 한다.
조커는 웃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웃음이 진실이 되는 순간까지,
내가 같이 웃어줄 생각은 없다.

혼돈이 원하는 것은 우리의 포기다.

그래서 오늘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마음 하나가,
조커가 가장 싫어하는 마지막 질서일 것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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