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니까

[제5부] 이별 후 무너진 나를 비로소 정면으로 마주하다

by 잼민아씨

이별은 단 한 번의 선고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내 세계가 한 뼘씩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지독한 형벌에 가까웠다. 머리로는 끝임을 알면서도 가슴은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내가 왜 헤어져야만 했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그 한 문장의 답을 찾기 위해 나는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자학적인 복기를 반복했다.

특히 나를 괴롭힌 것은 이별하던 날의 그 감각적인 기억들이었다. 그날 그의 입에서 나오던 서늘한 말투, 어떤 감정도 읽히지 않던 불투명한 눈빛, 그리고 공기를 얼려버릴 듯 차갑게 식어버린 목소리. 그 모든 것들 사이에서 나는 더 이상 사랑이라는 온기를 단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한때 나를 가장 따스하게 감싸던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얼음송곳이 되어 내 심장을 찌르고 있었다. 그 잔인한 대비가 너무도 선명해서, 나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숨을 쉬는 법을 잊어버리곤 했다.

어떻게든 이 늪에서 빠져나와 보려 유치하고도 처절한 발악을 해보기도 했다. 책상 앞에 앉아 종이를 꺼내 그의 단점들을 악착같이 적어 내려갔다. 나를 외롭게 했던 무심함, 약속을 가벼이 여기던 태도, 나를 답답하게 여기던 그 오만한 표정들. "거봐, 이런 사람이랑은 헤어지는 게 맞았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뇌까려 보았지만, 종이 위에 적힌 글자들은 금세 나의 눈물에 번져 형체를 잃었다. 미워하려 애쓸수록 그 증오의 이면에는 더 거대한 그리움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꼴밖에는 되지 않았다.

다시 일상을 되찾겠다고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켰던 날도 있었다. 글이라도 쓰면, 이 지독한 몰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깜빡이는 커서 너머로 보이는 것은 하얀 화면이 아니라, 나를 밀어내던 그의 서늘한 얼굴이었다. 자판 위에 놓인 내 손가락은 힘없이 떨렸고, 단 한 문장도 완성하지 못한 채 나는 다시 노트북을 덮어야 했다. 의지조차 나를 배신하는 그 굴욕적인 무력감 속에서, 나는 다시 침대 위로 주저앉아 짐승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그날의 울음은 그저 슬픔 때문만이 아니었다. 억지로 일어서려 했지만 결국 상실된 욕구들에 짓눌려 다시 고꾸라지는 나 자신에 대한 비참함 때문이었다. 먹고 싶은 것도, 자고 싶은 것도, 심지어는 내일을 꿈꾸는 것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상태. 나는 그렇게 몇 번이고 일어섰다 무너지기를 반복하며, 내 안의 모든 눈물을 쏟아내고 또 쏟아냈다. 바닥 아래에 더 깊은 바닥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처절한 무너짐의 반복 속에서 온몸으로 체득했다.

하지만 그 지옥 같은 시간을 통과하면서 역설적으로 나를 제대로 마주하기 시작했다. 평생 타인의 눈치를 보며 그들의 사랑을 구걸하던 내가, 비로소 거울 속의 앙상하고 비루한 나를 정면으로 바라본 것이다. 그 지독한 독대는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나를 이해하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내가 왜 그토록 아팠는지, 왜 그토록 이별의 답을 갈구하며 나를 파괴했는지... 그것은 내가 바보 같아서가 아니었다. 그만큼 내 마음이 투명했고, 그 사랑에 내 존재를 전부 걸었을 만큼 진실된 마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나는 그 암흑 같았던 시간을 더 이상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보지 않았다면 나는 결코 내가 얼마나 단단한 땅을 딛고 서 있었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별 후에야 비로소 시작된 이 지독한 홀로서기는, 나를 미워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를 온전히 껴안기 위한 필수적인 통과의례였다.

비록 지금도 불쑥 찾아오는 그날의 차가운 목소리에 휘청이곤 하지만, 나는 이제 서두르지 않는다. 무너지는 것도, 다시 울음을 터뜨리는 것도 모두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가장 정직한 증표이니까. 나는 오늘도 그 아픈 증표들을 하나하나 쓰다듬으며,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나 자신에게로 돌아가고 있다. 그 아픔조차 이제는 나의 일부로, 나의 흉터로 정당하게 인정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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