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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궤도이탈 May 11. 2022

25. 토이 (1)

  1

  그녀는 개를 키웠다. 흰색 리트리버였고 이름은 토이였다.

  그녀는 토이를 사랑했다. 아들이라 불렀고 때로 남편이라 불렀다. 닭고기와 미역과 밥을 넣고 끓인 죽을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며 “어이구 우리 아들 잘 먹네” 했고 친구와 애견용품샵에서 삼십 분 가까이 인식표 목걸이 디자인을 고민하다 친구가 언제까지 고르냐고 투정 부리니 “우리 남편 줄 건데 신중하게 골라야지” 했다.

  그녀의 하루는 토이 위주로 돌아갔다. 여섯 시에 일을 마치면 집에 도착하자마자 토이와 산책을 나갔다. 돌아오면 토이의 발을 닦아줬고 자신도 씻었다. 그다음 토이 밥그릇에 사료를 채워줬고 자신도 밥을 먹었다. 마치면 아홉 시 반 정도가 됐고 열한 시까지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봤다. 잠들 때쯤이면 토이는 이미 자고 있었고 그런 토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잠에 들었다. 가끔 토이가 깨어 있으면 같이 놀아주다 잠에 들었다.

  그녀는 웬만하면 약속을 잡지 않았다. 친구가 별로 없기도 했지만 밖에 나가 있는 동안 혼자 있을 토이가 걱정됐다. 어쩌다 야근을 하는 날이면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토이 때문에 일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집에 가면 토이는 평소보다 격하게 꼬리를 흔들었다. 그녀는 그런 토이를 안아주며 미안하다 말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혼자 둘 순 없는데…

  직장에 있는 동안 토이가 혼자 있는 건 오래전부터 그녀의 걱정거리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고민했었다.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강아지 한 마리를 더 키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시간도 애정도 관심도 두 배를 줘야 하는데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새로운 생명을 들인다는 사실 자체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다음으로는 강아지 유치원을 알아봤다. 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다. 주 5회 기준으로 한 달 180만 원이었다. 그것도 10% 할인이 적용된 금액이었다. 마찬가지로 그녀의 월급에서도 10% 할인이 적용된 금액이었다. 풀만 먹고살아야 할지도 몰라. 그녀는 생각했다. 아니, 풀도 못 먹을지 몰라.

  지하철로 삼십 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사는 엄마에게 부탁해보기도 했다. “얘는 지 애 봐달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뭔 개를 봐달라고 그러니?” 엄마는 말했다. “남자 좀 만나 이년아!”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너 언제까지 그놈의 개만 데리고 살 거니? 너 서른둘이야. 요즘 결혼이 늦어졌다 뭐다 하지만 여자 나이 서른둘이면 그래도 늦은 나이야. 너 미영이 알지? 양숙 이모 딸. 걔는 너보다 세 살이나 어린데 얼마 전에 둘째 낳았다더라. 직업도 변변찮은 애가 나중에 어떡하려고 그러니? 엄마 친구 아들 중에…”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다시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잠시 뒤 문자가 왔다. ‘네 할 말만 하고 끊을 거면 앞으로 연락하지 마렴.’

  시간은 흘러갔고 미안한 마음은 쌓여갔다. 그만큼 더 애정을 쏟았지만, 그렇다고 토이가 혼자 있는 시간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2

  그녀는 생리 예정일이 지났는데도 생리를 하지 않았다. 갑자기 왜 이러지? 그녀는 생각했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에 생리를 두 달 정도 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날도 덥고 잠도 못 자고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뿐만 아니라 친구 몇몇도 겪는 현상이었다.

  그 이후로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내가 요즘 스트레스를 받나?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별다른 일이 없었다. 오히려 아무 일 없이 똑같은 나날만 반복돼서 지루할 정도였다. 몸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닌가 걱정했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로 했다. 살다 보면 이런 때도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생리를 하지 않은 지 두 달이 지났을 때 그녀는 산부인과에 갔다. 몇 가지 검사를 받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벽면 화이트보드에는 자신의 것으로 보이는 엑스레이 사진이 걸려 있었다. 자리에 앉자 의사가 말했다.

  “임신입니다. 크기로 보아 6주 정도 된 것 같군요.”

  “네?”

  그녀가 말했다.

