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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ttee Jan 17. 2020

(영화) 결혼 이야기

나의 결혼 이야기

아마 내 주변 사람들은 익히 들어 알고 있겠지만 남편은 내 인생의 가장 큰 도전이다.


결혼생활이 어렵다, 힘들다는 건 결혼 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저 '어려운 건가 보다'라고 내 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연애가 그리 어렵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무난했던 터라 결혼생활도 그렇게 내 삶으로 스며들어 무난하게 해 나가겠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수능 공부보다, 취업보다, 미친 x 같은 직장 상사보다 어려운 건 결혼생활 그리고 남편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곰곰이 생각해 봐도 특별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실수로 화분을 깨면 버럭 화를 내는 남편에 화가 나는 나와, 왜 가만히 있는 화분을 깨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남편. 아이 재우는데 큰 소리로 부동산 유튜브를 듣고 있는 남편이 너무 미운 나와, 아이 재우고 나와 집정리를 하지 않은 채 노트북 열고 글을 쓰는 내가 마땅치 않은 남편. 일상에 녹아있는 못마땅함, 미움이 쌓이다가 한 번씩 폭발을 하고, 그 폭발로 서로의 어두운 바닥을 한 삽 한 삽 파내다가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그래서 넷플릭스에서 '결혼 이야기'라는 타이틀과 스칼렛 요한슨의 수심 가득한 표정을 보고는 '이거다' 싶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사실 결혼 이야기가 아니라 '이혼 이야기' 였는데 그래서 더욱 와 닿고 좋았다.




영화는 연극 감독을 하는 남편 찰리와 한때는 영화배우였으나 결혼 후 남편의 극단에서 연기를 하고 있는 와이프 니콜이 서로의 장점을 나열하는 목소리로 시작된다. 부부는 이혼을 결정하고 부부클리닉에서 상담을 받지만 니콜은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그 후 브로드웨이 진출을 눈 앞에 둔 남편을 뉴욕에 두고 니콜은 새로운 드라마를 촬영하기 위해 LA 친정으로 아들과 함께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들의 본격적인 이혼 프로세스가 시작된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혼이 진행되는 동안 부부가 서로를 대하는 모습이다. 변호사들이 날 선 말과 논리로 상대방이 얼마나 잘못했는지 따지고 싸우는 동안 부부는 불안한 표정으로 서로의 눈치를 살핀다. 이혼 서류를 전달할 때도 어떻게 하면 상대방이 충격을 덜 받을지를 고민해가며 전달하고, 번갈아가며 아이를 보내고 받을 때에도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상냥하기 위해 노력한다. 재산 분할 때도 서로에게 큰 피해가 가지 않도록 변호사에게 이런건 상대방에게 요구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다. '아니 이런 사이면 이혼 안 하고 그냥 살면 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로를 배려한다.


하지만 니콜에게 결혼은 자기 자신이 작아지기만 하는 그래서 없어져 버릴 것 같은 시간이었다. 막 빛을 발하기 시작한 TV 스타가 남편을 만나 삶의 터전과 행로를 바꾸고 남편의 목표를 향해 함께 달렸다. 남편은 니콜을 통해 안정적인 가정과 뛰어난 배우를 동시에 얻게 되어 극단을 키워갔고, 본인이 가진 달란트를 마음껏 펼쳤다. 그 결과 브로드웨이에서 주목받는 감독이 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점점 빛을 발하는 남편과 달리 니콜은 본인에게 들어오는 TV 출연 제의를 계속 거절해야만 했고, 생기를 잃어갔다. 누군가에게는 별다른 문제없이 자기 일을 잘해나가는 남편이 만족스럽고 자랑스러운 남편일 수 있지만, '자기의 인생' 또한 마찬가지로 중요했던 니콜에게 모든 게 남편 위주로 돌아가는 결혼 생활은 감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이혼하고 LA에 정착한 니콜은 배우뿐 아니라 감독으로서의 두각도 드러내게 된다. 뉴욕에 계속 남편과 살았더라면 성공한 연극 감독 아내로서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후자의 삶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전자의 삶에서만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텐데 니콜은 전자도 너무 중요했던 사람이였을 것이다.




이혼을 한 번이라도 상상해 봤다면 더욱 와 닿고 재밌는 영화일 것 같다. 이혼 과정이 이렇게 흘러가겠구나, 어떤 감정이 들겠구나, 이런 것들이 협상에 중요 포인트가 되는 구나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동서를 막론하고 유니버설(?)한 남편, 아내의 입장이 보여 뭔가 위로도 되는 기분이다.


나의 결혼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나의 남편도 사실 가족에 헌신하고, 큰 문제없이 자기 일을 잘해나가는 그런 남편이다. 오히려 좀 덜 열심히 살았으면, 실수도 하고 모자란 점이 있어서 내가 바가지 좀 한 번 긁어 보았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이다. 우리의 일상 또한 폭발하는 순간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웃고 지나가는 날이 더 많은 그런 결혼생활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혼한 남편은 우연히 니콜이 부부클리닉 때 써 놓은 남편에 대한 글을 읽고 눈시울을 붉힌다. 남편은 그때서야 니콜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이 아닐까. 나의 브런치도 사실 남편을 생각하며 쓰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런 일상을 보내고 있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란 걸 남편이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지만 내 브런치 주소를 알고 있는 우리 남편은 이 글을 결국 보지 않을 것을 안다. 그래서 더 가벼운 마음으로 쓸 수 있는걸지도?   


새해가 되고, 결혼반지를 다시 꼈다. 거추장스럽고 혹시 잃어버릴까 결혼식 후 바로 빼놓았던 반지를 다시 왼손 약지에 껴넣었다. 노트북을 쓰고 있는 지금도, 커피를 마시다가도 계속 반지가 눈에 들어오는데, 그때마다 나는 '결혼'을 한 사람임을 서로에게 약속을 했다는 것을 상기한다. 그리고 손가락에서 반짝거리는 예쁜 반지를 볼 때마다 '결혼 = 예쁘고 반짝 거리는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이미지화 된다  그래서 ... 잘 꼈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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