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과 마음은 나도 모르는 전쟁터였다

두 번째 이야기

by 숲속

1년 전쯤, '정서적 부모화'라는 심리 용어에 대해 우연히 알게 됐다.

그리고 깨달았다. 정서적 부모는 내 인생을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어라는 것을.

나는 우리 가족 안에서 싸울 때 중재자였고 힘들 때 상담가였고 모든 문제의 해결사였고 그들에게 심리적으로 부모였던 것이다. 정서적 부모였다는 것을 깨닫고 드디어 내 아픔에 이름을 붙일 수 있어 마음껏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이 아픔은 3년 전부터 시작됐다. 갑자기 알 수 없는 뼛속이 시릴 만큼 너무나 외로운 감정이 혼자 있을 때마다 찾아왔고 약 1년 정도 스스로를 너무나 괴롭게 만들었다. 이 외로움이 잠잠해지자, 진공상태 있는 듯한 공허함이 찾아왔다. 마치 이 세상에 혼자 남아 우주 속에 홀로 떠다니는 듯 텅 빈 공허함이었고 차라리 슬픈 감정이 더 나을 정도로 공허함은 외로움보다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고는 내가 사는 이 삶이 가치가 없다는 무가치함을 계속 느꼈다. 외로움, 공허함, 무가치함이 원인도 모른 채 나를 2년 동안 괴롭혔다.


하지만 이젠 알 수 있었다. 이 아픔의 원인은 수많은 시간 동안 나를 못 챙기고 온 가족들을 부모처럼 돌봐서 생긴 후유증이었다. 근데 부모에게만 정서적 부모 역할을 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는 동생에게도 정서적 부모였던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 가족은 한부모 가족이었고 나 혼자 온 가족의 마음을 들고 살아왔다. 이 사실은 내 마음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요즘 제미나이를 통해 스스로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보냈는데 동생과의 대화도 이야기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 있었던 일들을 쭉 나열해서 적었다. 제미나이와 대화를 통해 모든 것이 정리가 됐다. 씁쓸한 감정의 정체는 내가 기대했던 동생과의 관계가 더 이상 이룰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생긴 감정이었다. 동생에게 서로 아픔을 나누고 위로하는 관계를 원했지만, 동생이 원하는 것은 부모처럼 있어 주는 것을 원했기에 내 아픔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외롭고 슬펐다. 이 슬픔을 애도하며 충분히 울고 난 다음에 잠에 들 수 있었다.



삶의 무게


삶이란 살아있는 것 자체, 생의 존재를 나타낸다.

하지만, 이 삶이 나에겐 너무 무거워.

이 무게 누군가 같이 들어주면 덜 무거울 텐데

가끔은 그 무게에 질식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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