  “여기 하얀 점 보이시죠? 이게 태아입니다.”

  의사는 쇠막대로 엑스레이 사진을 가리켰다. 작고 동그란 점을.

  “이거 제 사진 맞아요? 다른 사람이랑 착각하신 거 같은데요?”

  의사는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 그녀는 이름을 말했고 의사는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들춰봤다. 그러더니 그녀의 사진이 맞다고 말했다.

  “그럴 리가요. 그럴 리가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의사는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 이제는 중절수술이 합법이라 원하시면 저희 병원에서도 가능합니다.  정도 크기면…”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의사는 말을 끊었다. 그녀는 의사와 사진을 번갈아봤다. 진료실을 나갔다.

  그녀는 근처에 다른 산부인과로 갔다. 똑같이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똑같은 답을 받았다.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임신테스트기를 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검사를 했다. 표시 칸에 두 줄이 떴을 때, 그녀는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서? 왜? 그녀는 생각했다. 남자 친구도 없었고 최근 몇 달간 누구와도 관계를 맺은 적도 없었다. 몇 달은커녕 마지막 남자 친구와 헤어진 지 삼 년이 흘렀다. 자위는 주기적으로 했지만 임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자신이 자고 있을 때 누가 몰래 자궁 속으로 정액을 흘려보내거나 하는 일이 있지 않는 이상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불현듯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그녀가 회식을 하고 돌아온 밤이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토이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들었다. 그녀는 현관에 털썩 주저앉아 토이를 안았다.

  “아들 미안해. 엄마가 술 좀 마셨어.”

  그녀가 말했다. 토이는 그녀의 목이며 얼굴이며 할 것 없이 마구 핥아댔다. 평소 같았으면 못하게 막았겠지만 취기 때문인지 핥게 내버려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야릇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녀는 토이에게 따라오라 손짓하며 침대로 갔다. 침대에 누워 바지를 벗었고 팬티를 벗었다. 다리를 벌렸고 토이의 머리를 그쪽으로 갔다 댔다. 토이는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그러다 그곳을 핥았다. 순간 찌릿한 느낌이, 오줌을 누기 바로 직전의 느껴지는 쾌감이 온몸으로 퍼졌다. 허벅지와 엉덩이에 힘이 들어갔고 골반이 달싹거렸다. 그녀는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토이를 불렀다. 토이가 올라와 다시 그녀의 얼굴을 핥았다. 그녀는 토이의 그것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토이가 몸을 움찔거렸다. 계속 흔들자 그것의 표피를 뚫고 또 다른 그것이 솟아올랐다. 기다랗고 불그스름한 그것이. 그녀는 그것을 자신의 그곳으로 가져다 댔다. 토이가 계속 움직이는 바람에 자꾸 어긋났다. 그녀가 쓰읍, 소리를 냈다. 토이가 움직임을 멈췄고 그녀는 다시 갖다 댔다. 다른 손으로 토이의 엉덩이를 눌렀다. 몇 번 다른 곳을 찌르다 마침내 그것이 그곳으로 들어왔다. 아, 그녀가 소리를 냈다. 꽉 채워지는,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 다음부터는 가르쳐줄 필요가 없었다. 토이는 본능대로 움직였고 그녀는 본능대로 느꼈다. 그녀는 토이의 목을 감쌌고 토이는 헥헥 소리를 냈다. 그녀는 하얀 털을 움켜쥐었고 토이는 계속 헥헥 소리를 냈다. 조금만 천천히 움직였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까지 가르쳐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일이 어떻게 끝난지도 모른 채 잠들었다. 깨어났을 때는 새벽이었다. 토이는 옆에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팬티와 바지를 입었다. 그러다 다시 바지와 팬티를 벗었다. 욕실로 가서 샤워를 했다. 마치고 돌아왔을 때 토이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옆에 누워 눈을 감았다. 아까 일이 떠올랐다. 기묘한 꿈같은 기억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녀는 생각했다. 그곳이 욱신거렸다.


  그럴 리가 없어.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 말고는 떠오르는 기억이 없었다. 말도 안 된다는 걸 알았지만 지금 자신에게 벌어진 일 자체가 말이 안 됐다. 그녀는 다시 테스트기를 확인했다. 여전히 두 줄이었다. 테스트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밖으로 나왔다.    

  토이는 혀를 내밀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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