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궤도이탈 Mar 20. 2022

17. 신애필의 죽음 (3)

  지현이 두 번째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그들은 합정의  맥주집에서 축하자리를 가졌다. 늦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당시 신애필은 하루하루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여자친구에 당선 소식에 모처럼 기뻤다. 한편으로는 여자친구와 자신의 처지가 대조되어 씁쓸한 기분도 들었다. 사실 기쁨보다는 씁쓸함이  컸다. 여자친구는 열심히 노력해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뤄냈는데 자신은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이보다   문제는, 자기가 이루려고 하는 , 그러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취업이라는 것에 대해 원인을   없는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남은 시간 동안 토익 점수를 올린다거나 자격증을 딴다거나 하면 취업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은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먼저 취업한 친구들은 진심인지 그저 자기를 위로해주려는 것인지 모르지만 지금 시간을 충분히 즐기라고 말했다. 취업하면 야근하랴 눈치 보랴 도무지  맛이  난다는 거였다.  친구는 틈만 나면 비아냥대고 빈정거리는 상사에게 분노를 표하며 “씨바 이래서 우리나라도 총기가 풀려야 하고 말했고 다른  친구는 새벽 퇴근에 주말근무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을 소화하다 “ 뒤지면 우리 회사에 폭탄 하나만 터뜨려줘하고 말했다. 자조 섞인 농담에 웃고 넘기긴 했지만 이런 모습들이 머지않아 자신의 미래가 되리라는 생각이 들면 착잡한 마음이 들곤 했다. 나는 무엇을 기대하는 걸까? 그는 고민했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이런 고민과 우울을 내색해서는  됐다. 오늘은 여자친구를 축하해주는 자리였고 마땅히 기쁜 마음을 가져야 했다.

  그들은 잔을 들이키며 대화를 나눴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했다. 카페에서 일했을 때와 처음 오래 대화를 나눈 이야기. 그다음은 그들의 현재 이야기를 했다. 지현은 하반기에는 분명 취업을   있을 거라고 위로했다. 신애필은 자신의 고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들의 미래로 넘어갔다.

  “나중에 자기 영화감독으로 유명해지면 나도 덩달아 유명해지겠네. 시네필 김지현 감독의 남편 신애필!”

지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숟가락을 손에 쥐고 마치 마이크라도 되는 듯 입에 갖다 대더니 말했다.

“신애필 씨. 김지현 감독님이 영화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신애필 씨를 만났다는 게 사실인가요?” 그는 잠시 사이를 두고 자기가 한 질문에 대답하듯 말했다. “네. 제 아내는 영화에 미친 사람입니다. 안 그러면 저를 만났겠어요? 아, 참고로 저는 시네필은 아닙니다.”

  그날 여자친구를 만나고 집에 가는 길에 그는 자신이 했던 농담을 떠올렸다. 그리고 순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지현을 웃기기 위해서 즉석에서 떠오른 농담이 어쩌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갈수록 유명해지고 나는 이대로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면, 무언가 되어도 그리 내세울 만한  아닌 무언가라면,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지현의 들러리, 시네필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신애필. 그럼 나는 그렇게 피하려고 했던 이름 때문에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는  살게 되지 않을까? 상상은 액체처럼 번져갔고 불안의 농도짙어졌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상상은 언젠가 분명히 벌어질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지현과의 만남을 계속 이어가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해 하반기 채용에서 신애필은 경기도 소재에  물류회사 영업팀에 취직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현과 헤어졌다. 그는 지현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지현은 별다른 없이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는 상처를 받았다. 마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받아들였기에.

  그는 고통스럽게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견딜  없었다. 무언가 집중할 만한 게 필요했고 그래서 일에 집중하려 했다. 사실 집중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상사가 갈구기 시작했고 마치 원래 근무였던 것처럼 야근이 계속됐다.

  이듬해 여름, 신애필은   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했다. 가을에  군데 회사에 원서를 넣었지만 탈락했다. 그리고 두어 달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황했다. 그러다 역시 답은 공무원이라는 생각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다음 해  첫 번째 시험에서 떨어졌고 모아뒀던 돈도 바닥이 났다. 그는 집에 도움을 요청했고 아버지는 합격할 때까지 원조를 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아들을 믿는다. 신애필 파이팅!”이라는 말과 함께.

  신애필은  번째  번째 시험에서도 낙방했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되었다. 아버지와 싸웠고 아버지는 이제 원조를 끊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 도움 따위 없어도 충분히 혼자  해낼  있다고 말했고 하지만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독서실 총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다시 시험을 준비했다.

  그리고  번째 다섯 번째 시험마저도 떨어졌을  그는 공무원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동시에 삶도 포기하기로 했다.


  이제 이야기는 처음으로 돌아온다. 신애필은 핸드폰을 켰다. 하루에  편씩 본다고 하면 며칠이 걸리는지 계산했다. 333.6666666일이었다.  보는 날도 있고 하루에   보는 날도 있다고 치면 대충  년이 걸리는 셈이었다. 뭔가 의미 있군, 그는 생각했다.  영화를 모두  다음 미련 없이 죽어버리는 거다. 지금껏 별다른 의미 없는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아니 이토록 실패가 가득했던 삶을 평범하다고   있을까? 맞다. 평범하다. 오늘날에는 실패도 평범한 일이 되었으니까. 그러므로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것에 불과하다. 어쨌든 이렇게 살아왔지만, 죽기   년은 나름 특별하다고 말할  있겠지. 죽기   봐야 할 영화를  보고 죽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그는 이상하게 설렌 기분이 들었다.

  그는 다음날 서점으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구매했다. 보자마자 문득 총알이 과연  책을 뚫을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정도로 크고 두꺼운 책이었다. 그는 집에 돌아와 책의  장을 펼쳤다. 1900년대부터 시작이었고  영화는 <달나라 여행>이었다.

  , 근데 이제…… 이걸 어떻게 본담? 그는 생각했다.

작가의 이전글 17. 신애필의 죽음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