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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궤도이탈 Mar 16. 2022

17. 신애필의 죽음 (2)

  신애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모 대학의 인문학부에 입학했다. 그가 합격통지서를 받았을 때 그의 아버지 신석기는 감격했다. 합격통지서는 아들은 이제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리라는 계시와도 같았다. 자신은 살아보지 못했던 삶. 화이트칼라의 삶. 그는 아들이 태어나 출생신고를 하러 갔던 순간을 떠올렸다. 마지막까지 아들의 이름을 무엇이라 지을지 고민했던 순간. 마침내 아들의 이름을 ‘신애필’이라 짓던 순간. 그 순간이 지금의 결과를 만든 것 같았고 그래서 또다시 감격했다.

  신애필은 1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했고 스물둘 겨울에 제대했다. 복학할 때까지 용돈벌이라도 할 겸 시작했던 카페 아르바이트에서 미래에 여자친구가 될 그녀를 만났다. 그녀의 이름은 김지현이었고 그보다 세 살 연상이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시나리오를 쓰며 카페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녀가 영화감독지망생이라는 걸 알았을 때 신애필은 불현듯 중학교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영화를 좋아하던 친구가 다가와 다짜고짜 그의 이름이 부럽다고 말했던 기억. 그러니까 ‘시네필’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던 날. 그는 필시 그녀도 이 단어를 알 것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자기 이름을 우스꽝스럽다고 여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최대한 그녀를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쉬는 날만 제외하면 근무시간이 같았고 최소한의 대화는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카페엔 손님이 하나도 없고 바깥엔 비가 내리던 어느 날, 그녀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애필 씨의 이름이 부러워요.”

  그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약간 짜증도 났다. 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내 이름이 부럽다고 하는 것인가. 진짜 부러운 건지 아니면 고도의 장난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네? 아 저는……”

  하지만 전혀 뜻밖의 말이 나왔다.

  “제 이름은 너무 평범하잖아요. 지현이 뭐야 지현이. 아무 특색 없게. 애필 씨 이름은 한번 들으면 잊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부러워요.”

  “네?”

  “저는 학교 다닐 때부터 반에 이름 똑같은 애가 한 명씩은 꼭 있었거든요. 심지어 성이랑 이름 모두 같았던 적도 두세 번 있어요. 뭐 놀랄 일도 아니죠. 가장 흔한 성씨에 가장 흔한 이름이니까. 그래서 어릴 때부터 그런 고민을 했던 거 같아요. 나는 왜 이렇게 평범할까. 외모도 평범. 성적도 평범. 이름도 평범.”

  그는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듣고만 있었다.

  “그래서인지 뭔가 특별한 걸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나는 이름이 평범하니까 특별한 걸 해야지 내가 평범해지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생각? 말로 표현하니까 좀 이상한데 아무튼 나라는 사람을 드러낼 수 있을 만한 무언갈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수많은 김지현 중에 나라는 김지현만이 할 수 있는 것. 그게 무얼까 고민했고 그러다 영화에 빠지게 된 것 같아요. 뭐 지금 생각해보면 영화하는 김지현도 엄청 많을 것 같지만……”

  그는 잠깐의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이름이 특이하다고 특별해지는 건 아니에요.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보면 평범 그 자체거든요. 저는 오히려 지현 씨가 되게 특별하게 느껴지는걸요. 이름만 평범하지.”

  “정말요?”

  “네.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특별한 기운 같은 게 느껴졌어요.”

  “고마워요.”

  “휴, 저는 또 제 이름 가지고 뭐라 하려는 줄 알았는데 다행이네요.”

  “네? 뭐라 하다니요?”

  “그러니까 제 이름이…… 그 시네필이라는 단어랑 비슷하잖아요.”

  “네? 시네필? 아……, 아! 푸하하.”

  그녀가 웃기 시작했고 그가 찌푸린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아, 죄송해요.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시네필…… 신애필…….”

  그 이후로 그들은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이름 가지고 말을 걸었던 그날이 그녀가 공모전에서 탈락한 날이었다는 사실을 그는 뒤늦게 알았다.

  얘기하면 할수록 그는 그녀가 자신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고 느꼈다. 한 명의 이름은 특이했고 다른 한 명의 이름은 평범했다. 한 명은 영화 관련 단어와 비슷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영화랑은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았고 다른 한 명은 평범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영화와 상관있는 삶을 살았다. 그가 이 귀엽고도 억지스러운 연결고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그녀에게 빠진 뒤였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그녀에게 느끼는 이 정체 모를 감정에 대해 고민했고 좀 더 시간이 지난 뒤에는 이 감정을 사랑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복학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어느 날, 그러니까 그가 카페에서 마지막으로 근무한 날, 그는 그녀에게 고백했다.

  그 후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삼 년 뒤 그들이 헤어질 때까지 그들 사이에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들은 대부분의 연인들처럼 사귀었다. 하나 언급할 점이 있다면 이름 때문에 영화에 거부감을 느낀 그가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점이다. 하긴 관심을 가지지 않으래야 안 가질 수가 없었다. 연인 사이에 영화 데이트는 흔하디 흔할뿐더러 더구나 영화를 지망하는 여자친구를 사귀었으니 오죽했을까.

  그들이 헤어지기 일 년 전 지현은 한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그러니까 그들이 헤어지던 해 또 다른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영화사에서 신규 프로젝트 시나리오팀 합류 제의를 받았다. 그에 비해 신애필의 행보는 대조적이었다. 그들이 헤어지던 해 그는 대학을 졸업했고 스물세 곳의 회사에 입사원서를 넣었지만 스물한 곳에서 서류전형을 탈락했고 두 곳에서 면접을 봤지만 결국에는 최종탈락을 하고 말았다. 하반기 공채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는 실패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처음 경험한 실패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됐는데 나만  됐을까? 내가 뭐가 부족했기에? 남들보다 열심히 했다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남들만큼은 열심히 했다고   있었다. 이게 문제였을까? 남들보다 훨씬  노력해야 했을까? 그들이 나보다 열심히  했다고 여긴  착각이었을까? 사실 그들은 엄청난 노력을 했을지도 몰랐다.

  근데 왜 평범하게 살기 위해서 평범하지 않은 노력을 해야 할까? 그는 이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지현과 계속 만나다가는 언젠가 자신이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건 그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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