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liettee Jun 18. 2020

풍경 있는 집

맨 처음 이 집에 들어와 살아야 한 다는 걸 알았을 때, 흔쾌히 콜을 외칠 수 있었던 건 확 트인 거실 창 때문이었다.


우리 집은 아파트 단지 안쪽이 아닌 바깥쪽을 바라보고 있는 집인데, 거실의 두 면이 전면 창인 덕에 바깥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감상할 수 있다. 사실 얼핏 보면 그냥 흔한 건물+도로+적당한 산이 보이는 뷰인데 하나하나 뜯어보면 얼마나 오묘하고 재미있는지 모른다.


일단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전면에 보이는 8차선 큰 도로이다. 대왕 판교로에서부터 세곡까지 이어지는 이 넓은 도로는 유난히 공사차, 화물차들이 많이 지나다닌다. 레미콘, 트럭은 물론이고 유조차, 이름도 알 수 없는 희한한 큰 차들이 끊임없이 오간다. 한창 차에 관심이 많은 4살 아들은 거실 창문에 코를 대고 서서 가니 버스! 레미콘! 포클레인! 택시! 를 외쳐댄다. 큰 도로 위쪽으로는 분당 내곡 간 도로가 미끄럼틀처럼 연결되어 있고 저 뒤로는 외곽순환도로까지 보인다. 출퇴근 시간 때마다 막혔다 풀렸다 하는 도로를 보며 복직하면 몇 시에 집에서 출발해야 할지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8차선 도로를 중심으로 양 쪽은 참 다른 세상이다. 우리 아파트 쪽은 한창 개발이 진행되는 쪽으로, 앞에는 수십 채의 상가주택, 건물들이 들어서는 중이다. 큰 도로에 맞닿아 있는 높은 건물은 이제 거의 완성되어 '병원, 은행, 프랜차이즈 입주 환영!'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뒤쪽의 작은 상가들은 제각기 카페, 음식점, 슈퍼 등으로 변하는 중이다. 그 뒤로는 제2테크노 밸리가 미래 도시처럼 올라가고 있는데, 앞쪽 상가 공사장과는 차원이 다른 어마어마한 크레인들이 웅장한 건물들을 생산해내고 있다. 저기에는 어떤 기업들이 입주할까, 입주할 때쯤이면 준이가 직장 어린이집 안 다녀도 될 텐데 새로운 회사로 옮겨볼까? 건물들을 보며 혼자 이직 구상도 하고 있다.


반면 도로 저편은 내가 시골로 이사 왔나? 생각이 들 정도로 한적한 농촌마을이 펼쳐진다. 둥글둥글한 비닐하우스와 촘촘히 들어선 밭, 남은 공간을 빽빽이 채우고 있는 우거진 나무들, 그 사이로 겨우 한 채씩 보이는 낮은 집들. 도로변에는 24시 순댓국집과 농산물 직판장 가건물이 서로 멀찍이 떨어져 서있다. 농촌마을을 가로지르는 2차선 도로가 작은 개천을 따라 쭈욱 이어져있는데 그 도로에는 차나 사람이 좀처럼 다니지 않는다. 언젠가 한번 꼭 자전거를 타고 달려보고 싶은 길인데 그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길이다.


거실 풍경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비행장이다. 농촌마을에서 살짝 고개를 돌리면 어마어마하게 넓은 훤한 부지가 보이는데 그곳이 바로 서울공항이다. 우웅~~ 소리가 나기 시작해서 쳐다보면 활주로에서 전투기(?) 같은 멋지게 생긴 비행기들이 날아오른다. 두구두구 소리가 나면 당연 헬리콥터이다. 거실에서 비행기가 그것도 전투기가 날아오르는 걸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신기한 일인지. 하지만 소음은 덤이다.




창밖으로 놀이터나 아파트 잔디가 내다 보이고, 깜깜한 밤이 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집에서 나는 좀 외로웠던 것 같다. 집안을 둘러봐도 집 밖을 내다봐도 다 우리 집, 우리 아파트, 아들, 남편만 보이는 것 같아 편안했지만 갑갑했다. 하지만 이 집에서는 낮에도 밤에도 밖에서 항상 누군가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 낮에는 바삐 일하는 공사장 인부들이, 개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타이어를 팔고 있는 아저씨가 보인다. 밤에도 화물차 운전수는 한적한 도로를 달리고, 공항에서는 군인들이 깜박깜박 불빛을 내며 밤하늘을 지키고 있다. 한쪽은 온전히 우리 집 내 가족이지만 다른 한쪽은 바깥세상과 맞닿아 있고 나는 그게 참 좋다.



작가의 이전글 이사 3일 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