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원문>
친구들이 그에게 몇 명의 여자를 가져 봤느냐고 묻자. 그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래도 계속 캐묻자 그는 "대충 이백 명쯤 될 거야."라고 했다. 이를 부러워한 몇몇 친구가 허풍이라고 잘라 말하자 그는 아니라고 했다.
"그렇게많은 건 아니지. 내가 여자와 관계를 맺은 지 이제 거의 25년이 넘었어. 200을 25로 나눠 봐. 매년 새 여자가 여덟 명쯤 있었던 셈이지. 그리 많은 건 아니잖아."
그는 그 무수한 여자에게서 무엇을 추구했던 것일까? 여자들의 무엇이 그토록 그를 끌어당겼을까? 육체적 사랑이란 똑같은 것의 영원한 반복이 아닐까? 천만에. 거기에는 상상하지 못하는 몇 퍼센트의 부분이 항상 남게 마련이다.
잘 차려입은 여자를 보면 그는 저 여자가 다 벗으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할 수 있지만 개념의 근사치와 현실의 정확성 사이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조그만 격차가 잔존하며, 바로 이런 격차가 그를 편히 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부분을 추구하는 것은 나체의 발견에 멈추지 않고 그 이상까지 진행된다. 저 여자는 옷을 벗으면서 어떤 표정을 지을까? 성 행위를 하면서 어떤 말을 할까? 신음 소리는 어떤 음정일까? 쾌락의 순간에 그녀의 얼굴에는 어떤 주름살이 새겨질까? '자아'의 유일성은 다름 아닌 인간 존재가 상상하지 못하는 부분에 숨어 있다.
인간은 모든 존재에 있어서 동일한 것, 자신에게 공통적인 것만 상상할 수 있을 따름이다. ‘개별적 자아’란 보편적인 것으로부터 구별되고 따라서 미리 짐작도 계산도 할 수 없으며 그래서 무엇보다도 먼저 베일을 벗기고 발견하고 타인으로부터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토마시는 의료 활동을 시작한 후 처음 십 년 동안 오로지 인간의 뇌만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자아를 포착하는자가 그녀의 오르가슴 때문에 흠뻑 젖었는데도 자신은 쾌락을 느끼지 못했다고 단언했던 것이다. "나는 쾌락을 찾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찾아. 행복 없는 쾌락은 쾌락이 아니야." 달리 말하자면 그녀는 그의 시적 기억의 문을 노크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은 닫혀 있었다. 토마시의 시적 기억에는 그녀를 위한 자리가 없었다. 토마시와 테레자의 사랑은 그와 다른 여자와의 사랑이 끝났던 시점에서 정확하게 시작되었다. 그 사랑은 그를 여자 사냥에 나서게 했던 필연성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테레자의 그 어느 것도 들춰내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완전히 드러난 상태인 그녀를 만난 것이다.
그는 세계의 육체를 열기 위해 사용하는, 그의 상상력의 메스를 채 손에 쥐기도 전에 그녀와 정사를 했던 것이다. 그녀가 정사 중에 어떠할 거라고 궁금해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이미 그녀를 사랑해 버린 것이다. 사랑의 역사는 그 후에나 시작되었다. 그녀의 몸에서 열이 나는 바람에, 그는 다른 여자들에게 그랬듯이 그녀를 돌려보낼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리맡에 무릎을 꿇고 앉자 불현듯 그녀가 바구니에 넣어져 물에 떠내려 와 그에게 보내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은유가 위험하다는 것을 나는 이미 말한 적이 있다.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계산적이고 논리적인 사랑
1.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을 '관심'이나 '애정'이라는 모호한 단어로 포장한다. 타인의 내면을 궁금해하고, 그가 가진 고유한 매력을 발견하려 애쓰는 것을 관계의 미덕이라 믿는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타인에게 매혹되는 순간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오히려 음흉한 지적 탐구심에 가까운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다.
2.
통념상 타인을 알아가는 과정은 약간 T적인 시선에서 데이터의 축적이다. 이름, 직업, 취향, 가치관을 수집하다 보면 그 사람이라는 개념이 완성될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충분히 대화하고 시간을 공유하면 상대를 다 알았다고 자만하거나, 혹은 더 알 것이 없다는 허무에 빠져 관계를 정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극 중 토마시가 보여주는 기행에 가까운 여성 편력은 이 지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준다. (적어도 나에게는)
3.
토마시에게 섹스는 쾌락의 도구가 아니라 '자아의 유일성'을 확인하기 위한 메스였다. (직업이 의사) 그는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행위 속에서도 결코 예측할 수 없는 조그만 격차를 집착적으로 쫓는다. 저 여자는 옷을 벗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까, 절정의 순간에 어떤 소리를 낼까. 이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라기보다, 자신의 상상력이 미치지 못하는 단 1%의 오차를 확인하려는 지적 강박에 가깝다. 바로 이 지점.
4.
우리가 누군가에게 강렬하게 끌리는 이유는 그(그녀)가 대단히 특별해서가 아니다. 내 머릿속에 구축된 인간이라는 데이터베이스가 그 사람을 완벽하게 예측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타인의 매력이란 나의 편견과 확증편향이 만들어낸 계산의 오류일 뿐이다. 보통의 우리는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예측 시스템이 고장 난 그 지점을 탐닉한다.
5.
이 본능적 탐구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오차를 확인하여 데이터화하는 순간, 상대의 유일성은 다시 보편성으로 편입되기 때문이다. 베일을 벗겨낸 자아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며, 탐구자는 또 다른 오차를 찾아 떠나야 한다. 토마시가 수많은 여자를 거치면서도 안식하지 못한 이유는 그가 찾은 유일함이 결국 ‘발견된 데이터’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6.
그렇다면 진정한 관계란 뭘까? 쿤데라는 토마시가 테레자를 만나는 방식을 통해 힌트를 던지는 듯 하다. 테레자는 토마시가 메스를 들고 해부하기(일명 토마시 전용 패시브 스킬 시전) 전에 이미 '은유'로서 그의 삶에 침투했다.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표현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도무지 감도 안온다. 나름대로 해석해보자면,
7.
그녀(내가 사랑할 존재)는 분석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의 시적 기억에 새겨진 하나의 문장이 된다. 유일함이란 타인의 몸을 뒤져서 찾아내는 전리품이 아니라, 나의 언어로 그를 정의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부여된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일지도. 타인을 끝없이 해부하며 나의 예측력을 시험하는 탐구자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논리적 증명을 포기하고 그를 하나의 은유로 받아들일 것인지. 전자는 명료하지만 공허한 반복에 갇히고, 후자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나 비로소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역설에 진입한다. 타인의 유일성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발견하기를 포기한 그 지점에서 비로소 시작되는듯 하다. 그래서 무겁지만 가벼운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